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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가 내놓은 새로운 게임의 법칙.

Written by leejeonghwan

October 24, 2012

포털 사이트 네이버 첫 화면이 크게 바뀐다. 뉴스캐스트가 처음 도입된 게 2009년 1월이니까 꼬박 4년 만이다. 내년 1월부터 적용될 뉴스스탠드의 일단 기본 콘셉트는 “보고 싶은 언론사의 뉴스만 골라서 본다”는 것.

지난 19일 NHN 발표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 뉴스캐스트를 전면 폐지하고 뉴스스탠드로 전환한다.
– 이용자들이 직접 첫 화면에 뜰 언론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선택을 하지 않을 경우 52개 언론사의 아이콘이 랜덤으로 뜬다.
– 첫 화면에는 기사가 사라지고 언론사 아이콘이 뜬다. 아이콘을 선택하면 해당 언론사 사이트의 첫 화면과 같은 형태의 팝업 창이 뜬다. 팝업 창의 크기는 네이버 메인의 절반 크기. 기사를 클릭하면 해당 언론사 사이트로 넘어가는 방식은 지금과 같다.
– 6개월 마다 이용자 선택 설정 기준으로 퇴출을 시키고 신규 진입을 허용한다.
– 종이신문의 경우 네이버에서 지면보기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필요하다면 유료 결제까지 지원한다.

뭐가 달라질까. 어떤 의미일까.

– 지금은 네이버를 열고 첫 화면에서 눈에 들어오는 기사 제목을 적당히 클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개편된 방식에서는 언론사를 골라 들어가는 절차를 한번 거쳐야 한다. 어느 언론사든 언론사 아이콘을 선택하기 전에는 기사 제목조차 볼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
– 한 언론사가 노출할 수 있는 기사가 9개에서 20개로 확대. 지금은 52개 언론사의 기사가 랜덤으로 노출되지만 이용자들이 언론사 선택 기능을 얼마나 활용하느냐에 따라 노출 정도가 달라질 수도.
– 네이버 입장에서는 가장 비싼 1인치라고 불렸던 이용자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금싸라기 공간을 뉴스스탠드로 넘어가는 거대한 배너광고 정도로 활용하는 셈.
– 이용자 입장에서도 뉴스 목록을 보기 위해 클릭을 한 번 더 해야 하는 데다 팝업 창이 한 번 뜨고 기사 제목을 클릭하면 창이 또 새로 뜨기 때문에 매우 불편하고 번거로운 방식.
– 애초에 뉴스캐스트가 자의적인 뉴스 편집의 정치적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였다면 이번 개편은 선정적인 기사 편집에 대한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궁여지책일 텐데.
– 여러 언론사의 첫 화면을 쉽게 넘겨볼 수 있다는 건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 다만 그걸 별도의 서비스로 제공하지 않고 이처럼 첫 화면에서 뉴스를 사라지게 만들어 인위적으로 유도하는 게 최선인지는 의문.
– 이번 개편에는 마이너 듣보잡 언론사들과 N분의 1로 섞이고 싶지 않다는 조중동의 강력한 요구도 상당 부분 작용한 듯. 조중동 뿐만 아니라 온라인신문협회를 중심으로 다른 일간지들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고.

낚시질이 사라질까. 언론사들 이해득실은.

– 뉴스캐스트 도입 1년 만에 네이버가 내놓은 대책이 언론사 사이트의 톱 기사와 뉴스캐스트 톱 기사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기꺼이 톱 기사를 팔아치우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실제로 뉴스캐스트에서 유입되는 트래픽의 3분의 2 이상이 톱 기사에서 발생하는 것이 현실.
– 뉴스스탠드 시스템에서도 이런 낚시질이 크게 줄어들 것 같지는 않은데. 적당히 그럴 듯한 톱 기사를 걸어두고 낚시질할 기사를 주변에 배치하는 형태로 전략이 바뀔 수도. 결과적으로 낚시질 기사의 양을 더 늘리는 유인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 모든 언론의 연예 매체화도 우려. 지금은 톱 기사만 팔면 되지만 연예인 이미지가 더욱 노골 적으로 전면 배치될 수도. 물론 네이버는 선정성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고. 이용자들 항의에 그 언론사를 선택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고 빠져나갈 구멍도 마련될 테니까.
– 이제 기사 제목이 아니라 브랜드로 경쟁하게 된다는 게 네이버의 설명인데 콘텐츠가 플랫폼과 무관하게 떠도는 건 이미 오래된 변화. 트위터에 떠도는 기사 링크는 브랜드와 무관한 경우가 많고 뉴스캐스트가 기사의 파편화를 가속화했던 것도 사실. 이제 와서 이용자들에게 기사를 브랜드로 소비하라고 하면 그게 먹혀들까.
–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상위 서너 개 언론사에 트래픽이 집중될 수도. 이를 테면 조선일보+한겨레+매일경제+마이데일리의 조합으로 설정한다든가. 여기에 중앙일보와 경향신문, 한국경제 정도가 더 붙는다든가. 정치적 성향에 따라 조중동만 선택하거나 한겨레·경향과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미디어오늘 정도만 묶어서 선택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 지금도 언론사를 선택하는 기능이 있지만 실제로 이용 비율은 10%가 안 된다는데. 뉴스스탠드에서도 이용 비율이 크게 높아지지 않는다면 네이버의 뉴스 서비스가 크게 위축될 수도 있고. 어쩌면 그게 진짜 네이버가 원하는 방향일 수도 있고.
– 지저분한 낚시질을 많이 하는 언론사를 자연스럽게 배제하는 긍정적 효과도 있겠지만 예기치 못한 뉴스 편중이 생길 우려도. 일부 언론사들은 페이지뷰가 최대 10배 이상 급증하는 효과를 보게 될 듯. 종합 일간지들 사이에도 편차가 클 것이고. 일부 언론사들은 퇴출도 불가피할 듯.

결국.

– 이번 개편은 언론사들의 네이버 의존도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가 될 듯.
– 미디어오늘이 코리안클릭에 의뢰해 지난 6월 기준으로 42개 언론사 페이지뷰를 분석한 결과 전체 페이지뷰 가운데 네이버 유입률은 평균 75.19%.
– 직접 방문자가 4명 가운데 1명 꼴 밖에 안 된다는 이야기인데. 네이버 첫 화면에서 언론사 사이트와 똑같은 레이아웃을 볼 수 있다면 굳이 언론사 사이트를 찾아갈 유인이 사라지는 셈.
– 기사의 경중 판단과 지면 배치, 어젠더 셋팅은 언론사의 고유의 영역인데 사이트를 통째로 퍼다 네이버에 갖다 바쳐야 하는 상황.
– 네이버가 언론사들에 이런 오만한 요구를 할 수 있는 건 막강한 트래픽 때문이겠지만. 사실 그 이용자 기반이라는 게 헐값에 사들인 뉴스 콘텐츠에서 비롯했다는 사실도 흥미로운 대목. 이제는 언론사들에 단순히 기사를 공급하는 것을 넘어 아예 포털 안으로 들어오라고 요구를 하고 있는 셈.
– 지금까지는 네이버가 언론사들에서 기사를 받아 유통했지만 이제는 직접 언론사를 유통하는 방식으로. 이용자들의 선택이라는 명분에 숨으면 정치적 시비도 선정성 논란도 피할 수 있고. 아웃링크 대신 인링크 방식의 뉴스 콘텐츠 트래픽을 늘릴 수도 있을 거고. 네이버 입장에서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얻는 셈.

아쉬운 건.

– 기계적인 랜덤 롤링 방식에서 벗어나 사용자들의 선택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건 여러 차례 토론회 등에서 제안했던 방식이지만 다만 좀 더 소셜하고 좀 더 능동적인 평가 방식을 도입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 문제의 핵심에 네이버의 높은 점유율과 여론 독과점의 우려가 있다. 그걸 해소하기 위해 뉴스캐스트를 도입했지만 오히려 뉴스 어뷰징을 부추겨 이슈와 어젠더가 실종되는 심각한 폐해를 불러왔다. 네이버의 점유율이 상당한 수준으로 낮아지지 않는다면 게임의 법칙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이며 여론의 편향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포털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망가진 뉴스 생태계를 복원하고 좋은 뉴스를 추천하고 공유하는 시스템을 네이버 외부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요원한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그걸 네이버에게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네이버는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비대해졌다. 아쉽게도 뉴스스탠드가 근본적인 해법이 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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