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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기자.

Written by leejeonghwan

April 14, 2012

‘나는 꼼수다’의 주진우 기자는 나꼼수가 뜨기 전부터 ‘선수들’ 사이에서 유명한 기자였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 사건을 터뜨리면서 단독 인터뷰를 한 것도 주 기자였고 변양균 전 대통령 정책실 실장과 염문을 뿌리면서 학력 위조 파문을 일으켜 떠들썩했던 신정아씨를 미국까지 찾아가 만난 것도 주 기자였다. ‘가카’의 비밀, ‘뉴클리어 밤’을 안고 있는 에리카 김 역시 주 기자만큼 가까운 기자가 없다. 에리카 김의 인터뷰도 주 기자의 특종이었다.

내곡동 사저 사건 역시 주 기자의 특종이었다. 단정한 양복을 입고 외제 차를 빌려타고 땅을 보러 다녔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가 산 땅 주변을 사서 알박기를 할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연쇄 살인범 유영철을 붙잡은 건 경찰이 아니라 보도방 업주들이었다는 사실도 주 기자의 특종으로 밝혀졌다. 나경원 전 한나라당 의원의 1억 피부과 공방이나 김재호 판사의 기소청탁 사건 역시 주 기자의 작품이었다.

주 기자가 책을 냈다. 책 제목도 ‘주 기자’다. 이 책에는 주 기자의 좌충우돌 취재 기법이 담겨 있다. 주 기자가 김용철 특종을 터뜨릴 수 있었던 건 함세웅 신부와의 인연 때문이었다. 평소 함 신부가 “네가 와서 좀 들어봐라”면서 억울한 사람들 사연을 소개하고 주 기자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왔다. 대개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고 간혹 이들의 하소연을 기사로 담아낸다고 하더라도 바뀌는 건 없다. 그냥 들어주는 것뿐이다.

주 기자의 삼성에 대한 열정은 집요하다. 이건희·이재용 회장 일가가 자주 드나든다는 안양 베네스트 골프장에 가서 밥을 먹고 홍라희 여사가 다니는 식당과 카페, 단골 피자집까지 빼놓지 않고 다니고 이재용 사장이 중국 쑤저우 삼성전자 공장을 방문했을 때는 같이 건너 가서 같은 호텔에 묵기도 했다. 보광휘닉스파크에 있는 이건희 회장 전용 슬로프를 일반에 분양했다가 진노했다는 사실을 기사로 내보낸 것도 이런 취재 덕분에 가능했다.

시사저널을 박차고 나와 시사인을 창간하기까지의 뒷이야기도 흥미롭다. “이학수의 힘, 너무 세졌다”는 기사가 문제가 됐던 걸로 알려졌지만 사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아직 시사저널에 남아있다. 주 기자가 썼던 MK, 박명경 삼성전자 상무의 고속 승진에 대한 기사가 문제가 됐다. 이건희는 A, 홍라희는 A’, 이재용은 JY, 이부진은 BJ, 이니셜로 불리는 MK는 ‘또 하나의 가족’이란 게 주 기자의 추측이다.

기사로 내보내지 못한 팩트는 이렇다. 1995년 삼성생명 과장으로 입사한 MK는 1998년 삼성전자로 옮겨와 2002년 상무보로 승진, 2005년에는 상무로 엘리베이터 승진을 거듭한다. 전문대 출신 여성으로는 이례적이기도 하지만 이 회장 가족의 식사모임에도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해외 출장에도 동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인사에서 “모든 길은 MK로 통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민감한 부분은 “이 회장의 셋째 딸이 ‘박명경 때문에 우리 엄마가 피눈물을 흘렸다’고 말하는 것을 여러차례 들었다”는 대목이다. 이 기사를 쓰면서 주 기자는 아들이 영어 배우기에 적당한 나이라며 “몇년이든 외국에 보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라며 “주 기자의 앞날을 책임지겠다”거나 “시사저널 광고를 책임지겠다”는 제안도 받았다고 한다.

김용철 변호사 사건 때도 삼성 간부들이 시사인을 찾아와 매력적인 제안을 던졌다고 한다. “광고 협찬 이외에도 삼성이 언론사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수십가지가 넘는다.” 더 놀라운 것은 “모든 언론사가 다 안다, 우리를 막는다고 해도 소용없다”는 시사인 편집국장의 설명에 삼성 고위 간부가 “시사인만 안 나오면 다른 언론사는 절대 안 나온다, 모든 언론사에서 1보 금지 묵계가 돼 있다”고 설명하는 대목이다.

흥미로운 뒷이야기들도 많다. 신정아씨를 단독 인터뷰하긴 했지만 사실 이 사건은 신씨가 교수로 있었던 동국대 재단 이사회의 권력 투쟁과 조계종의 계파 갈등에서 촉발됐다. 장윤 스님이 이사회에서 쫓겨나자 신씨의 학력 위조 문제를 터뜨렸고 변양균 전 실장이 연루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조중동과 문화일보 등이 신씨의 사생활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신씨는 “기자들은 악마들이다, 악마보다 더 악한 이름이 있다면 붙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BBK 사건의 뒷이야기도 흥미롭다. “이명박 이름을 빼주면 구형량을 3년으로 맞춰주겠다고 했다”는 김경준의 메모도 시사인 특종이었다. 김경준의 누나인 에리카 김은 주 기자와 함께 귀국해 기자회견을 하고 이 대통령과의 관계를 폭로하기로 했다. 그러나 김경준은 이 대통령의 이름을 빼주고 죄를 뒤집어썼고 에리카 김은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에리카 김이 주 기자를 비난하는 편지를 검찰에 제출한 사실도 밝혀졌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상태라고 한다.

‘나꼼수’에서 연일 떠들어 대고 있지만 사실 이 대통령이 BBK의 실소유주일 가능성을 인정하더라도 이 대통령이 직접 주가조작에 개입했는지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실소유주가 맞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은 있겠지만 주가조작으로 처벌받는 건 별개라는 의미다. 에리카 김 남매와 이 대통령의 관계는 사생활의 영역이지만 이 사건을 푸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에리카 김 남매는 처벌이 두려워서인지 입을 다물었고 이 사건은 미궁에 빠져있다.

나경원 전 의원의 남편, 김재호 판사의 기소청탁 사건 뒷이야기도 놀랍다. 나꼼수에서 일부 소개되기도 했지만 실제로 검찰은 주 기자를 구속기소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주 기자는 경찰의 출석 요구서를 무시했고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때 박은정 검사가 기소청탁을 받은 사실을 공개했고 당황한 검찰은 부랴부랴 김 판사를 수사하는 척 하다가 적당히 사건을 덮었다. 박 검사의 폭로가 아니었으면 주 기자는 구속됐을 가능성이 크다.

온갖 특종을 쏟아냈지만 그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주 기자는 숱한 소송에 휘말리고 벌금을 물고 손해배상을 감내해야 했다. 벌금을 내지 않아 불심검문에서 체포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검찰과 경찰, 권력이 약한 자의 편에 서지 않는 일이 많다는 걸 주 기자는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압력에 굴할 수 없고 때로는 질 걸 알면서도 싸워야 할 때가 있다. 소송을 두려워하고 감옥에 갈 걸 겁내하면 쓸 수 있는 기사가 많지 않다.

가장 두려운 건 어두운 골목길에서 뒤통수를 맞아 죽지 않고 반신불수가 되는 일이라는 대목도 마음을 울린다. 남들이 쓰지 않는 기사, 거대 권력의 이면을 들추고 힘없고 약한 사람들 편에 서는 기사를 쓰는 일은 위험천만하지만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아무에게도 욕을 먹지 않는다면 기자 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혹시 당신은 아무도 불편하지 않을, 당신이 아니라도 다른 누구라도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그런 기사를 쓰고 있지 않은가.

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 주기자 / 주진우 지음 / 푸른숲 펴냄 / 1만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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