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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Written by leejeonghwan

May 22, 2012

쓰레기 만두 사건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2004년 6월의 일이다. 단무지를 만들고 남은 자투리를 수거해 만두소를 만든 업체들이 적발됐고 언론이 이를 쓰레기 만두라고 부르면서 기사를 쏟아냈다. 쓰레기 만두의 이미지는 강렬했다. 만두 판매가 뚝 끊겼고 만두 제조공장들이 줄줄이 도산했다. 한 업체 사장이 자살을 하기도 했다. 뒤늦게 무혐의 결정이 나기는 했지만 한동안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이 확산됐다.

쓰레기 만두는 사실 쓰레기가 아니다. 단무지 자투리는 만두 재료로 쓰지 않으면 쓰레기통으로 버려졌을 부분이지만 그렇다고 못 먹을 음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지저분한 생산공정이 문제지 재료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일부 만두 제조공장의 위생상태가 불량했다는 이유로 언론은 단무지 자투리를 쓰는 모든 만두를 쓰레기 만두로 매도했고 모든 국민들이 만두를 먹지 않게 됐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이하 존칭 생략)가 최근 펴낸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는 “뉴스는 생선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생선 가시를 발라내듯 뉴스에 담긴 오류와 왜곡을 추려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김종배는 “뉴스는 관계”라고도 말한다. 뉴스는 객관적인 현실세계가 아니라 취사선택된 현실세계이고 언론이 관점을 세운 뒤 그에 맞게 사실을 특정한 관계로 묶는 과정에서 오류와 왜곡이 발생한다는 게 김종배의 지적이다.

김종배는 사실과 본질 사이에 부적절한 관계가 있지는 않은지 합리적으로 의심하라고 강조한다. 전혀 별개의 사실 두 개가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묶여 있는 건 아닌지 따져보고 보잘 것 없는 사실 하나가 거창한 주장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남용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라는 이야기다. 김종배는 “합리적 의심만 품는다면 뉴스에 함몰되지 않고 오히려 뉴스의 정합성을 검증하고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세상을 뒤흔들었던 쓰레기 만두 기사에는 이런 합리적 의심이 결여돼 있었다. 누구도 쓰레기라는 단어가 갖는 강력한 이미지를 쉽게 부정하지 못했다. 김종배의 표현에 따르면 “언론은 사실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니라 사실에 내재된 사회적 의미를 발견해 끄집어낸다.” 문제는 언론이 규정하는 본질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아 왜곡이 발생하는 경우다. 인식의 왜곡이 공론의 왜곡을 부르고 사회적 처방을 왜곡한다.

김종배의 이 책은 마치 추리소설 같다. 뉴스의 이면을 파고들어 본질을 끌어내는 김종배의 비판적 뉴스 읽기는 우리가 사실로 받아들이는 뉴스의 상당 부분이 실체와 다를 수도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다시 일깨워준다. 김종배는 “내밀한 정보나 해박한 식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합리적 의심”이라면서 “언론이 제기한 의심의 합리성을 상식에 입각해서 따지고 논리에 기반을 두어 살피라”고 조언한다.

조중동 등 보수성향 신문들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을 “세금폭탄”으로 규정하면서 “국민들 호주머니를 털어간다”고 호들갑을 떨자 상위 1%에게 부과되던 종합부동산세가 무력화됐다. 사실과 (언론이 규정한) 본질이 잘못 연결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독자들은 흔히 본질을 비유하는 개념에 매달리며 그 개념에 오버랩된 이미지에 현혹된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가 실제로 사회를 바꾼다.

2년만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며 비정규직 보호법을 도입했다가 정작 약속했던 2년이 다 되자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늘리자고 주장한 신문들이 있었다. 이 신문들은 비정규직법을 이대로 방치하면 해고대란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쏟아냈다. 김종배식 뉴스 분석에 따르면 이런 기사는 애초에 전제부터 잘못돼 있다. 최대 100만명이 해고된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실제로 이 법에 적용되는 대상은 38만2천명에 지나지 않았다.

정규직 전환을 꺼려 이들을 모두 해고할 거라는 원인 분석도 잘못됐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다는 편견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실제로 계약 종료는 37.0%에 그쳤고 63.0%는 정규직으로 전환됐거나 자동으로 계약이 무기한 연장됐다. 37.0%는 통상적인 수준에 비교해 결코 높다고 보기 어려운 정도였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부족하나마 비정규직을 보호했다. 그런데 어떤 신문들은 그 법을 허물어뜨리려고 했다.

김종배는 “원인은 사건에 내재해 있다”고 강조한다. 원인이 변화를 유발하는 요인이라고 해서 그것이 사건 바깥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원인은 사건의 한 요소로서 결과를 잉태하고 결과에 포함된다. 원인은 객관적이지만 원인을 진단하는 과정에서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김종배는 뉴스가 짜놓은 관계를 해체하고 원인과 결과, 원인과 조건, 상수와 변수를 철저하게 분리한 다음 퍼즐을 짜맞추면서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라고 조언한다.

“뉴스는 논문이 아니다.” 김종배는 “뉴스의 의미를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는 사건의 맥락과 구조 속에서 생산되면서도 사건의 맥락과 구조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뉴스가 사건의 맥락과 구조 가운데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지 좌표를 찾아내라는 이야기다. 뉴스 속 조각 사실들 가운데 객관적 사실이라고 판단되는 것들만 추린 다음 그걸 재료 삼아 독자적으로 사건의 실체를 재구성하라는 게 김종배식 뉴스 읽기의 핵심이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은 북한의 특수 요원들이 국내 활동을 시작했다”는 중앙일보의 보도는 익명의 고위 관계자가 왜 이런 엄청난 사실을 기자에게 흘렸을까 하고 합리적 의심을 품을 필요가 있었다. 김관진 장관은 기사가 난 뒤 며칠 뒤 국회에 출석해 중앙일보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엄청난 뭔가가 있는 게 아니다. 김종배는 합리적 의심은 상식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화물연대의 노동자 대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죽창을 휘둘렀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압수된 만장 깃대 620여개 가운데 죽창처럼 날카롭게 잘린 깃대는 20여개에 지나지 않았고 낫으로 대나무를 자를 경우 비스듬하게 자르는 일이 많다는 사실을 간과한 보도였다. 학교운영위원으로 참여한 정치인들(지방의회 의원 포함)이 1044명에 이른다는 경향신문 보도는 전체 학교운영위원이 12만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누락했다. 실제 비율은 0.8% 밖에 안 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 언론의 정파적 한계가 잘 드러난다. 동아일보는 맹장 수술이 900만원으로 오를 것이라거나 친환경 무상급식을 못하게 된다는 인터넷 루머를 황당한 괴담으로 취급했지만 한겨레는 모든 루머가 괴담은 아니라며 문제는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정부에 있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왜곡된 메시지가 공론 민주주의의 뿌리를 흔든다고 주장한 반면 한겨레는 소통이 막히면 유언비어가 난무한다고 주장했다.

김종배는 “상대 편을 설득하는 논리가 아니라 우리 편의 박수를 받는 논리에만 집중하다 보면 사회적 소통은 접촉이 아니라 차단으로 귀결된다”고 두 신문을 모두 비판한다. 김종배는 “주장과 사실을 따로 떼어 사실묶음만 추려내고 독자적으로 종합판단을 내린 다음 이를 다시 뉴스에 대입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설정한 사실과 주장의 관계가 뉴스 속에 그대로 구현돼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언론의 왜곡 보도를 비판한 책이 아니다. 김종배는 이 책에서 언론이 있는 대로 보거나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모든 언론이 정파성의 함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뉴스의 작위적인 구성과 음험한 의도를 들춰내는 분석적 뉴스 읽기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이성적으로 곱씹고 논리적으로 따지면서 뉴스를 읽으라는 이야기다.

뉴스가 사건의 바깥이 아니라 사건의 한 단면으로 존재한다는 김종배의 관점은 매우 흥미롭다. 김종배는 “뉴스의 의미는 뉴스에 담긴 사건의 실체 그 자체”라고 정의한다. 뉴스의 의미는 뉴스의 의도이고 목적이다. 실체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김종배는 뉴스가 전하는 사건의 맥락과 구조를 먼저 살핀 다음 그 결과를 뉴스에 대입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뉴스의 경향성을 씨줄로 삼고 뉴스 속 조각 사실을 날줄로 삼아 큰 그림을 그리라는 이야기다.

“진영 안에서 건너편을 바라볼 게 아니라 진영의 경계에서 좌우를 살펴야 한다”는 지적도 의미심장하다. 바른 인식이 곧은 신념을 낳는다. 그러나 김종배는 “바른 인식이 곧은 신념의 토대가 되는 건 분명하지만 그 둘이 등치 관계에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조언한다. 사실판단에 기초해 가치판단을 내리는 게 아니라 가치판단에 기초해 사실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경고는 언론계 종사자들도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 김종배 지음 / 샘앤파커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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