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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했던 언론 탄압 5년의 역사.

Written by leejeonghwan

September 30, 2012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특히 언론 자유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라는 당선인의 의지에 정면 배치되는 것으로 인수위 내부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깊은 유감이다.” 2008년 1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시절, 인수위원회 이동관 대변인(그는 이후 청와대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핵심관계자’로 불렸다)이 ‘인수위가 언론사 간부의 성향을 파악하도록 했다’는 언론 보도 직후 뱉은 말이다. 그러나 그 ‘있을 수 없는 일’은 5년 동안 계속 터져 나왔다.

출발부터 남달랐던 이명박 정부는 집권 기간 내내 언론장악과 여론통제의 욕망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이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라고 불렸던 최시중씨를 방송통신위원회 초대 위원장에 앉힌 것이 시작이었다. 방통위는 방송과 통신의 융합 환경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를 통합해 출범했으나 실제로는 막강한 이권을 배분할 권한을 쥐고 방송과 통신을 쥐락펴락하는 여론 장악의 첨병으로 활동해 왔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곧바로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을 틀어쥐기 시작했다. 정연주 KBS 전 사장 사퇴 압박이 신호탄이었다. 검찰이 배임 혐의로 기소했고 국세청 소송을 조정으로 합의했다는 이유로 감사원 특별감사 받기도 했다. 이를 근거로 그해 8월 KBS 이사회는 정 전 사장의 해임 제청안을 가결했고 이 대통령은 정 전 사장을 전격 해임한다.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방송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결정이었다.

YTN에는 그해 7월 MBC 보도본부장 출신으로 이 대통령 대선 캠프 방송 특보를 맡았던 구본홍씨가 낙하산 사장으로 내려온다. 구 전 사장은 노조의 출근 저지 투쟁에 밀려 호텔을 전전하다가 밤늦게 몰래 회사에 잠입하거나 한 번 출근하면 며칠씩 사장실에서 먹고 자면서 파행적인 경영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해 11월 무더기 징계를 단행한다. 돌발영상 출신의 노종면 위원장을 비롯해 YTN 해직 기자 6명은 아직까지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MBC도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뉴스데스크 앵커 출신의 엄기영 전 사장이 그해 12월 사표를 냈던 건 청와대의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김우룡 전 이사장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부터 ‘큰집(청와대)’에서 엄 전 사장의 사퇴를 종용했다. “엄 사장에게 문 걸어 잠그고 이사들 사표 받아오라고 시켰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엄 전 사장이 ‘좌파 대청소’를 제대로 하지 못하자 그 역할이 후임 김재철 사장에게 맡겨졌다. ‘좌파 적출’은 이명박 정부 초기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입에 달고 다녔던 말이다. 유 전 장관은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단체장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면서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KBS에서 정연주 전 사장을 내몰았던 것처럼 표적 감사와 강제해임이 곳곳에서 자행됐다.

김우룡 전 이사장의 신동아 인터뷰에 따르면 김재철 MBC 사장은 “‘큰집’에 불려가 ‘쪼인트’를 까이고 매도 맞고” 한 뒤 “MBC 내부의 좌파 70~80%를 정리”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초기 미국산 수입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광우병 논란을 촉발시켰던 ‘PD수첩’이 집중 타깃이 됐다. 김 전 이사장은 ‘PD수첩’을 “반정부 투쟁의 본산”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가 한 차례 물갈이되자 본격적인 언론 장악이 시작됐다. 검찰은 2009년 3월 소환에 불응하던 ‘PD수첩’ PD들을 체포했다. 검찰은 ‘PD수첩’ 광우병 편이 다우너 소를 광우병에 걸린 소인 것처럼 오해하도록 하는 등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을 과장했다는 이유로 MBC 본사와 제작진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PD수첩’의 명예훼손 재판은 2011년 9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이 났지만 MBC는 사과 방송을 내보내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노종면 YTN 전 노조 위원장이 체포된 것도 ‘PD수첩’ 수사가 한창이던 무렵이었다. 그해 4월에는 촌철살인의 클로징 멘트로 인기를 끌었던 신경민 뉴스데스크 앵커가 경질됐고 ‘PD수첩’ PD와 작가들이 줄줄이 검찰에 체포됐다. 검찰은 ‘PD수첩’ 작가들의 전자우편까지 공개하면서 언론인들을 겁박했다. MBC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진행했던 방송인 김미화씨와 KBS ‘스타골든벨’을 진행했던 김제동씨 등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교체되기도 했다.

그해 7월 한나라당은 신문의 방송 겸영을 허용하는 방송법 개정안 등 미디어 관련법안을 날치기 통과시킨다. 방송법의 경우 정족수에 미달돼 부결됐으나 재투표를 실시해 통과됐다. 재투표의 법적 효력 논란과 함께 일부 의원들의 경우 대리 투표가 적발되기도 했지만 헌법재판소는 민주당의 권한쟁의 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이 법은 이듬해인 2010년 12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등에 방송 진출을 허용하는 근거가 된다.

종합편성채널은 기획 단계부터 법안 마련과 통과, 시행단계에 이르기까지 특혜와 유착으로 점철돼 왔다. 미디어법 통과 이후 종편 진출을 희망하는 신문사들 지면에서는 정부 비판 기사가 사라졌다. 정부는 종편 사업자 선정을 미루면서 신문사들을 통제했고 협조에 보답이라도 하듯 종편에 아낌없는 특혜를 쏟아 부었다. 지상파 수준의 커버리지를 보장하면서 종편에 광고 직접 판매와 중간광고, 간접광고 등을 허용한 것도 엄청난 특혜였다.

비판 언론에 대한 탄압의 첨병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있었다. 방통위 하부기관인 방통심의위는 과거 방송심의위원회 시절과 달리 정부 비판 프로그램에 징계를 쏟아냈다. 광우병 위험 논란을 다룬 MBC ‘PD수첩’이 시청자 사과 명령을 받았고 천안함 침몰 사고 의혹을 다룬 KBS ‘추적60분’은 경고 조치를 받았다. 공정성의 기준도 모호하지만 이런 제재조치가 사전 검열 효과를 만들고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 기능을 위축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2008년 11월에는 낙하산 사장에 반대해 검은 색 정장을 입고 출연한 YTN 앵커들이 시청자 사과 조치를 받았고 같은 해 12월에는 미디어법 논란을 보도한 MBC ‘뉴스후’와 ‘뉴스데스크’도 각각 시청자 사과와 경고 조치를 받았다. MBC 라디오 ‘박혜진이 만난 사람’은 일제고사를 거부해 해임됐던 교사들을 출연시켜 일방의 의견을 전달했다는 이유로 주의 조치를 받았다. 유성기업 파업을 다룬 라디오 프로그램들도 같은 이유로 잇따라 권고 조치를 받았다.

자기검열도 확산됐다. MBC는 ‘PD수첩’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에 대해 불방을 지시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시사 프로그램 ‘후 플러스’와 ‘W’는 결국 폐지됐다. KBS에서는 ‘윗선’의 지시로 ‘추적 60분’ 4대강 편이 불방되기도 했다. 김진숙씨가 한진중공업 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하고 있을 때 ‘PD수첩’ PD들은 발제를 하자 “일개 회사의 노사문제에 왜 ‘PD수첩’이 가야 하느냐”는 답변을 들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지난해 1월 YTN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인터뷰하고도 방송을 내보내지 않아 논란이 된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조찬 기도회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떠들썩한 화제가 됐지만 MBC에서는 이 소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일찌감치 퇴출된 김미화씨와 김제동씨 뿐만 아니라 진중권 동양대 교수, 가수 윤도현씨 등이 이른바 방송 출연 금지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언론인들의 분노는 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해인 2012년에 들어서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에서 카메라 기자들이 두들겨 맞고 쫓겨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 것도 이 무렵이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해 10·26 지방선거 때부터 KBS와 MBC는 극심한 편파 보도로 민심을 잃었다. 11월22일 한미 FTA 비준안이 날치기 통과됐을 때도 방송에서는 국회의 난투극에 초점을 맞출 뿐 비준안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 뉴스에 국민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광우병 촛불집회에서 “힘내라 MBC”라는 구호를 외쳤던 것과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정연주 전 사장을 지키기 위해 광화문에서 여의도 KBS까지 촛불행진을 벌일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기자들이 취재 현장에서 몰매를 맞고 있다. “방송사 로고를 가리지 않으면 취재를 못할 지경”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관성과 타성에 움츠려들었던 언론인들은 그때서야 정신을 차렸다.

급기야 지난해 12월 국민일보가 전면 파업에 돌입한 데 이어 1월에는 MBC, 3월에는 KBS와 연합뉴스, YTN이 동시다발적으로 파업에 돌입했다. 엉망이 된 방송, 정권 말 레임덕 현상이 시작된 뒤에야 거리로 나온 기자·PD들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낙하산 사장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정치권도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나 언론 자유에 대한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고 결연했다. MBC의 170일 파업은 사상 최장기 파업으로 기록됐다.

지난 4·11 국회의원 선거는 여론조사 결과를 뒤집고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KBS와 MBC가 정권에 장악된 상태에서 민간인 불법사찰이나 4대강, 한미 FTA 등의 이슈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이 쏟아내는 김용민 막말 파문이 모든 의제를 잠식했다. KBS와 MBC는 정권 심판 대신 김용민 심판이라는 프레임을 내세웠고 정치 혐오는 낮은 투표율로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 4년, 언론 장악의 참담한 결과였다.

기자들이 떠난 KBS와 MBC 뉴스는 저널리즘의 바닥을 보여줬다. 대통령의 친 형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에게 구속 영장이 청구됐다는 소식을 방송 뉴스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일 군사교류협정을 둘러싼 논란도 축소 보도하거나 논점을 교묘히 은폐했다. 삼성 특검 출신의 조준웅 변호사의 아들이 삼성전자에 특채됐다는 의혹은 취재를 끝내놓고도 방송되지 않았다. 만도와 SJM 등 노동 탄압을 다룬 취재 아이템도 잇따라 불방됐다.

파업이 끝났지만 MBC는 파업에 참가했던 기자·PD들을 현장에 복귀시키지 않았다. 시용기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현장을 뛰어다녀야 할 기자와 PD들이 브런치 만들기 교육을 받거나 신사옥 건설팀 등에 배속돼 허송세월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에 따르면, MBC는 8명을 해고하는 등 총 219명을 징계했다. KBS는 징계자가 133명에 이른다. 국민일보는 해고 3명을 포함해 총 20여 명을 징계했고, YTN은 해고 6명 등 51명을 징계했다. 연합뉴스는 13명을 징계했고, 부산일보에서는 편집국장을 대기발령하는 등 4명을 징계했다.

이 대통령은 언론장악의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을 수도 있다. 집권 기간 내내 언론을 쥐고 흔들면서 여론을 겁박했다. 정권에 불리한 뉴스가 나가지 않도록 손을 쓰거나 아예 알아서 기도록 만들었다. 보수 언론은 노골적으로 정권 편향적인 뉴스를 내보냈다. 비판적인 언론인들을 퇴출하는 데도 성공했다. 턱없이 낮은 국정 지지도가 무색하게 정권 말 총선에서 집권 여당이 승리하는 이변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정권 재창출을 노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정권 말까지 방송을 손에서 놓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 입장에서도 지난 4월 총선처럼 뉴스 없는 선거가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MBC에서는 지난 7월 김재우 방문진 이사장이 연임됐고 이달 5일에는 1980년대 ‘땡전뉴스’의 주역이었던 이길영 KBS 감사가 KBS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EBS에서는 이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의 오랜 친구인 이춘호 이사장이 연임에 성공했다.

이명박 정부는 오는 12월19일 대통령 선거 때까지 김인규의 KBS와 김재철의 MBC, 그리고 조중동의 공조 체제로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비판 여론을 겁박하면서 정부 여당에 유리한 구도를 계속 끌고 갈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경우 정치 혐오로 범벅이 된, 이슈가 사라진 선거를 한 차례 더 치러야 할 수도 있지만 지상파+조중동의 카르텔이 지난 4월 총선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관측도 많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 5년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KBS 이사회와 MBC 방문진 이사회의 정치적 독립을 제도화하고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또한 대선 후보들은 이명박 정부가 조중동에 건넨 특혜를 철회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어야 한다”면서 “정수장학회의 사회 환원도 대선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미디어오늘 추석 특별판 박장준·이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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