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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TV토론, 내가 박근혜라면.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10, 2012

내가 박근혜였다면 TV토론에서 “그래, 삼성을 다섯 토막, 열 토막으로 쪼개서 해체하면 한국 경제가 갑자기 달라지느냐, 일자리가 늘어나고 양극화가 해소되느냐”고 반문했을 것 같다. 물론 재벌 개혁이 중요하고 절박하고 시급한 이슈지만 그게 문제의 본질은 아니기 때문이고, 그게 과도하게 이슈를 장악하고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토론에서 이기려면 서로의 약한 고리를 먼저 치고 나와야 하는데 박근혜는 그러지 못했다.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려면 참모진부터 갈아치워야 할 것 같다. 박근혜와 그의 참모들은 대중 연설의 기본이 안 돼 있다. 내가 박근혜라면 “그래, 문재인 너는 3년 안에 기존의 순환출자를 모두 해소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야 했다. 문재인은 뭐라고 답할까. 모범답안은 “어렵겠지만 밀어붙여야 하고 못하면 의결권을 제한하면 된다”고 말하면 되겠지만 문재인은 아마도 정확하게 답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내가 박근혜라면 이정희에게도 “그래, 이건희가 과도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건 맞지만 이건희를 끌어내리면 재벌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것 같다. 박근혜는 적어도 장하준 정도를 읽고 미리 장하준을 인용해야 했다. “장하준 책 읽어 봤느냐, 나쁜 사마리아인이나,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나, 거기 보면 나온다, 재벌을 해체하면 그 자리에 주주자본주의가 들어올 텐데, 너는 거기 대안을 갖고 말하는 거냐”고 물어야 했다.

내가 박근혜라면 좀 더 치고 들어가서 (이정희가 삼성전자 주가 최고 기록을 이야기하기 전에) “삼성이 이렇게 잘나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야 했다. “네가 하자는 대로 하면 삼성 같은 기업을 만들 수 있느냐”고 물어야 했다. 물론 이정희는 “삼성이 양극화의 주범이고 삼성 때문에 수많은 비정규직이 울고 우리 사회가 성장의 한계를 맞게 됐다”는 식으로 답변하겠지만 일단 논쟁으로 만들기만 해도 이기는 거나 마찬가지다.

내가 박근혜라면 “출총제를 도입하고 순환출자를 금지하면 일자리가 늘어나느냐”고 반문했을 것 같다. 좀 더 들어가면 스웨덴 이야기까지 하면서 “문제는 이건희가 총수인 게 아니라 벌어들인 데 대해 제대로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이건희가 욕을 먹는 건 지배구조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풀어 말했을 것 같다. 물론 박근혜는 이 정도도 말하기를 부담스러워 했겠지만.

(물론 이런 논리에도 함정이 많고 반박할 여지도 많다. 내가 말하려는 건 이런 논쟁에서 보수가 훨씬 더 논리적으로 유리하다는 이야기다. 진보는 새로운 질서를 제시해야 하지만 보수는 과거의 성과를 복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니까. 지금의 박근혜 스탠스라면 장하준이 좋은 텍스트가 된다. 적당히 시장에 문제를 돌리고 박정희를 끌어안으면서 압축성장을 강조하고 복지까지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까. 그게 약한 고리다.)

장하준을 이렇게 변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삼성이 문제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삼성처럼 모험 투자를 하는 기업이 경제 성장을 이끈다. 성장은 부작용이 수반되기 때문에 이왕이면 압축 성장이 좋다. 이건희를 내쫓으면 그 자리에 주주 자본주의가 온다. 이건희 보다 더 무서운 게 시장 만능주의다. 시장이 나쁜 건 아니지만 시장의 통제 불가능한 투기적 속성이 문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여전히 국적 기업은 중요하다.”

박근혜는 치고 들어갈 타이밍에 공격을 하지 못했다. 문재인과 이정희의 약점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고 자신의 약점을 반격 포인트로 삼지 못했다. 아버지 박정희의 아우라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필요하다면 새마을운동도 팔고 포항제철도 팔았어야 했다. 그러나 박근혜는 어설프게 감세가 경제를 살린다는 주장만 되풀이 했다. 무작정 재벌 해체가 답이 아니라는 걸 수첩에 적어오긴 했겠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는 최소한의 토론의 기술도 익히지 못한 것 같다. “비정규직을 어떻게 줄일 거냐”고 묻고 상대방이 설명할 시간을 주기 보다는 “비정규직법을 통과시킨 게 노무현 때 아니었느냐”고 묻고 “기간제 2년 뒤 정규직 전환이 의무화되지 않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인정하고 들어가는 게 현명한 전략이 됐을 것 같다. 물론 문재인도 그런 답변을 하지 못했지만. 이런 지점에서 보수의 현실감각을 드러냈어야 했다.

내가 박근혜라면 “망할 기업은 망하게 해야 한다, 다만 노동자들을 구제할 방법을 찾자”고 제안했을 것 같다. 문재인이나 이정희는 이런 말을 쉽게 하지 못하니까. “정리해고를 못하게 하면 다들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으냐”고 좀 더 단호하게 물었어야 했다. 어차피 말 뿐인 구호일지라도 “진입과 퇴출을 자유롭게 하고 사양산업을 재조정하고 노동자들을 재교육하고 재취업시키는 역할을 국가가 맡겠다”고 말하는 게 좀 더 근본적인 해법이 된다.

내가 박근혜라면 “그래, 진보의 해법은 뭐냐”고 한 번 더 치고 들어갔을 것 같다. 한진중공업의 필리핀 수빅 조선소 이야기를 하면서 “중국은 임금이 5분의 1, 필리핀은 10분의 1인데 공장의 해외 도피를 막을 방법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고 “단순히 정리해고 금지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맞받아치는 전략을 선택했을 것 같다. 어떤 답변이 나오든 일단 질문만으로 먹고 들어갈 수 있는 선점 전략이다.

박근혜나 문재인이나 마찬가지다. 누구나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고 말한다. 차라리 좀 더 파격적으로 문국현처럼 일자리 나누기의 단계적 전략을 말하면 안 되나. 이를 테면 “노동시간을 70%로 줄이면서 노동생산성(효율성)을 20% 높이고 늘어난 16%의 인건비를 정부가 부담하되 세제 감면과 연구개발 지원으로 대체하도록 하겠다”든가. 보수라면 이 정도 공약은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박근혜라면 당연히 이명박과도 철저하게 선을 그었을 것 같다. 이명박 정부는 보수가 아니라 패거리 주의였다. “이명박 정부의 기조는 맞다. 다만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하면서 수출 중심의 성장 전략이 한계를 맞았고 무엇보다도 이명박 대통령은 자기 주변 사람들 이익을 챙겨주기에 급급했다. 그건 가짜 보수다. 진짜 보수가 필요할 때다.” 이 정도 멘트는 쳐줘야 하는 것 아닌가.

결과적으로 박근혜는 두 차례 TV토론에서 이명박과 아무런 차별화를 보여주지 못했다. 문재인과 이정희의 구체성 없는 공약을 반박하지도 못했고 딱히 그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했다. 무엇보다도 그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박정희 이데올로기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박정희를 버리지도 끌어안지도 못한 상태에서 어설프게 집중포화를 맞았다. 시종일관 두들겨 맞으며 변명하느라 바빠 “그럼 니들은 뭐가 있는데”라고 묻지도 못했다.

문재인·이정희 역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정치야 어차피 이미지고 박근혜에게 망신을 주는 데 충분했을지 몰라도 대안이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인상을 줬다. 보편적 증세가 해답이지만 사실 그건 누구나 안다. 국민연금 기금 고갈 누가 모르나. 건강보험 100만원 상한제 좋은 줄 누가 모르나. 문제는 그걸 어떻게 구현하고 어떻게 국민들을 설득시킬 것인지를 이야기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와 문재인의 공약이 표면적으로 거의 비슷하다면 문재인은 그게 왜 다른가를 설명하는데 집중했어야 했다. 문재인은 차라리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력은 이미 시장이 장악했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어떻게 시장에 맞서 싸울 것인지를 풀어냈어야 했다. 그리고 그게 시대적 과제라고 실패를 해봤기 때문에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그런데 박근혜 너는 실패를 인정하고 있지 않지 않느냐고 반문했어야 했다.

문재인이나 이정희는 이렇게 답변했어야 했다. “재벌해체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단순히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옳지 않은 것을 눈 감고 타협하지 않는 데서 지금부터라도 출발해야 한다”고. “지금까지는 그렇게 성장해 왔지만 앞으로는 함께 공존하는 해법을 찾자”고, “시장의 한계를 제대로 들여다 보고 시장을 적절하게 통제하고 동시에 희생을 최소화하는 것, 그게 진짜 경제 민주화”라고 이야기했어야 했다.

두 번째 TV토론은 그래서 특히 실망스럽고 지루하고 재미 없었다. 이정희 역시 좀 더 정교한 진보적 가치를 들고 나왔어야 했다. 2차 토론까지만 하고 하차할 거라는 전망이 나오는 시점이라 더욱 아쉽다. 박근혜를 끌어내리는 게 TV토론에 나선 목표라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좀 더 선명하게 진보적 가치를 드러냈어야 했다. 이런 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을 넘어 이런 것 한 번 해보자고 툭 던지는 뭔가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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