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심판과 김용민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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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의 막말 파문이 총선의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김용민은 “투표로 심판 받겠다”며 총선 완주를 선언했지만 이건 비겁한 본질회피다. 이번 선거는 김용민의 8년 전 막말에 대한 심판이 아니다. 김용민은 ‘나는 꼼수다’ 열풍과 이명박 정부 심판이라는 대중의 정서에 적당히 묻어가려 하고 있다. 덕분에 서울 노원구 월계동·공릉동의 유권자들은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려면 김용민의 막말을 용서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이게 됐다.

일단 민주통합당 지지자들이 김용민 때문에 새누리당으로 돌아서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야권 통합후보인 김용민을 반대하는 이들은 애초에 새누리당 지지자거나 다른 대안이 없다면 아예 투표장에 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공격이 거셀수록 ‘나꼼수’ 지지세력을 결집하는 효과가 크기 때문에 민주통합당 입장에서는 적당히 거리감을 두면서 김용민이 완주를 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점에서 김용민이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은 가장 손쉬운 선택일 수도 있다. 지난 6일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와 거의 같은 내용의 사설을 내보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과민반응은 김용민 같은 ‘저질’과 우리는 다르다는 입장 표명이었던 셈이다. 여기에는 필요하다면 한 석 정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정치공학적 계산이 깔려 있기도 하다. 자칫 진보진영 전체가 욕을 먹고 더 많은 이탈 표가 생겨날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주말, 민주통합당은 김용민에게 출당 조치가 아니라 사퇴를 권고하는 수준에서 체면 치레를 했고 김용민은 이를 거부했다. 9일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이번 총선은 김용민 심판이 아니라 이명박 심판이 돼야 한다”는 한발 물러선 주제의 사설을 동시에 내걸었다. 심지어 김용민의 막말 보다 문대성의 논문 표절이 훨씬 나쁘다거나 지엽적인 막말 파문 때문에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 사찰이 가려지고 있다는 아전인수격 주장도 등장했다.

김용민은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버텨야 하는 애매한 상황에 내몰렸다. 이제 와서 사퇴한다고 해도 여론의 반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데다 오히려 여권에 공격의 빌미를 줘서 수도권 의석 확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권에서는 김용민의 막말 파문이 대형 호재로 받아들이고 있고 야권에서도 혹시나 김용민이 사퇴하면 한창 달아오르는 ‘나꼼수’ 열풍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결국 여야 모두 김용민의 사퇴를 요구하면서도 내심으로는 그가 사퇴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주기를 바라는 상황이다. ‘나꼼수’ 열풍은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 낡은 언론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했지만 김용민의 막말 파문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은 구태 정치와 편파적인 언론을 고스란히 다시 불러냈다. 정치권은 정치적 손익계산에 따라 명분을 사고팔았고 이를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은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기준을 잃고 춤을 췄다.

김용민 막말 파문이 여야 어느 쪽에 유리할 것인지는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 예단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김용민이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그게 막말 파문의 면죄부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용민 심판이 이명박 심판의 본질을 가려서는 안 되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보수 언론의 물타기를 경계하는 것 못지않게 진보 언론의 진영 논리를 경계해야 한다. 언론이 선수로 뛰기 시작하면 누가 심판을 볼 것인가.

‘나꼼수’ 팬덤 현상의 한계를 바로 들여다 볼 필요도 있다. 가치의 부재가 정치를 이벤트로 만든다. 김용민 막말 파문은 민주통합당이 정봉주 전 의원의 지역구에 김용민을 전략 공천, 사실상 공천(公薦)이 아니라 사천(私薦)으로 낙점했을 때부터 예고된 사건이었다. ‘나꼼수’ 열풍은 역설적으로 이명박 심판을 넘어 어떤 가치를 지향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이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김용민 심판이 이명박 심판을 흔드는 딜레마에서 교훈을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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