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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밀레의 스물한살.

Written by leejeonghwan

September 3, 2003

스물한살의 유밀레(본명 남윤정)는 제멋대로였다.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2학년이었던 그는 난데 없이 미국 유학을 보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대학만 들어가면 뭐든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우기는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생떼를 부린 끝에 허락을 받아냈다.

학교를 자퇴하고 미국에 건너간 유밀레가 찾은 곳은 네바다 주립대학 호텔경영학과.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때만해도 유밀레는 머라이어 캐리 같은 세계 최고의 가수가 되는게 꿈이었고 일단 미국의 문화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어, 프랑스어, 일어, 중국어, 베트남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읽고 쓰고 말할 줄 알고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발레와 힙합, 재즈댄스에 요가와 킥복싱까지 뭐든지 자신 있었으니 뭐든 가능할 것만 같았다. 그뒤 1년반 동안 유밀레는 온갖 오디션을 쫓아다녔다. 그러나 뜻밖에도 아무도 유밀레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동양인의 한계였을 수도 있고 어쩌면 외모나 재능의 한계였을 수도 있다.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이르지만 유밀레의 미국 생활은 실패였다. 학비를 버느라 내내 아르바이트에 매달렸고 시간은 훌쩍 흘러갔다. 참담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돌아온 유밀레는 벤처 사업가로 변신했다. 2000년 4월 영화감독 출신인 유영진 사장과 손잡고 만든 회사가 밀레21. 몇군데 벤처캐피털이 모여 100억원의 자본금을 댔고 밀레21의 야심만만한 실험이 시작됐다.

밀레21의 첫 사업은 이른바 문화 공동체의 실험이라고 불렀던 밀레카드였다. 180만명의 회원이 1년에 1만원씩 회비를 내면 그걸 모아 문화 산업에 투자를 한다. 1만원이면 애인과 영화 한편 볼 돈도 안되지만 180억원이 모이면 영화 대여섯편을 거뜬히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만든 영화를 회원들은 물론 무료로 볼 수 있다. 영화가 성공하면 이익금은 다시 다른 영화에 재투자된다.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 콘서트와 음반 등 가능성만 있다면 어디든 투자할 수 있다. 이른바 문화의 확대 재생산인 셈이다. 밀레카드는 분명 새롭고 의미있는 시도였다.

그리고 유밀레는 2000년 1월 드디어 첫 음반 ‘동풍’을 내놓았다. 뮤지컬 명성황후의 음악감독 박칼린씨와 사진작가 김중만씨, 디자이너 진태옥씨 등 쟁쟁한 멤버들이 이 ‘동풍’ 프로젝트에 달라붙었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참담했다. 밀레카드는 생각만큼 인기를 끌지 못했고 ‘동풍’ 또한 전혀 팔리지 않았다.

그뒤로도 밀레21은 꾸준히 새로운 사업 계획을 만들어냈고 그 가운데 몇몇은 눈에 띄게 성공했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에 있는 유밀레 공화국에 가면 밀레21의 야심을 읽을 수 있다. 유밀레 공화국은 흔한 옷 가게와 다르다. 이곳에서는 옷과 함께 새로운 사고와 자기표현, 생활방식 등 그야말로 유밀레의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팔려나간다.

유밀레는 지난해 램페이지를 찾아가 래리 핸슨 회장을 만나 아시아 독점 판매권을 따냈다. 램페이지는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헐리우드의 내노라하는 가수와 배우들이 가장 즐겨 입는 굉장히 야한 의류 브랜드다. 우리나라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핸슨 회장은 어느날 배꼽티에 구멍뚫린 청바지 차림으로 회장실을 치고 들어온 유밀레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유밀레는 서양 브랜드가 동양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우리나라 여자들의 성향을 논리 정연하게 설명했고 핸슨 회장은 이 정도면 독점 판매권을 줘도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밀레21은 램페이지 뿐만 아니라 스티브매든, 스티비스, 머드진 등 세계적인 브랜드의 독점 판매권을 확보하고 백화점에도 납품을 시작했다. 밀레21의 사업영역은 이제 패션과 문화 산업을 망라한다. 밀레21은 독특하고 위험한만큼 성장 가능성이 높은 회사다.

유밀레의 성공을 이야기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유밀레는 여러차례 실패를 겪으면서도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멀리 내다보고 한발 앞서 크게 생각했다. 그런 자신감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기꺼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유밀레가 만약 스물한살에 우물을 벗어나 미국으로 떠나지 않았어도 지금의 밀레21이나 유밀레 공화국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남들은 적당한 대기업에 들어가 월급쟁이 생활을 시작할 나이에 유밀레는 벌써 세계를 무대로 뛰고 있다. 유밀레는 일찌감치 모험을 선택했다. 험난한 모험이었지만 지금 유밀레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만만하고 당당하다. 그리고 일을 사랑하고 기꺼이 즐기고 있다. 스물한살, 지금은 모험이 필요할 때다. 우물안 개구리를 벗어나라. 머물지 말고 더 큰 세상으로 나가라. 기꺼이 자신을 험한 파도에 부딪혀도 좋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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