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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증세 자신 없으면, 공약 수준을 낮춰라.”

Written by leejeonghwan

November 14, 2012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저소득 계층의 건강보험료를 면제하겠다고 밝혀 눈길을 끈다. 안철수 후보가 그동안 강조해 왔던 보편적 증세라는 원칙에 어긋나는 데다 정작 건강보험 재정 확충에 대한 아이디어가 없어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발표하고 있는 일련의 보건복지 분야 공약들이 지난 7월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에서 밝혔던 아이디어에서 크게 후퇴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철수 후보는 11일 발표한 대선 공약 자료집 ‘안철수의 약속’에서 “절대 빈곤층에 해당하는 최하위 5% 소득 계층에 대한 건강보험료를 면제하고 상대적 빈곤층에 해당하는 하위 5~15% 소득 계층에 대해서는 건강보험료를 저리로 대출을 하겠다”는 등의 공약을 공개했다. “중소 영세 사업장의 사용자가 부담하는 건강보험료를 일부 지원하겠다”는 공약도 포함돼 있다.

안철수 후보는 ‘안철수의 생각’에서 “복지국가의 방향은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가 융합된 방향이어야 소득 하위층 뿐만 아니라 중하위층도 형편에 맞게 조금씩 함께 비용을 부담하면서 혜택을 늘려가는 등의 능력별 보편적 증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건강보험에 대해서도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국가가 건강보험 재정을 늘리고 각 가정도 형편에 맞게 약간씩 건강보험료를 더 내는 것이 현실적 방안”이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안철수 후보의 공약에서는 보편적 증세에 대한 언급을 찾아보기 어렵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한다는 내용은 있지만 어느 수준으로 확대할 것인지가 없고 본인 부담을 최소화한다는 내용은 있지만 어느 수준까지 최소화할 것인지가 없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서비스를 개선한다는 내용은 있지만 구체적인 목표가 없다. 재원 조달 방안에 대해서도 나중에 발표하겠다고만 했을 뿐이다.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야권과 보건의료 진영에서는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져 있는데 안철수 캠프는 이에 대해서도 국민적 동의를 거쳐 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만 한다”면서 “매우 실망스러운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오 실장은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안철수의 생각’이 ‘안철수의 약속’으로 진화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던데 내가 보기에는 ‘안철수의 생각’을 정점으로 후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저소득 계층에게는 당장 건강보험료를 면제해주는 게 큰 도움이 되겠지만 실제로는 연체가 오래 돼 보험급여를 받지 못하는 저소득 계층은 지금도 연체 보험료를 면제해주는 경우가 많다. 장기적으로는 보험료 상한을 높이거나 모든 소득계층에 거쳐 보험료 요율을 인상하는 게 근본적인 대책이다. 진보진영에서는 건강보험료를 평균 1만원씩 올려 의료비 개인 부담을 100만원으로 한정하는 대안이 논의되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오 실장 등이 주도하고 있는 건강보험 하나로 100만원 상한제를 공약으로 받아들이기로 약속한 바 있다. 환자가 전액을 부담해야 하는 비보험 진료를 건강보험 적용 대상으로 포함시키고 공공의료 병원을 확충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안철수 캠프에서는 재원 조달 문제를 이유로 난색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결국 공약에는 담기지 않았다.

오 실장은 “방향은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다”면서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재원 조달과 실행 방안을 제시하는 게 진짜 공약”이라고 강조했다. 오 실장은 “복지 분야에 한정해서 보면 차라리 문재인 후보가 훨씬 구체적이고 충실하다”고 지적했다. 오 실장은 “재원 조달 방안을 나중에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이처럼 목표가 구체적이지 않으면 재원 조달 역시 방향만 제시하면서 공약을 물타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한편 안철수 후보가 지난달 28일 발표한 자영업자 간이과세 확대 공약도 비슷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참여연대는 성명을 내고 “항상 상식을 강조하던 안철수 후보가 이런 조세공약을 제시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당초 보편 증세까지 생각한다던 안 후보가 과세기반을 훼손하는 공약을 내놓았다”고 비판했다. 소득세나 법인세의 탈루로까지 이어져 세원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안철수 후보는 보편적 증세에 대한 입장이 확고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경제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증세에 대해 원칙적으로 변화가 없느냐”는 질문에 “그럼요. 그것(증세) 밖에 답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여러 가지 세제혜택을 주는 부분들이 현실에 맞는가를 보고 세율을 올리는 것을 국민동의 하에서 진행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강조하면서 “점진적으로 가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안철수 캠프에서 경제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홍종호 서울대 교수도 “내년 국내외 불확실한 경제상황을 고려해 증세만이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대안이라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며 “증세 카드를 꺼내기 전에 조세 및 재정개혁을 통한 재원 확충 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캠프 내 원칙으로 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안철수 후보가 보편적 증세를 포기했다는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오건호 실장은 “보편적 증세를 국민들에게 설득할 자신이 없다면 공약의 수준을 확실하게 낮추는 게 맞고 국민들에게도 기대 수준을 낮추라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 실장은 “안철수 후보는 ‘안철수의 생각’을 출간하면서 이 책의 생각에 동의 여부를 묻고 지지하면 출마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제 와서 그보다 훨씬 후퇴한 공약을 들고 나와 지지를 선언하는 건 이율배반”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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