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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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많은 그림을 그렸는데 전혀 팔리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저는 몹시 괴롭습니다. 제발 성급하게 저를 탓하지는 마세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저도 잘 모르겠거든요.”

빈센트 반 고흐, 동생 테오의 부인 요한나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빈센트 반 고흐는 많은 자화상을 그렸다. 그런데 ‘왼손잡이’라고 불리는 이 그림은 어딘가 이상하다. 이 그림은 고흐가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던 무렵 그의 정신상태를 가장 잘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이 그림은 고흐의 그림이 아닐 수도 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 그림의 부분 부분은 모두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다. 고흐는 한번 그린 그림을 절대 비슷하게 다시 그리지 않았다. 이 그림은 아래 두 그림을 포함한 고흐의 여러 그림들을 조각조각 짜집기해서 만든 위작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몇가지 증거가 있다. 먼저 이 그림은 다른 많은 고흐의 자화상과 달리 고흐가 왼손잡이로 그려져 있다. 자화상은 보통 거울을 놓고 그린다. 그래서 자화상에서 팔레트는 보통 왼쪽에 놓이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팔레트가 오른쪽에 놓여있다. 게다가 팔레트 위에 놓인 물감은 고흐라면 절대로 쓰지 않을 지저분한 빛깔을 띠고 있다. 팔레트도 이상하기만 하다. 손가락을 넣는 구멍이 가장자리와 너무 가깝게 붙어 있다. 이런 팔레트는 세상에 없다. 이런 팔레트를 고흐는 앉아있는 것도 아니고 서 있는 것도 아닌 굉장히 불편한 자세로 들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상한 부분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우선 머리뼈가 둥글지 않고 군데군데 각이 져있다. 또 유난히 뺨에 살이 없고 홀쭉해보인다. 이마의 방향과 뺨의 방향, 입술과 턱의 방향이 모두 제각각으로 틀어져 있기 때문이다. 두눈도 자세히 보면 하나의 평면에 놓여있지 않다는 걸 알수 있다. 게다가 왼쪽눈이 이상하게 좁다. 머리털도 자다 일어난 것처럼 마음대로 뻗쳐있다. 수염이 자란 방향도 아래의 두 그림과 전혀 다르다.

 

표현 방법의 차이라고 보기에는 고흐의 다른 그림들과 너무 다르다. 옷 매무새를 봐라. 망토 사이로 보이는 흰 셔츠는 망토를 삐뚤게 돌려 입었거나 고흐가 굉장히 뚱뚱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만큼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 그림의 남자는 고흐를 많이 닮기는 했지만 고흐는 아니다. 고흐가 그린 그림은 더욱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 그림은 고흐의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붓놀림이 굉장히 지저분하다. 빛깔도 조잡하다. 고흐는 결코 이런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이 그림은 계획적이고 용의주도한 방법으로 만들어진 위작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그림을 그려서 고흐의 작품으로 속여 판 것일까.

‘고흐의 증명’을 쓴 고바야시 히데키는 이 그림이 위작이라고 주장하는데 그치지 않고 누군가가 이같은 위작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가정해본다. 이들이 그리고 싶었던, 또는 만들어 내고 싶었던 건 아마도 정신분열증으로 시달리던 심각한 표정의 고흐였을 것이다. 이 그림에 고흐가 자살을 할 수밖에 없었던 비밀이 숨어있다.

 

고흐가 정신병을 앓던 무렵, 생레미의 병원에서 그린 자화상은 두개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위 세 그림 가운데 두번째 ‘북방을 그리며’와 세번째 ‘불굴의 자화상’일 것이다. 두번째와 세번째의 그림은 위작인 첫번째와 확실히 다르다. 정신병을 앓고 있기는 하지만 뒤의 두 그림에는 현실을 이겨내려는 결연한 의지와 희망이 드러나 있다. 그러나 첫번째 그림 ‘왼손잡이’에는 어딘가 침울하고 불안한 기운이 감돈다. 심지어 눈의 초점조차도 제대로 맞지 않는다.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왼손잡이’가 과장되고 왜곡되게 그려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고흐가 죽고 난 2년 뒤, 고흐의 동생 테오까지 죽으면서 고흐의 모든 그림은 테오의 부인 요한나가 관리하게 된다. 만약 이 그림이 위작이라면 요한나가 그 사실을 모를 수 없다. 돈 문제로 그린 위작은 아니다. 고흐의 그림이 제대로 평가받기 시작한 것은 이 위작이 그려지고 나서 한참이 지난 뒤의 일이니까. 왜 요한나는 이 그림을 묵인한 것일까. 혹시 요한나가 이 그림의 공범이기 때문은 아닐까.

고흐가 살아있던 무렵, 그리고 이 그림이 그려졌다고 알려진 그 무렵에 쓴 요한나의 일기를 보자.

“나는 그를 환자로 생각했다. 그런데 내 앞에 나타난 사람은 혈색 좋은 아주 건강한 사람이었다.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던 그는 상당히 단호해 보였다. (중간 생략) 그는 완전히 회복된 듯했다. 남편인 테오보다도 훨씬 건강해 보였다.”

그런데 고흐가 죽고 난 23년 뒤 요한나는 회고록 ‘추억’에서 전혀 다른 소리를 한다.

“고흐는 정신병에서 오는 고통을 더이상 참고 견디지 못해 그만 죽고 말았다. 나로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흐는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고 미쳐서 귀를 자르고 결국 자살한 불운한 천재 화가였다. 요한나가 숨기고 있는 비밀은 뭘까. 요한나는 세번째 그림 ‘불굴의 자화상’을 첫번째 그림 ‘왼손잡이’로 바꿔놓았다. 우리의 기억에는 정신병을 이겨내고 현실과 맞서 싸우면서 힘에 넘치는 그림을 그려냈던 고흐의 말년은 남아있지 않다. 정신병자의 비참한 최후만 남아있을 뿐이다. 만약 이런 일련의 추론이 사실이라면 요한나는 왜 ‘왼손잡이’를 만들어 고흐를 왜곡해야만 했던 걸까.

‘왼손잡이’가 위작이라면, 추론해 보건데 고흐의 죽음은 정신병이 아니라 경제적 문제였을 수도 있다. 고흐를 자살로 몰고 간 사람은 결국 요한나였을 수도 있다. 고흐는 잘못 이해되고 있을 수도 있다.

서점에서 우연히 고른 오래된 책이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결코 살 수 없는 책이랄까. 다음은 고흐가 살아있을 때 쓴 유일하게 고흐를 제대로 평가한 논문이라고 알려진 알베르 오리에의 논문 서문.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에서 우리가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한 인간으로서 더 나아가 예술가로서의 그의 기질이다. 이 말은 그의 생애를 통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모든 작품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은 ‘과잉’이다. 과잉은 힘, 신경, 거친 표현에서 두루 나타난다. 대상의 특질을 끌어내는 정열, 형태의 대담성과 단순성, 태양을 캔버스에 담은 오만함을 볼 때 그는 분명 강인한 존재고 대담한 남자다. 가끔은 거칠고 세련되지 못한 부분도 발견되지만 어떤 때는 깜찍할 정도로 섬세하다. 그리고 그가 그린 작품속에 나타나는 방종을 생각하면 그는 환상가와 태연자약하는 속물에 대한 적이며 그림에 취한 거인이다. 이 남자는 아마도 골동품을 주무르는 일보다도 산을 부수는 일을 선택할 사람이다. 그는 예술이란 협곡에 자기가 직접 용암을 들이부을, 끓어오르는 정열의 소유자다. 엄숙하고 그로테스크한, 거의 병적에 가까운 무서운 광기를 가진 천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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