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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추정 원칙을 인권으로 이야기할 때 생기는 문제.

Written by leejeonghwan

October 11, 2012

(독자 심보준님이 메일로 보내주신 글입니다. 동의를 얻어 전재합니다.)

9월 2일에 쓰신 “조선일보 고종석 오보 사진과 30년 전 고숙종 사건의 교훈” 기사를 잘 읽었습니다.

http://leejeonghwan.com/media/archives/002196.html

제가 관심있는 주제여서 한달이 지났지만, 블로그에 댓글로 글을 남기려 했으나, 왠일인지 댓글 기능이 에러여서 이렇게 메일을 드립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싶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피의사실 공표금지를 얘기 할 때, ‘인권’은 언급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헌법 제27조 4항에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제 27조 3항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후략)” 에 이어 나오는 문맥상, 이는 무죄 판결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피의자가 받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이해됩니다. 이는 매우 합리적이고, 구체적이며, 꼭 필요한 장치입니다.

현 사태의 본질은 헌법에 나오고, 이를 위해 피의사실 공표금지를 위한 법률까지 있는 마당에, 언론과 경찰, 검찰이 공공연히, 관행적으로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이 원칙을 어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무죄추정의 원칙에 대해서 ‘인권’이라는 문구를 빼자고 주장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 원칙은 인권을 다루는 원칙이 아닙니다. 개인이 국가의 실수로 입게 되는 피해로 부터 보호를 받는 것을 인권의 범주로 취급 하자면 인권이 너무 광범위하고 추상적이 되어 버립니다.

결과적으로 무죄추정의 원칙 논쟁이 피의자(누군가에게는 그냥 범죄자)의 인권 VS 선량한 보통사람의 인권 이라는 논쟁구도로 만들어지는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런 구도로는 단 한명도 설득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소중한 헌법의 한줄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로 인해 ‘인권’ 그 자체 마저 공격 당하는 현실입니다. 범죄자의 인권을 보호하다 ‘인권’이 희화화 되고, 위태로워 지는 상황입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피의자의 인권은 부득이하게 엄연히 박탈당하고 있습니다(구속 기소에 의한 신체의 자유 박탈). 형이 확정된 범죄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범죄자, 피의자의 인권은 무죄 추정의 원칙과는 다른 영역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피의자의 인권은 구치소에서, 범죄자의 인권은 교도소에서 지켜져야 겠지요.

무죄 추정의 원칙은 분명히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거의 ‘개무시’ 수준이라고 해야 될 판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조직적인 헌법소원 운동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인권’ 논쟁이 아닌, 먼저 헌법 조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전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 무죄 추정의 원칙을 옹호 하는 진영에서는 의도적으로 피의자의 ‘인권’에 대한 언급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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