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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이민만 가도 5억원을 버는 셈이라고?

Written by leejeonghwan

June 6, 2012

마태운 기자가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이민을 결심한 건 호주로 조기 유학을 보낸 두 아이들 학비를 대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을 호주로 보낸 건 성적이 너무 좋지 않아서였다. 우리나라에서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도태되지 않고 성장하기란 정말 어렵다. 호주라면 좀 다른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막상 아이들과 아내를 보내놓고 기러기 아빠가 되고 보니 만만찮은 돈이 들었다.

아이 둘의 학비만 1년에 4천만원. 집세가 연간 2천만원, 여기에 생활비를 더하면 8천만원이 훌쩍 넘었다. 마 기자의 서울 생활에 어머니 용돈까지 더하면 아무리 줄여도 1년에 1억원 이상이 필요했지만 그 무렵 문화일보 연봉은 5천만원 수준. 남은 저축으로 버틴다고 해도 2년을 채 버티기 어렵다는 계산이 나왔다. 외로움보다 더 절박한 게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결국 마 기자도 호주로 건너가기로 했다.

호주에서 영주권을 얻으면 아이들 학비가 들지 않는다. 유학생 신분이면 학비도 내야하고 의료보험도 따로 들어야 하지만 영주권자가 되면 의료비도 전액 무료, 게다가 양육수당과 가족수당, 렌트 보조금 등 온갖 복지수당까지 받을 수 있다. 호주 영주권이 50만달러의 자산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민만 가면 5억원 정도를 버는 셈이라는 이야기다. 마 기자는 이민을 가는 편이 차라리 현실적이라는 판단을 했다.

문화일보 기자 출신의 마태운씨가 쓴 ‘마흔다섯 기러기 아빠의 대한민국 탈출기’는 가벼워 보이는 제목과 달리 단순히 이민 후일담 이상의 흥미로운 이야기거리가 많이 담겨 있다. 이민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단순노동인 건 호주나 우리나라나 같다. 마씨의 경우 퇴직금과 전세금에 국민연금 환급금 2천만원을 포함, 1억원이 이민자금의 전부였다. 마씨는 초밥집을 열기로 한다. 기자 경력이 15년이었지만 그걸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기자들이 건너가서 교포들을 대상으로 신문이나 잡지 같은 걸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경우 최소 2억원 정도는 있어야 하고 이런 신문이나 잡지가 대부분 무가지라 결국 사장이 광고 영업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고. 편집 디자이너 한두 명을 두고 인터넷으로 뉴스를 짜깁기해서 배포하는 형태인데, 당연히 현지에서 충분한 인맥을 확보해야 하고 이민 생활 경험이 좀 쌓여야 가능하다고.)

호주에는 부족직업군이란 게 있어서 이민자 심사를 할 때 거기에 해당하는 종사자들을 우선적으로 받는다고 한다.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해 목공이나 냉동·냉방 기술자, 용접공, 배관공, 요리사 등이 포함돼 있는데 거기에 기자는 없다. 호주는 대학 진학률도 낮고 공부하기 힘든 의사나 변호사를 기피한다. 의사나 변호사들이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계로 채워진 건 꽤 오래된 일이라고 한다.

전문직이 인기가 없다는 건 그만큼 단순노동으로도 먹고 살기가 어렵지 않다는 의미도 된다. 마씨네 음식점에 쥐가 나와서 방역업자를 불렀더니 30분에 300달러를 요구했다고 한다. 소득이 높기도 하지만 물가가 높기도 하고 높은 물가의 상당 부분이 높은 인건비에서 비롯한다. 페인트칠 반나절에 700달러, 전등 몇 개 다는 데 500달러, 싱크대가 막혀 배관공을 부르면 200달러를 요구하는 식이다. 호주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13달러50센트다.

마씨가 처음 호주에 건너와 납세자 신고를 하면서 예상 소득을 3만달러로 적었다. 그랬더니 다음 달부터 양육수당과 렌트 보조금을 포함 우리 돈으로 월 120만원 정도가 입금됐다. 아등바등 쫓기며 사는 우리와 달리 호주 사람들의 삶에 여유가 넘쳐 보이는 것도 이처럼 기본적인 복지 시스템이 뒷받침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씨의 아이들도 한국에서라면 낙오자가 됐을 가능성이 크지만 호주에서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당당하게 자립을 했다.

마씨의 이민 자금은 10만달러가 조금 넘는 정도였다. 차를 한 대 사고 나니 7만달러가 남았고 비상금 2만달러를 남겨두고 보증금 4만5천달러에 가게를 하나 얻었다. 하루 예상 매출이 700달러, 임대료가 주 800달러, 전기요금과 수도요금, 관리비 등을 포함하면 주 1천달러 정도. 6일 장사를 하면 일주일에 4천달러, 재료비와 인건비 등을 빼면 800달러를 버는 셈이지만 호주에서 네 식구가 먹고 살려면 최소 1500달러는 벌어야 한다고.

마씨는 운이 좋았던 것도 같다. 기자 시절 인연을 살려 힐튼 호텔 일식집 주방장에게 어깨 너머로 초밥 만드는 기술을 배울 수 있었고 호주에 건너와서는 그나마 싸게 얻은 가게가 다 망해가던 끝에 살아나기도 했다. “가게를 얻어도 왜 이런 데를 얻었을까”하고 후회하던 무렵에는 하루 매출이 400달러로 줄기도 했다. 그랬던 가게가 1년 뒤에는 하루 매출이 1천달러를 넘어섰고 자리가 잡히면서 3천달러에 육박하기도 했다.

마씨는 한국에서 배운 대로 비싸지만 좋은 재료를 고집했다. 가게 문을 닫아야 할 어려운 상황에서도 좋은 요리의 90%는 좋은 재료에서 나온다는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다. 호주에 제대로 하는 초밥집이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씨의 가게는 입소문을 타고 손님을 끌어모았다. 운 좋게 가게 근처에 대형 어학원이 들어선 덕분이기도 하지만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열정을 쏟아부었던 그의 성실한 태도가 성공 요인이었을 것이다.

고단한 마씨의 생활을 들여다 보면 호주 생활이 마냥 여유로운 것은 아닌 모양이다. 방 3개짜리 아파트의 월세가 300만원 정도. 1개월 보증금에 1개월 월세만 선납하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집 구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월세를 내느라 허리가 휜다. 최대 100%까지 모기지론을 끼고 집을 살 수도 있는데 평생 원리금을 갚아야 하니 부담되는 건 마찬가지다. 게다가 2007년 이후로는 변동 금리가 연 9.5%까지 뛰어올랐다.

마씨의 경우 2년 만에 3만달러를 저축했다고 하는데 새벽부터 일어나 저녁 늦은 시간까지 하루 종일 초밥을 마는 그의 삶이 얼마나 치열하고 노곤했을지는 짐작이 간다. 재료를 준비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정성도 상당하다고 한다. 흔히 이민 1세대가 그렇듯이 마씨는 악착같이 일만 했다. 마씨는 “몸이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내가 기계처럼 일만 한다는 느낌이었다”고 털어놓고 있다.

호주는 인구가 2300만밖에 안 되지만 국토 면적은 남한의 76배가 넘는다. 석탄과 철광석, 우라늄 같은 천연자원이 무궁무진해서 이렇다 할 제조업 없이도 모든 국민들이 풍족한 복지혜택을 누린다. 여름에는 40도까지 치솟지만 그늘에 있으면 그럭저럭 견딜 만하고 겨울은 8~9℃. 사계절 냉난방이 필요 없다고. 실내보다 실외가 더 따뜻해서 “하느님이 호주 사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느리고 여유로운 삶의 방식이 자리를 잡은 것도 이런 천혜의 자연조건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래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지내기에도 큰 어려움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마씨가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버티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고되지만 그곳에서 마씨의 삶은 평온해 보인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 사는 그런 나라가 세상에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어딘가 마음이 놓이는 느낌이다.

“나는 때때로 한국에서의 내 삶이 얼마나 관념적이었던가 돌아보곤 한다. 초밥집 사장 마태운이 생각하는 신문기자 마태운의 인생은 구름 위의 산책이었다. 땀과 노고로 채워지는 일생을 살다보니 책이나 기사로 만나는 삶은 하나의 모조품이거나 관념처럼 느껴진다. 마치 현실의 진흙탕 속에 빠져본 적 없는 로맨스 소설가의 희고 고운 손 같다고나 할까. 그러나 처절하게 겪는 사랑이나 외로움 슬픔 따위는 종이 위에 활자화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듯 현실과 괴리된 글의 세계는 언론도 매한가지다. 나는 언론이 사회의 목탁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언론 스스로 지어낸 자화자찬일 뿐이라 믿기 때문이다. 육신의 힘으로 먹고 사는 일은 정직했다. 그저 일하고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때로는 노력만큼 보상을 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도 몸으로 사는 삶이 더 낫다고 여겨졌다.”

마흔다섯 기러기 아빠의 대한민국 탈출기 / 마태운 지음 / 황금연못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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