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때문에 나라 망한다? 긴축 때문에 더 빨리 망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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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의 애물단지가 된 그리스. 언론은 그리스 정치권의 포퓰리즘적 복지 정책을 비난하면서 긴축정책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그리스를 압박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극복했던 것처럼 구조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그리스는 과도한 복지 지출 때문에 재정 위기를 맞게 됐다. 우리나라도 복지 지출을 줄이지 않는다면 그리스 꼴이 날지도 모른다는 게 언론의 경고다. 과연 그럴까.

그리스는 2011년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3100억 달러로 우리나라의 4분의 1 수준이다. 인구는 1100만 명이다. 국가부채는 4000억 유로로 GDP 대비 165%에 이른다.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9%다. 성장률은 -7%로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도 못 갚고 있는 형편이다. 심각한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최악의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하고 그리스의 부실이 다른 나라들로 전염될 경우 세계적인 장기 불황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선 그리스의 1인당 국민소득(GNP) 대비 정부 복지지출 비중은 21.3%로 유로존 회원국 가운데서는 가장 낮은 수준이다. 덴마크는 26.1%, 핀란드는 24.9%, 스웨덴은 27.3%에 이른다. 단순히 복지지출이 많아서 망한다면 스웨덴부터 망해야 한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평균은 19.3%, 우리나라는 7.5%다. 복지지출이 많아서 위기에 직면했다는 비판은 사실관계부터 틀렸다. 복지지출을 늘리면 그리스 꼴이 될 거라는 비판 역시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세계일보는 16일 사설에서 “그리스 위기의 본질은 재정난이지만 그 배후에는 포퓰리즘 정치가 자리 잡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가까운 미래에 그리스 꼴이 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길이 없다”고 비장한 경고를 쏟아냈다. 현진권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6일 매일경제 칼럼에서 “그리스 위기의 본질도 잘 살펴보면 정치권의 복지 확대로 인한 것”이라며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정책 과제는 ‘재정건전성’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7일 조선일보에 실린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의 칼럼에서도 같은 논리가 등장한다. “복지국가 건설에 앞장섰던 독일·스웨덴·노르웨이 등 중·북구 선진국들이 긴축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복지축소와 균형예산을 꾀하는 반면, 스페인·그리스 등 일부 올리브 벨트(남유럽) 국가들은 복지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복지가 위기의 원인이라는 진단과 함께 재정지출 축소가 유일한 위기 해법이라는 주장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밖에도 보수·경제지들은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면서 정부 재정지출이 급격히 늘어난데 다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노령연금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어난 것을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물론 그리스의 높은 지하경제 비중과 부정부패도 주요한 원인이다. 그러나 짚고 넘어갈 대목은 공공부문 비중이나 과도한 재정적자, 노령연금 부담 등이 그리스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그리스만 문제가 된 걸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리스의 재정 불균형이 아니라 유로존의 무역 불균형에서 구조적인 원인을 찾는다. 크루그먼은 지난달 뉴욕타임즈 칼럼에서 “여전히 금융지원이 충분하지 않다”면서 “유럽중앙은행이 물가안정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고, 유럽에서 3~4% 정도의 인플레이션을 수용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유럽중앙은행과 독일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게 크루그먼의 진단이다.

스페인과 그리스는 다른 유로존 나라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노동생산성이 떨어진다. 이런 나라들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데 유로존 안에서는 이런 정책을 쓸 수가 없다. 결국 임금을 삭감하는 수밖에 없는데 스페인이나 그리스뿐만 아니라 유로존 전체에서 경쟁적으로 노동 유연화를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에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밑바닥으로의 경쟁인 셈이다.

유로존 나라들은 유로화 강세를 유지하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임금을 깎고 노동강도를 높여가면서 주변국에 희생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성장해 왔다. 제조업이 탄탄한 독일이 이 과정에서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누렸지만 스페인과 그리스 등 남유럽 나라들은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구조적인 위기를 맞게 됐다. 그리고 그 결과 유로존이 붕괴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독일 등은 이들 나라들에 고통스러운 긴축정책과 구조조정을 강요하고 있다.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과도한 복지지출 때문이 아니라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금융부실을 막기 위해서였다는 사실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은행 채권을 매입하는 데막대한 재정지출을 쏟아 부은 건 그리스 뿐만 아니라 유로존 전체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리스 등 상대적으로 취약한 나라들에 투기꾼들의 공격이 집중됐고 국채 이자율이 걷잡을 수 없이 치솟으면서 지속 불가능한 수준으로 재정적자가 불어났다.

그리스는 GDP의 11.4%를 은행에 지원했는데 유로존 전체로 보면 36.5%에 이른다. 같은 유로존에 묶여 있지만 그리스는 유로존의 가장 약한 고리였다.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은 그리스가 재정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에 배팅을 했고 신용부도스왑의 가격이 가파르게 뛰어올랐다. 통제 불가능한 금융화가 부른 참극이었다. 애초에 과도한 복지지출이나 방만한 공공무문과는 무관한 이야기다.

그리스는 1998년 우리나라와도 상황이 다르다. 그때는 세계경제가 금융화의 영향으로 경기상승 국면이었다면 지금은 동반침체하는 국면이다. 우리나라는 환율을 끌어올리고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지만 유로존에 들어가 있는 그리스는 환율을 움직일 수가 없다.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무역적자를 벗어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긴축정책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거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유로존의 문제가 일시적이든 근본적이든 상관없이 긴축정책은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 뿐”이라고 지적한다. 재정건전성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며 과도한 긴축정책이 오히려 위기를 확산하는 결과를 불러온다는 이야기다. 스티글리츠는 “긴축정책은 장기적이고 엄청난 고통으로 돌아올 것”이며 “설령 유로존이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높은 실업과 거대한 침체를 대가로 치룰 것”이라고 경고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수연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현실화된다면 이는 그리스 국민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무리한 긴축정책을 강요한 결과”라면서 “긴축정책을 계속 할 경우 부채의 규모는 줄어들지 몰라도 경기침체에서 빠져나갈 출구를 찾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재정지출을 확대해 투자와 수요가 늘어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안이라는 이야기다.

민주노총 이창근 정책국장도 “긴축정책은 사회복지, 고용 등에 관한 정부지출 삭감과 임금·연금 삭감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면서 “재정위기가 금융기관의 투기 손실을 정부가 떠맡다가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면, 결국 금융기관의 투기 손실을 노동자·민중이 지불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 국장은 “재정건전성은 근원적으로 금융기관 규제 등 금융화에 대한 통제와 동시에 지출구조와 세입구조의 진보적 개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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