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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뉴타운, 사당동의 비극.

Written by leejeonghwan

February 5, 2013

“조합 해산할 거면 당신들이 그 동안 쓴 돈, 다 물어내라.”
사당 재개발 1구역은 동네 주민들이 반반으로 갈라져서 싸우고 있다. 주민 237명 가운데 123명이 재건축 조합을 해산하는 데 찬성했다. 조합이 설립된 게 2010년 8월, 사업 시행 인가를 받은 게 2011년 12월, 그리고 지난해 9월 51.9%의 주민들이 모여서 조합해산 신청서를 동작구청에 접수했다.

놀라운 건 지난 3년 동안 조합에서 쓴 돈이 무려 53억원이나 된다는 사실. 당장 사업을 접으면 한 집에 2000만원 이상을 나눠서 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조합에서는 조합 해산이 부당하다며 조합 인가 취소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총회를 열어 해산에 동의했던 사람들에게 53억원을 청구하기로 의결하기도 했다. 여기서 접으면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끝까지 가야 한다는 게 조합의 입장이다.

이른 바 재건축 매몰 비용이 뜨거운 감자가 됐다. 서울시는 서울 시내 193개 뉴타운·재개발 정비구역 가운데 39개 구역 정도가 해소될 거라고 보고 매몰비용을 149억7600만원으로 추산했다. 서울시는 이 가운데 최대 70%까지 104억8300만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당장 올해 배정된 예산은 39억원 뿐이다. 서울시 추산에 따르면 1개 구역의 평균 매몰비용이 3억8400만원. 14~15개 구역만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매몰비용(sunk cost)는 사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가운데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말한다. 흔히 매몰비용이 늘어날수록 이미 투자한 시간과 비용을 계속 유지하려는 현상을 보이는데 이를 매몰비용 효과라고 한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에서 매몰비용이란 안전진단과 설계, 감정평가, 사업비 및 분담금 추산 용역, 사업시행계획서 등의 작성에 드는 비용을 말한다. 조합을 운영하는 데 드는 잡다한 비용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동네 주민인 배중장씨는 “99㎡(30평)짜리 연립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이 분담금을 2억원이나 내고도 82.5㎡(25평)짜리 아파트를 받거나 팔고 떠나야 하는데 누가 이런 조건에 동의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배씨는 “나는 10원짜리 동전 하나 쓴 게 없는데 53억원을 누가 다 썼는지 모르겠다”면서 “조합 해산 과정에서 정확한 사태 파악과 실태 조사를 통해 자금 집행 과정에서의 하자를 밝혀내고 방만한 조합 운영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씨는 “단독주택 소유 조합원의 감정평가금액이 법원감정평가 금액의 70% 수준인 데다 토지가 많은 비조합원들도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해 조합해산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배씨는 또 “3.3㎡당 409만원의 시설 공사비와 700억원에 이르는 사업비는 조합이 방만하게 운영됐다는 증거이며 620억원에 이르는 지급 추정금 등은 조합원들에게 막대한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폭리를 취한 건설회사들은 매몰비용, 매몰비용 하는데, 이 돈이야말로 엉뚱한 곳에 줄줄 새 왔던 돈입니다. 매월 수백 만 원이 넘는 조합장 월급에, 조합 아웃소싱요원의 일당이 15만원, 거기다 성과급까지 합치면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붓고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돈이 되어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서민을 죽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재건축·재개발 정책은 전면 중단되어야 합니다.”

조합장 고병순씨의 이야기는 또 다르다. 고씨는 “조합을 해산하면 그동안 집행한 자금을 돌려줘야 하는데 누가 돌려줘야 하느냐”면서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 그게 아니면 해산을 주도한 사람들?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올 지경”이라고 반박했다. 고씨는 “구청이 지정한 외부 회계감사인의 감사를 실시했고 주민을 대표로 투명하고 깨끗하게 운영해 왔다”면서 “이대로 해산을 할 경우 발생할 문제점과 파장이 너무나 가혹하다”고 말했다.

배씨는 “해산에 동의한 주민들은 매몰비용 대부분이 과도한 용역비와 설계비 및 삼성물산과의 가계약서에 따른 불합리한 사업진행에서 나왔으므로 조합의 책임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삼성물산이 조합에 대여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방만한 조합운영을 방조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고 말했다. 조합이 달라는 대로 빌려주고 이제 와서 그 비용을 주민들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서울시는 서울 시내 뉴타운·재개발 정비구역 가운데 추진위원회를 설립한 단계, 193개 구역 가운데 20%인 수준인 39개 구역이 해소될 거라고 보고 있다. 매몰비용을 149억7600만원으로 추산하고 이 가운데 최대 70%까지 104억8300만원을 지원한다는 계획다. 당장 서울시에 올해 배정된 예산은 39억원. 서울시 추산에 따르면 1개 구역의 평균 매몰비용이 3억8400만원. 14~15개 구역만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제는 서울시가 잡고 있는 예산이 193개 추진위 단계의 구역들이 대상이고 이미 조합을 설립해 사업이 상당히 진척된 곳도 292개나 된다. 이 조합들이 지금까지 사용한 비용은 총 1조3000억~1조6000억원 규모. 조합의 30%가 해산할 경우 최소 3000억원이 넘는 재원이 더 필요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구역들은 매몰비용 때문에 당장 해산을 할 수도 사업을 계속 진행할 수도 없는 답답한 상황에서 주민들 사이에 반목만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안에는 조합 단계까지 매몰비용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겨있지만 정작 중앙정부 지원에 대한 내용은 없다. 재건축·재개발 과정에서 얻게 되는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지 않는 것처럼 재건축·재개발의 실패에 따른 부담도 정부가 부담할 명분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시 의회와 경기도 의회는 추진위 단계의 재건축·재개발 구역의 매몰비용을 70%까지 지원하는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달 17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뉴타운에 대한) 중앙정부의 매몰비용 보전은 지난 총선에서 양대 정당이 공약으로 내건데다 박근혜 당선인도 3천억원을 약속했다”고 말한 바 있다. 박 시장은 “기본적으로 매몰비용을 책임 당사자가 부담해야 하지만 일방이 다 부담할 수 없고 정부가 일부 보조할 수밖에 없다”며 “(뉴타운 문제는) 서울시 현안이기도 하지만 정부의 현안이기도 하니 협력해서 잘 해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핵심은 재건축·재개발만 하면 집값이 뛰어오르던 그런 시절은 지났다는 데 있다. 일찌감치 털고 나왔으면 손실을 줄일 수 있었겠지만 애초에 정부가 손실을 보전해 줄 거라는 기대심리를 부추겨 매몰비용을 키웠다는 지적도 많다. 이익은 개인적으로 챙기면서 왜 손실은 정부가 국민들 세금으로 보전해주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더 늦기 전에 출구전략을 단행해야 한다는 급박한 상황판단도 설득력을 얻는다.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매몰비용이라고 주장하는 금액에는 설계와 안전진단 등의 비용도 있지만 조합 상근자들 임금이나 조합 사무실 임대료, 밥값까지 포함돼 있다”면서 “일차적으로는 조합원들이 책임지는 게 맞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일부 책임을 진다고 해도 회계 자료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 지원을 한다면 얼마나 지원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매몰비용 지원은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만 정부의 잘못이 없다고 할 수는 없고 다음부터 이런 일이 없도록 한다는 전제 아래 한시적으로 지원할 필요는 있다”고 설명했다. 심 교수는 “재건축·재개발 구역이 서울과 경기도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매몰비용을 지원할 경우 지방에서 거둔 세금으로 수도권을 지원한다는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심 교수는 “서울에만 330만채의 재건축 재고가 있는데 과도한 규제로 묶여있는 측면이 있다”면서 “투기적 목적의 재건축·재개발을 규제하되 전략적으로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하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매몰비용은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늘어나게 돼 있다”면서 “어차피 중단할 거라면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서 하루라도 빨리 빠져나올 수 있도록 최소한의 비용을 지원할 필요는 있다”고 강조했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지원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선 소장은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매몰비용을 정부가 메워주는 방식이 아니라 추진위나 조합을 해산하는 구역에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선 소장은 “매몰비용 지원이야 말로 떼 쓰면 들어주는 ‘떼 법’ 아니냐”면서 “달라고 하는 대로 다 줄 수도 없고 도덕적 해이에 형평성 논란도 제기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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