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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인터넷 거버넌스를 이야기해야 할 때다.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19, 2012

방송통신위원회가 정부의 인터넷 통제를 허용하는 국제 인터넷 거버넌스 조항에 찬성 표를 던져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방통위 관계자들은 지난 2일부터 14일까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국제전기통신연합(ITU) 국제전기통신세계회의(WCIT)에 참석해 국제국제통신규약(ITR) 개정안에 서명하고 돌아왔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은 일부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정치적 검열과 통제가 확산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서명을 거부했다.

최종 규약에는 정부의 인터넷 통제 관련 조항이 빠졌으나 미국 등은 “정보보호나 스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원국들이 공조할 수 있다”는 등의 문구를 문제 삼고 있다. 결국 최종 규약을 놓고 투표를 벌인 결과 193개 회원국 가운데 89개국이 서명을 했으나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한 55개국은 서명을 거부했거나 유보했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해 동유럽과 중동, 아프리카의 독재국가들과 함께 찬성 표를 던졌다.

문제는 국제적으로 인터넷 규제 이슈를 논의하는 자리에 방통위가 독자적으로 판단을 내려도 되느냐는 데 있다. 미국 등이 정부와 민간 각각 절반씩 대표단을 구성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방통위 관계자들로만 대표단을 구성했고 통신사 관계자들은 참관인으로 따라갔다. 시민사회나 민간 부문 대표는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인터넷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회의에 사회적 합의를 묻는 절차도 전혀 없었다.

회의 결과가 알려지자 일부 언론에서는 “방통위가 인터넷 규제에 찬성하는 개정안에 서명을 했다”는 취지의 보도를 내보냈다. 방통위는 해명자료를 내고 “우리 대표단은 ITRs 개정 내용이 국내법이나 국익에 배치되는 내용이 없으며, 2013년 서울 사이버스페이스 총회, 2014년 부산 ITU 전권회의 등 다양한 국제기구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우리나라가 2014년 ITU 전권회의 의장국인 점 등을 고려해 최종 서명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어설픈 해명도 논란이었지만 방통위는 회의 시작 며칠 전까지 누구를 대표단에 포함시킬 것인지 결정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준비가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방통위는 뒤늦게 논란이 확산되자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방통위 관계자는 “서명을 안 한 나라들을 반대하는 입장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면서 “이 나라들도 추후에 서명할 가능성도 있다”고 해명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한 번 입장을 밝히면 미국에 반대되는 입장을 계속해야 해서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 “국제적으로 부담이 큰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IT 선진국이라는 나라가 중동이나 아프리카 독재국가들이나 찬성하는 조항을 찬성하고 와서 국내에서 비난이 쏟아지는 건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지금은 “지금은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지만 좀 더 지켜봐 달라”고만 말했다.

김보라미 법무법인 나눔 변호사는 “서명을 한 이유가 우리나라가 차기 의장국이라는 건데 아무런 입장도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방통위가 이렇게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게 옳은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단순히 인터넷을 규제하느냐 마느냐를 넘어 인터넷의 주체를 누구로 보느냐의 논의인데 방통위는 아무런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불려나가 한 마디로 ‘멘붕’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덧붙였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이사는 “그동안 이명박 정부와 방통위의 스탠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새삼스럽게 놀랄 것도 없다”고 평가했다. 전 이사는 “인터넷 검열과 통제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정보보안이나 스팸 등을 이유로 국가가 인터넷 서비스를 제재할 수 있는 명분을 열어뒀기 때문에 향후 이런 조항이 국가관의 관계에서 구속력을 갖고 비관세 장벽으로 작동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익현 아이뉴스24 글로벌리서치센터 센터장은 “미국 등이 단순히 인터넷 규제에 반대해서 서명을 거부했다고 보는 건 비약이고 미국과 중국 등의 주도권 싸움의 성격도 있는 것 같다”면서도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방통위가 선뜻 서명을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 센터장은 “차기 전권회의 주최국이라는 명분 밖에 없는데 그럴수록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논의를 주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ITU 회의에서는 인터넷 규제 이슈 뿐만 아니라 DPI(심층패킷검사) 허용도 주요 쟁점이 됐다. 지금도 통신사들이 DPI를 트래픽 관리라는 명분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국제 표준이 도입될 경우 광범위한 개인정보 수집과 모니터링이 합법적으로 이뤄지고 특정 패킷을 차별 또는 차단하거나 정부가 이를 들여다 보는 일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논의 중인 비공개 문건이 유출돼 세계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오길영 신경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한번 규제를 시작하면 규제에 묶이게 되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한가부터 논의를 해야 한다”면서 “최근 논의는 아직 산소 튜브를 뽑을 정도로 생명이 위험하지 않는데 벌써부터 존엄사를 논의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DPI 허용 등의 이슈는 이건 단순히 한 나라의 법을 바꾼다거나 하는 차원이 아니라 국제적인 연대 아래서 새로운 인터넷 거버넌스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강장묵 동국대 전자상거래연구소 교수는 “DPI의 활용 방안만 논의되고 사업자 통제 방안이나 부작용은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다”면서 “기술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이 기술이 어떻게 악용되고 있는지가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표현의 자유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등이 이런 논의를 주도하고 있고 우리나라가 생각 없이 이에 동조하고 있는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ITU 회의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으로 인터넷 거버넌스를 둘러싼 논의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을 누가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정부의 개입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 등이 핵심 이슈다. 망중립성 논의를 주도했던 망중립성이용자포럼은 다음달 10일 인터넷 거버넌스 오픈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다. 방통위 관계자도 “향후 논의에서는 이용자 대표와 시민사회 진영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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