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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처럼 번지는 자살, 원인을 알아야 막을 수 있다.

Written by leejeonghwan

January 12, 2013

김윤주(앵커)> ‘좋은 아침 김윤주입니다’ 토요일 첫 순서는 ‘숫자로 본 한 주간’입니다. 미디어오늘 이정환 기자입니다.

이정환(미디어오늘 기자)> 안녕하세요?

김> 숫자로 본 한 주간, 이번 주의 숫자는 뭔가요?

이> 42.6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자살하는 사람 수입니다. 2010년 1년 동안 자살자 수가 1만5566명인데요. 하루에 평균 42.6명이 목숨을 끊는다는 말입니다.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자살로 죽는 사람이 더 많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11.26명, 자살률은 10만 명당 33.5명입니다. 세배가 넘는 거죠. 사망원인 가운데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에 이어 자살이 4위입니다. 우리나라는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OECD 평균은 12.8명입니다. 오늘은 자살 예방 방법으로 거론되고 있는 심리적 부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김> 심리적 부검이라는 게 뭔가요?

이> 심리적 부검, psychological autopsy라고 하는데요. 핀란드는 이 제도를 도입해 자살률을 크게 낮췄다고 합니다. 부검이라고 하면 사인과 병리적 변화, 손상 정도 등을 규명하기 위해 시체를 해부해서 검사하는 걸 말하죠. 심리적 부검이란 자살한 사람의 가족과 친구, 직장동료 등을 심층 인터뷰하고 유서와 일기, 전자우편, 병원 진료기록, 검시관의 진술 등의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이 사람이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이유를 규명하는 연구 방법을 말합니다. 1930년대에 미국 뉴욕에서 경찰 93명이 연쇄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조사를 했습니다. 이때 심리적 부검이라는 말이 처음 나왔습니다.

김> 핀란드 사례를 좀 설명해 주시죠.

이> 핀란드는 한때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였습니다. 1965년부터 1990년까지 자살률은 세 배 급증, 1990년에는 인구 10만 명당 50명을 기록할 정도였으니까요. 핀란드 정부는 5년 동안 전문가 6만 여명을 동원해서 1987년 자살한 1397명에 대한 심리적 부검을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2009년에는 자살률이 10만 명당 18.3명으로 내려갔습니다. 60% 가까이 줄어든 셈이죠.

김> 원인을 알면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거죠?

이> 자살한 사람의 3분의 2가 우울증을 앓고 있고 이 가운데 15%만이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실직이나 이혼 등이 자살과 직접적 상관관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요. 그래서 자살위험군을 분류해 관리 대책을 세웠습니다. 일반 환자도 병원에 가면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 여부를 쉽게 체크할 수 있도록 했고요. ‘나는 우울증이 아닌데?’ 하던 사람들도 자신이 잠재적 우울증 환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말이죠. 그래서 이들에게 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했습니다.

김> 내가 죽고 난 뒤에 누가 내 일기를 뒤져본다고 생각하면 끔찍한데요.

이> 부검이라는 말이 끔찍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사생활 침해 우려도 있고요. 죽은 사람을 한 번 더 파헤치는 일이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시체를 존중하는 동양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부검을 꺼리는 경우가 많았죠. 화장이 정착된 것도 얼마 안 된 일이고요. 시체가 온전해야 영혼이 떠돌지 않는다는 샤머니즘적인 믿음도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족들이 많이 반대를 한다고 합니다. 심리적 부검을 위해 면접 조사를 하는 도중에 격앙돼서 뛰쳐나가거나 울분을 터뜨리는 일도 많다고 하고요. 그래서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김> 가족들을 설득하는 게 관건이겠어요.

이> 심리적 부검을 하면 그 사람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높은 건물에서 떨어져서 죽었다면, 그게 발을 잘못 디뎌서 떨어진 건지 스스로 뛰어내린 건지 짐작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자살이라는 추측을 하더라도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그 심리 상태를 알 수가 없죠. 심리적 부검을 하면 이 사람의 생각과 죽기 직전 죽음에 대한 의지(intention)를 읽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사실 유가족들도 자살위험군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요. 무작정 덮어두고 잊으려 할 게 아니라 드러내고 적극적으로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김> 우리나라는 심리적 부검이라는 게 아직 낯선데, 얼마나 되고 있나요.

이> 2004년에 자살예방 대책 5개년 계획이란 걸 만들었는데, 오히려 자살률이 계속 높아졌습니다. 10만 명당 자살률이 23.7명에서 31명이 됐죠. 자살을 개인의 정신적 문제로 보고 접근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분석이 있었습니다. 우울증 치료에 정부 지원을 늘린다고 해서 자살률이 줄어들지는 않았습니다. 애초에 왜 우울증이 늘어나는가, 사회·경제적 환경에 대한 접근이 부족했다는 거죠.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이뤄진 심리적 부검은 7건 밖에 안 됩니다. 이것도 연구 차원의 조사였을 뿐, 핀란드나 미국처럼 정부가 주도해 제도를 운영한 사례는 없습니다.

김> 군인들 자살도 많은데,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하죠?

이> 아드님이 군대에서 자살했다는 말만 하고 시신을 건네 받는 경우가 많았죠. 이유는 알려주지도 않고요. 전체 사망원인 중 자살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3년 37%에서 2011년 67%로 더 늘었습니다. 해마다 80명 이상의 군인들이 자살을 선택하는데 심리적 부검이라기 보다는 진상 조사 차원이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니 대책도 만들지 못하는 사황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프로파일러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심리적 부검을 할 수 있는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은 인력은 10명도 채 안 될 거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국방부 내부 조직으로 운영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고요. 독립성과 객관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거죠.

김> 저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죽음이 떠오르는데요. 이렇게 자살의 원인을 규명해 미리 막아보자는 움직임도 있지만, 동시에 왜 죽음을 선택한 것인지 이유가 명확한데도 방치해두는 죽음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살려고 발버둥 치면서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는데 주변에서는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쌍용차의 경우, 한 아파트에서 두 사람의 희생자가 나오기도 했는데요. 자살도 있었고 돌연사도 있었는데 사인이 심근경색이지만 다른 말로 하면 울화병이죠. 그걸 견디다 못해 뛰어내리게 되는데 근본 원인은 같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두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이었다고 하는데 운구차가 아파트 마당을 떠나는 걸 베란다에서 지켜봤을 거라고 하죠. 그리고 보름 뒤에 뛰어내려서 목숨을 끊었습니다.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김> 심리적 부검 말고 생검이라는 것도 있네요?

이> 부검은 죽고 난 뒤에 하는 거지만 생검은 살아있는 조직을 떼내서 조사하는 걸 말하죠. phycological biopsy라고 하는데, 가족들의 반대가 워낙 크기 때문에 심리적 부검이 쉽지 않다면 대안으로 자살 시도자를 대상으로 치료 과정에서 자살을 시도하게 된 원인을 분석해 보자는 겁니다.

김> 한번 자살 시도를 했던 사람은 또 시도할 확률이 높다는 통계도 있었죠?

이>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자살 시도를 했다가 실패했던 사람은 1년 이내 16%가 자살 시도를 합니다. 심각한 자살시도를 한 경우 5년 이내 자살을 다시 시도하는 확률이 37%나 됩니다. 실제로 자살로 죽는 확률도 높아서 자살 사망자의 25~50% 정도가 이전에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이 자살로 죽게 될 확률이 보통 사람의 10배 정도가 됩니다. 15명 가운데 한 명꼴로 9년 이내에 자살로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살 요인을 분석하고 예방 대책을 마련하는 게 절실하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김> 자살의 원인은 다 다를 텐데, 어떤 해법이 필요할까요.

이> 기초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지만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정신적 문제가 29.5%, 질병이 23.3%, 경제적 어려움이 15.7%, 인간관계가 15% 등입니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1만1292달러였을 때 자살률이 13.6명이었는데 1인당 GNI가 2만562달러로 늘어난 2010년에는 33.5명으로 높아졌으니까요. 경제적 어려움이 자살의 가장 큰 이유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국민 행복지수(BLI·Better Life Index)를 계산해 봤더니 우리나라는 10점 만점에 4.20점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뒤에서 세 번째였습니다.

김> 결국 행복이 자살의 핵심 변수다, 그런 말일까요. 심리적 부검으로 그 인과관계를 분석할 수도 있겠네요?

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 여러 사례들을 모으고 유형을 분석하면 위험 신호를 늦지 않게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겠죠. 의학이 발달하기 전에 사체의 부검을 꺼리던 시절에는 맹장염이 굉장히 무서운 질병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간단히 충양 돌기를 잘라내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맹장염으로 죽는 일은 거의 없죠. 그래서 심리적 부검이 확산돼야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질병, 자살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게 나라마다 문화와 생활습관이 달라서 핀란드나 미국, 일본의 방식을 그대로 우리나라에 가져올 수는 없습니다. 한국형 심리적 부검 절차를 정립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다행히 부산시가 올해부터 부산경찰청과 함께 심리적 부검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김> 네. 숫자로 본 한 주간, 이번 주는 숫자, 42. 오늘 하루도 우리나라에서 마흔두 명이 자살로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늘어나는 자살과 자살을 줄이는 해법으로 심리적 부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미디어오늘 이정환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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