그럼 남는 주파수를 놀리나? 황금 주파수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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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미터 달리기를 하는데 누군가가 50미터 앞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뒤에 쫓아가는 사람들 기록이 단축 될까요? 오히려 경쟁을 포기하게 되지 않을까요?”

18일 방송통신위원회가 주최한 주파수 토론회는 역시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KT에 특혜를 줘서는 안 된다는 우려와 경고로 넘쳐났다. 방통위가 추가 할당을 검토하고 있는 주파수 대역은 1.8GHz 대역 60MHz 폭과 2.6GHz 대역 80MHz 폭이다. 논란이 되는 건 1.8GHz 대역 가운데 KT가 현재 쓰고 있는 대역에 인접한 대역이 있어서 이 대역이 KT에게 넘어갈 경우 KT가 손쉽게 광대역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매물로 나올 주파수는 2.6GHz 대역에서 40MHz 폭씩 A블록과 B블록, 그리고 1.8GHz 대역에서 35MHz폭 C블록, 그리고 15MHz폭 D블록 등 모두 4개 블록이다. 논란이 되는 KT의 인접 대역이 바로 D블록이다. 통신사는 3개인데 4개의 매물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라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D블록을 빼고 나머지 3개 블록만 경매에 부치자고 주장하고 있다. KT는 특혜라는 이유로 멀쩡한 주파수 대역을 버려두는 건 비효율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강학주 LG유플러스 상무는 “단순히 경쟁 활성화 차원이 아니라 회사의 존폐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만년 3위 LG유플러스의 항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반응이 비교적 우세했다. 강 상무는 “만약 KT 혼자 광대역 서비스를 시작하면 속도가 절반 밖에 안 되는 우리는 가입자 이탈을 지켜보고 있어야 된다”면서 “보조금 투입에도 한계가 있어서 3위 사업자는 시장에서 도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실 D블록은 15MHz 폭 밖에 안 되기 때문에 SK텔레콤이나 LG유플러스에게는 큰 쓸모가 없지만 KT 입장에서는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그야말로 ‘황금 주파수’ 대역이라고 할 수 있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당장 우리에겐 필요 없지만 그렇다고 KT에게 줘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KT가 D블록을 갖게 되면 큰 설비투자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두 배 빠른 서비스를 하게 될 테고 동등한 경쟁을 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성호 SK텔레콤 상무도 “KT가 1.8GHz 대역에서 광대역 서비스를 시작하면 다른 회사들은 기존의 전국망을 버려두고 전국망을 새로 구축해야 한다”면서 “투자비만 2조~3조원, KT의 10배 이상 들기 때문에 절대적인 경쟁 제한을 당하게 된다”고 말했다. 하 상무는 “1.8GHz 대역은 우리도 선호하지만 유일하게 이 대역에 주파수가 없는 LG유플러스가 단독으로 확보해서 동등한 경쟁을 벌이는 건 긍정적으로 검토할 의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KT는 “당장 더 좋은 서비스를 할 수 있는데 발목을 잡는 건 다 같이 하향 평준화하자는 말이냐”는 논리로 맞선다. 김희수 KT 상무는 “D블록을 KT가 받는다고 해서 다른 사업자들이 광대역 서비스를 못하게 되지는 않는다”면서 “멀티 캐리어나 캐리어 애그리게이션 등 새로운 기술을 동원해 광대역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열려있다”고 반박했다. KT가 상대적으로 좀 더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터무니없는 특혜라고 볼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갈등의 핵심은 LTE 전국망과 보조망이 어느 주파수 대역에 위치하느냐에 있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800MHz 대역을 전국망으로 사용하고 1.8GHz 대역과 2.1GHz 대역을 보조망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 주파수 대역을 추가로 할당 받더라도 당장 광대역 서비스를 할 수가 없다. 반면 KT는 이미 1.8GHz 대역을 전국망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추가로 주파수 대역을 확보하면 곧바로 광대역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업계에서는 KT가 1.8GHz 대역을 할당받을 경우 기존 기지국 장비와 중계기 등을 그대로 쓰면서 2000억~3000억원의 추가 투자만으로 전국적인 광대역 서비스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2조7000억원 가량의 추가 투자비를 들여 흩어진 주파수를 묶어서 광대역 서비스를 구축해야 한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2년 가까이 시간이 더 걸리게 된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중구난방으로 엇갈렸지만 대체로 이날 논의는 KT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남는 주파수를 왜 놀리느냐”는 주장과 “비싸게 받고 팔면 될 것 아니냐”는 주장은 결국 KT에 인접한 주파수 대역을 허용하자는 논리가 된다. 김영수 경희대 전자전파공학과 교수는 “미할당 주파수는 자원 낭비”라면서 “누가 가져가든 어느 한쪽의 경쟁을 저해할 정도가 된다면 다른 방법으로 풀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최재익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부장도 “D블록은 KT를 제외하고 활용이 어렵기 때문에 통합해서 쓸 수 있도록 하는 게 좋다”면서 “주파수가 파편화되는 것을 막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용제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는 “KT가 정말 D블록을 필요로 하고 이 때문에 다른 업체들이 불이익을 받는다면 주파수 할당 대가를 높이거나 서비스 개시 시점을 늦추는 등의 강력한 비대칭 규제를 도입할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4개 블록이 매물로 나온 상태에서 KT가 D블록을 가져가게 되면 어차피 하나의 블록이 남게 되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제기된다. 이를 두고 KT는 어차피 다른 블록도 언젠가는 다시 할당될 텐데 D블록은 KT가 가져가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는 논리를 편다. “KT가 D블록을 가져가는 게 싫으면 입찰에 참여해서 비싸게 부르면 될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단순히 KT의 발목을 잡기 위해 입찰에 참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반론도 나왔다.

SK텔레콤 하 상무는 “KT는 당신들이 필요하면 가져가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KT가 가져가면 광대역 서비스가 되지만 다른 회사들은 10MHz 밖에 안 돼서, 돈 써서 가져가라는 건 결국 가져가지 말라는 거나 마찬가지 소리”라고 반박했다. 하 상무는 “블록이 4개기 때문이 이번에는 어딘가를 놀려야 된다”면서 “결국 어느 블록을 놀릴 것이냐의 문제고 효율성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이사는 “LG유플러스에 1.8GHz 대역(C블록)을 할당하기만 한다면 나머지 대역은 어떻게 배분하든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이 대역에 주파수 대역을 갖고 있지 못한 LG유플러스에 단말기 호환성을 보장해주고 또 만약 KT가 D블록을 가져가서 광대역 서비스를 하면 그건 그것대로 소비자들에게 좋은 일이라는 이야기다. 전 이사는 “KT 특혜라는 비판도 제기되지만 과거 SK텔레콤도 특혜를 충분히 받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전 이사는 “방통위 분위기도 3안(KT에 D블록을 허용하는 방안)에 무게를 두는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KT에게 이 정도 특혜라도 없으면 정말 망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전 이사는 “KT는 지금 부동산을 내다 팔면서 겨우 버티는 상황”이라면서 “방통위가 KT가 그냥 무너지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 이사는 “다만 D블록의 경우 사실상 단독 입찰이 될 거기 때문에 가격을 높여 받는 다른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방통위는 이달 안에 주파수 할당방안을 결정하고 오는 4월 주파수 경매를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방통위는 이날 토론회에서 2.6GHz 대역 80MHz 폭을 40MHz 폭으로 나눠 각각 A블록과 B블록으로 할당하고, 1.8GHz 대역에서 35MHz 폭을 C블록으로 할당하고 이와 별개로 1.8GHz 대역에서 15MHz 폭을 D블록에 할당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1.8GHz 대역에 LTE 주파수가 없는 LG유플러스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여재현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그룹장은 “지난번에는 오름 입찰 방식으로 주파수를 할당했는데 과열 경쟁 등의 문제가 있어서 이번에는 밀봉 입찰로 가는 게 효율적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2011년 8월 1.8GHz 대역 주파수 경매에서는 SK텔레콤과 KT가 경쟁적으로 입찰 가격을 높여 부르면서 4450억원에 시작한 주파수 할당 대가가 83라운드를 거치며 9950억원까지 치솟은 바 있다. 결국 SK텔레콤이 낙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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