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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원자력이 경제적이라고 말할 건가.

Written by leejeonghwan

March 19, 2012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1원전에서 일하는 6778명 가운데 도쿄전력 직원은 1087명 뿐이다. 나머지 5691명은 407개 협력업체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이라고 한다. 논픽션 작가 호리에 구니오가 쓴 ‘원전 집시’라는 책에는 “원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연간 피폭량 가운데 3%만 본사 직원들 몫이고 나머지는 모두 협력업체 직원들의 피폭량”이라는 대목이 있다. 이 책이 나온 지 30년이 지났지만 이런 구조는 그대로다.


도쿄전력 본사에서 책정한 협력업체 직원들 일당은 5만~10만엔에 이르지만 하청에 하청을 거치면서 6500~1만2천엔까지 떨어진다고 한다. 지난해 3월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현장에서 방사능 유출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원전 노동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이다. 4호 원전 근처에서 오염수를 옮기는 작업을 했던 노동자의 일당은 1만8천엔이었다. 이들은 생계를 위해 달리 도망갈 곳이 없었던 하층 노동자들이었다.

병원에서 흔히 쓰는 X선 검사에서 방출되는 에너지는 10만eV 정도다. eV(전자볼트)는 전자 1개가 갖는 에너지를 나타내는 단위인데 J로 환산하면 1.6×10-19J 정도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몸의 세포 결합을 연결하는 에너지가 몇 eV 수준이라는 데 있다. X선 검사 한 번으로도 세포 결합이 파괴되고 유전자 정보 변형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원전에서 방출되는 방사선은 X선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양이다.

방사선 에너지는 그레이(Gy)로 나타내는데 1Gy는 1kg에 1J의 방사선을 흡수했다는 의미다. 여기에 선질계수 Q(X선과 전자선은 1, α선은 20)와 보정인자 N(보통은 1)을 곱한 게 시버트(Sv)다. X선을 한 번 찍으면 0.05밀리시버트의 방사선에 노출된다. 도쿄에서 뉴욕까지 비행기로 왕복 여행을 하면 0.19밀리시버트,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성인의 연간 피폭 허용량은 1밀리시버트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원전 작업장 피폭 허용량을 250밀리시버트까지 높였다.

그러나 원전 작업장의 방사선량은 시간당 400밀리시버트를 넘어 시간당 1천밀리시버트에 이를 때도 있었다. 이곳에서 15분만 작업하면 피폭 허용량 250밀리시버트가 넘고 1시간 넘게 작업하면 급성 방사선 장애를 겪을 정도였다. 지난해 11월에는 요시다 마시오 1원전 소장이 건강을 이유로 사퇴하기도 했다. 병명은 식도암, 누적 피폭량은 70밀리시버트였다. 도쿄 전력은 식도암과 방사선 노출의 상관관계를 부정하고 있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 기준에 따르면 8시버트 이상 피폭될 경우 100% 죽는다. 6시버트 이상만 돼도 99%가 죽고 3~4시버트는 50%가 죽는다. 2.5(여성)~3.5(남성)시버트 이상이면 영구 불임이 된다. 100밀리시버트가 늘어날수록 유전적 영향이 발생할 확률이 0.2%(성인은 0.1%)씩 늘어난다.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방사선에 더 많이 노출될수록 유전자 변형이 나타날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암과 백혈병은 물론이고 기형아를 출산할 확률도 더 높다.

후쿠시마의 대기 중 방사선량은 지난해 9월 기준으로 1시간에 1마이크로시버트 정도다. 올해 2월 초에는 0.7마이크로시버트로 줄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연간 누적 피폭량이 6.1밀리시버트에 이른다. 일본 정부는 청소년의 연간 누적 피폭량을 20밀리시버트로 상향 조정했는데 이는 성인에게 허용된 피폭량의 20배다. 총리실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던 고사코 도시노 도교대 교수가 이에 항의에 사퇴를 하기도 했다.

방사능 유출이 더 끔찍한 것은 내부 피폭 때문이다. 지난달 일본 수산청 조사에 따르면 157개 해산물 가운데 96개에서 방사성 세슘이 검출됐다. 1kg당 100베트렐 이상 검출된 품목도 26개나 됐는데 안전기준 470베크렐 미만이면 시중에 유통된다. 세슘 137 1베크렐을 호흡으로 흡입할 경우 0.0067마이크로시버트, 음식물 등으로 섭취할 경우는 0.013마이크로시버트에 노출된다. 내부 피폭이 외부 피폭보다 300~1천배 위험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후쿠시마에서 키운 소의 지육에서 기준치(1kg당 500베크렐)의 6.8배에 이르는 3400베크렐의 방사성 세슘이 검출돼 발칵 뒤집힌 적도 있었다. 조사 결과 사료로 쓴 볏집에서 기준치의 56배에 이르는 1만7045베크렐의 세슘이 검출됐다. 오염된 쇠고기를 매일 200g씩 1년 동안 먹을 경우 성인의 연간 피폭량은 3.2밀리서버트에 이른다. 이 정도는 크게 위험하다고 보기 어렵지만 다른 음식물 역시 안전하지 못하다고 본다면 끔찍한 수준이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출된 방사성 물질은 77만테라베크렐로 추정된다. 체르노빌의 7분의 1 수준이다. 1베크렐은 1초당 1번의 방사성 붕괴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 원전 바닥에 고여 있던 고농도의 오염수는 그대로 바다로 흘러들어갔다. 바다에 흘러들어간 방사성 물질은 도쿄전력이 공식 인정하는 것만 4720테라베크렐인데 일본원자력개발기구는 1만5천테라베크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겨레 일본 특파원으로 있는 정남구 기자는 최근 출간한 “잃어버린 후쿠시마의 봄”에서 “쓰나미가 몰려오기 직전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다 희생된 이들과 후쿠시마 원전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원전 사고와 싸우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숙연해졌다”면서 “몇번을 목 놓아 울었다”고 털어놓고 있다. 이 책은 참혹한 지난 1년을 담담하게 돌아보면서도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날카롭게 짚어내고 있다.

정 기자는 민간에 원전 산업을 맡긴 게 재앙의 시발점이라고 지적한다. 도쿄에서 쓸 전력을 220km나 떨어진, 지진 위험이 큰 후쿠시마에서 생산하는 것도 비용 절감을 위해서였고 여러 차례 제기된 안전성 결함을 무시한 것도 이 무시무시한 원전이 수익사업이었기 때문이었다. 원전 부지를 당초 설계보다 25미터 낮춘 것도 역시 취수 과정에서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원전 부지가 5미터만 높았어도 재앙을 피할 수 있었을 거라는 분석도 있었다.

원전의 경제성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런 끔찍한 재앙을 겪고 보면 비용의 외부 효과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1킬로와트당 원자력은 5.3엔이 들지만 화력발전은 10.7엔이 뜬다. 판매가격은 1킬로와트당 23~24엔이다. 비용 절감을 선언한 도쿄전력은 그동안 여러 차례 크고 작은 사고를 숨기면서 가동률을 높여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배당이 늘어나고 주가가 뛰어올라 주주들은 재미를 봤겠지만 일본 사회는 끔찍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 열흘 만에 시멘트와 납 5천톤을 쏟아 부어 원전을 폐쇄했던 것과 비교해 봐도 후쿠시마 사고의 초기 수습은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도쿄전력은 바닷물을 투입할 경우 원자로를 다시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이유로 바닷물 투입을 10시간 이상 지연시켰고 그 과정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나 사고를 키웠다. 지금은 체르노빌 같은 극단의 해법조차도 쓸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도쿄전력은 향후 2년 안에 핵연료 저장 수조에 있는 연료 수거 작업을 개시하고 10년 안에 원자로 안에 녹아내린 핵연료 회수 작업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부서진 상태로 무시무시한 열과 방사능을 내뿜고 있는 원전을 완전히 해체해 폐기물 보관소로 옮겨 안전하게 격리 보관하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과 비용과 희생이 필요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아직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위험한 작업인 데다 관련 기술도 없는 상태다.

잃어버린 후쿠시마의 봄 / 정남구 지음 / 시대의창 펴냄 / 1만6500원.

참고로 이 책에 인용된 마이니치신문 기사를 다시 인용해 본다.

“채소는 씻고 5밀리미터 두께로 껍질을 벗기고 다시 씻고 데쳐라. 이렇게 하면 세슘이 30~50% 가량 줄어든다. 데친 물은 버려라. 고기나 생선은 2~3시간 소금물에 담궈라. 소금물은 짤수록 좋다. 소금물은 몇 차례 갈아줘라. 복숭아나 당근, 사과, 포도 등 항산화물질이 들어있는 식품은 방사성 물질을 체내에서 배출하는 작용을 한다. 칼륨을 많이 섭취하면 몸이 세슘을 축적할 여지가 줄어든다. 칼륨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오염되지 않은 건포도와 건살구를 많이 먹어라. 스트론튬이 몸이 쌓이지 않게 하려면 칼슘이 많이 든 치즈를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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