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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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에 고추장 공장이 들어서면서 전통적인 고추장 생산 농가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역설적이지만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일자리가 줄어든다. 순창에서는 13개 고추장 공장이 있는데 연간 매출이 3천억원에 이른다. 일하는 사람은 375명, 한 사람이 8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셈이다. 제조업 평균 4억5천만원 보다 높다. 반면 가내수공업 형태로 만드는 전통적인 고추장 생산 농가 72곳의 매출은 모두 해서 400억원 정도, 일하는 사람은 300명 정도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은 최근 출간한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에서 “순창은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라는 흥미로운 문제제기를 끌어낸다. 전통적인 고추장 생산 농가의 생산성은 대기업 공장의 6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친다. 고용은 많지만 매출은 떨어지고 가격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기업들이 들어서면서 지역 농산물 수요도 줄어들었다는 사실도 새삼 놀랍다. 말만 순창 고추장일 뿐 순창 고추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매출액 상위 2000개 기업의 매출은 2000년 815조원에서 2010년 1711조원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부채비율은 200%에서 101%로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영업이익률은 6.2%에서 6.9%로 늘어났다. 1인당 매출액도 5억2천만원에서 10억6천만원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주목할 부분은 그 10년 동안 이들 기업의 일자리가 2.8% 밖에 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당연한 결과지만 쉽게 간과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소장은 생산성 향상이 기술혁신이 아니라 단순히 비용을 줄인 결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매출액이 2005년 27조3837억원에서 2011년 36조7694억원으로, 생산량은 113만대에서 186만대로 늘어났지만 정규직 직원은 3만2천명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대자동차는 부족한 인력을 사내하청으로 채웠다. 이 소장의 표현에 따르면 언제라도 해고할 수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현대자동차의 ‘범퍼’다.

한국이 100명이 사는 마을이라면 경제활동인구는 59명, 이 가운데 정규직은 28명 밖에 안 된다. 안정적인 상장 대기업에 다니는 정규직은 1명 뿐이다. 매출액 상위 2000개 기업으로 넓혀도 3명 밖에 안 된다. 비정규직이 14명, 자영업자가 17명이다. 이 소장은 “우리는 99명이 1명의 경제를 자신의 경제로 착각하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고 지적한다. 고추장 공장이 들어선다고 해서 마을 주민들이 잘 사는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율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편이다. 자영업자가 취업자 가운데 차지하는 비율은 31.3%,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은 15.8%, 일본은 13%, 미국은 7%다. 음식점은 인구 1천명에 12.2개꼴, 일본은 5.2개, 미국은 1.8개다. 부동산 중개업소도 우리나라는 인구 1천명에 1.5개꼴, 일본은 0.4개, 미국은 0.3개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소상공인 가운데 월 순이익이 100만원 미만인 곳이 58%나 된다. 적자를 내는 곳도 27%나 된다.

일찌감치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우리가 저녁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건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제빵업자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런 주장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의도하지 않았던 공익도 얻게 된다”거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기심은 그 자체로 윤리적”이고 극단적으로 “탐욕은 선(Greed is good, 영화 ‘월스트리트’ 가운데)”이라는 논리로 확산됐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보이지 않는 손’이 질서를 만들고 경쟁이 최선의 효율을 끌어낸다는 도그마에 빠져 있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더 많은 돈을 벌면 우리 모두가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될 거라는 환상, 그것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조끼를 입은 토끼가 시계를 들여다보며 중얼거리는 걸 보는 것만큼이나 이상한 일이지만 문제는 아무도 그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깨닫지 못했다는 데 있다.

경제학 원론에 따르면 기업이 부를 창출하면서 일자리를 늘리고 임금을 통해 부가 분배된다. 그러나 우리는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시대를 살고 있다. 기업의 부는 계속해서 늘어나지만 노동자를 착취해 얻은 그 이익은 고스란히 주주들에게 빠져나간다. 이기적인 동기가 경쟁을 유도하고 탐욕이 곧 선이라는 믿음은 여전히 확고하지만 그런 탐욕이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뭘까. 이 소장은 스티브 잡스와 안철수 같은 ‘착한 자본가’에게 기대를 거는 것 같지만 결과 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이상의 교훈을 찾을 수 없다. 애플이나 안철수연구소가 단순히 외형 성장 이상의 가치를 추구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모든 자본가에게 “영혼이 있는 기업”을 만들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기업 차원에서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 어디까지 가능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시장만능주의를 대체할 착한 경제의 코드”로 제시한 “이성적 계산이 아닌 감성적 공감을 기반으로, 이기성이 아닌 상호성을 동기로, 경쟁적이 아닌 협력적 행태를 보이는 새로운 경제”라는 개념도 아직은 모호하다. 윤리적 소비와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사회책임경영, 사회책임투자 등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런 착한 구호들이 과연 이 이상한 나라, 무자비한 탐욕의 확대 재생산 시스템에 맞서는 힘을 갖게 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시스템을 건드리지 않은 채 사람들의 선한 의지에 기대는 방식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일이 가능할까. 분명한 것은 우리가 확고하게 믿어왔던 시장의 질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파국이 머지않았다는 사실이다. 더 늦기 전에 작지만 실천 가능한 해법을 찾고 조금씩이라도 바꿔나가는 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지배적인 시스템을 대체할 새로운 시스템의 가능성이라도 찾는 일일 테니까.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 이원재 지음 / 어크로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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