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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집 맏아들.

Written by leejeonghwan

January 24, 2012

농사짓는 가난한 부부에게 삼형제가 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 때문에 맏아들만 대학에 보냈는데 다행히 공부를 잘해서 의사가 됐다. 좋은 집안의 며느리를 만나 결혼도 하고 병원도 개업했다. 그러나 둘째와 셋째는 변변치 못한 직업에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 둘째가 트럭 행상이라도 하겠다며 큰 형을 찾아가 돈을 좀 빌려달랬다가 거절을 당한다. 소 팔고 논 팔아서 대학에 보내놨더니, 그렇게 키운 맏아들이 동생들을 모른 척한다면?

물론 맏아들이 동생을 보살펴야 한다는 법적 책임이나 의무는 없다. 맏아들의 성공이 대학을 갔기 때문이라는 인과관계도 명확하지 않고 둘째와 셋째가 가난한 게 대학을 가지 못해서라는 인과관계 역시 설명하기 어렵다. 첫째가 공부를 열심히 했거나 능력을 타고 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첫째가 아니라 둘째나 셋째를 대학에 보냈다고 해서 그들이 첫째처럼 성공했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맏아들을 대학에 보내려고 부모와 두 동생들이 큰 희생을 치렀다는 사실이다. 대학에 간 맏아들은 50억원의 부자가 됐는데 대학에 못 간 둘째는 자산이 0원이다. 셋째 역시 대학에 못 갔지만 열심히 일해서 3억원을 벌었다고 가정해 보자. 첫째가 대학에 가지 못했다면 3억원을 버는데 그쳤을 것이고 대신 둘째를 대학에 보냈다면 2억원, 셋째를 대학에 보냈다면 30억원을 벌 수 있었을 거라고 가정해 보자.

공동체 전체의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에 따르면 능력 있는 큰 형이 대학에 가는 게 맞다. 삼형제의 자산을 가장 많이 늘리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첫째가 대학에 갈 경우 삼형제의 자산이 53억원인데, 둘째가 갔으면 8억원, 셋째가 갔으면 33억원이 된다. 그러나 정의론의 최소 극대화의 원칙에 따르면 둘째를 대학에 보내는 게 맞다. 첫째와 셋째는 대학을 가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지만 둘째는 대학을 나와야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의론의 관점에서는 첫째만 대학을 가고 둘째가 낙오자가 되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다. 오히려 모두 대학에 보내지 않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수도 있다. 아무도 부자가 될 수는 없지만 아무도 빈털터리가 되지도 않으니까. 공리주의와 정의론의 중간 지점에 해법이 있겠지만 문제는 어느 아들이 대학에 가든, 그가 다른 가족들을 보살피지 않을 경우 이를 강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만약 세 아들을 불러놓고 대학에 갈 권리를 두고 경매를 하자고 했으면 어땠을까. 결과만 놓고 가정해 보면 첫째의 경우 최대 47억원(=50억원-3억원)까지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대학에 가는 게 유리하다. 둘째는 3억원(=3억원-0원), 셋째는 27억원(=30억원-3억원)이 대학을 가서 얻을 수 있는 기회 수익이 된다. 만약 경쟁 입찰이라면 첫째는 셋째의 지불한도인 27억원을 조금 더 넘는 금액을 써내면 낙찰을 받을 수 있다.

몇 십년 뒤 미래를 내다보고 손익계산을 하기는 쉽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큰 형이 두 동생에게 갚아야 할 기회비용이 대략 27억원 정도라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이 금액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삼형제의 능력과 노력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큰 형은 내가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번 돈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두 동생이 대학에 갈 기회를 빼앗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법적 책임은 없지만 도덕적 책임은 분명히 존재한다.

숙명여대 유진수 교수는 최근 출간한 ‘가난한 집 맏아들’에서 “가난한 부모가 맏아들을 대학에 보낸 선택이 잘못됐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처럼 정부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한국의 고도성장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유 교수는 “성공한 맏아들이 그래야 하듯이 기업과 부자들도 자신들의 성공 과정에서 암묵적인 비용을 지불한 사람들에게 보상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한다.

‘가난한 집 맏아들’에서 가난한 집은 우리나라, 맏아들은 국가 차원의 파격적인 특혜를 받고 성장한 재벌 대기업을 상징한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동생들의 희생을 딛고 성공한 맏아들이 동생들을 돌볼 의무가 있느냐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만약 큰 형이 동생들을 보살피지 않는다면 이를 강제할 수단이 있을까. 같은 맥락에서 공룡처럼 몸집을 키운 재벌 대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강제할 수단이 있을까.

이명박 정부 들어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핵심 정책기조로 자리 잡았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성장 지상주의는 뿌리가 깊다. 광복 직후 일제 귀속재산을 불하하고 외화를 배정하는 과정에서 삼성과 현대, LG, 대우 등 기업집단들은 엄청난 특혜를 받고 성장했다. 이자율을 낮춰 자금을 밀어줬고 외자유치를 지원해줬고 경쟁을 제한해 독점적 이윤을 보장해 줬다.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시장개방을 늦춘 것도 특혜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금리를 낮추고 환율을 끌어올려 수출 대기업들을 지원한 것도 이런 특혜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책임은 분명하지 않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외환보유액과 이를 유지하기 위한 외국환평형기금과 통화안정기금, 그리고 무너지는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미국 국채 등의 상관관계는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성공한 맏아들에게 언제까지 대학 등록금을 계속 지원해줘야 하는 것일까.

유 교수는 “맏아들에게 ‘너만 대학을 보내는 대신 나중에 성공하면 동생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약속을 받는 것처럼 우리 정부도 기업들에게 특혜를 줄 때 그 이득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라는 강력한 조건을 달았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아쉬움을 털어놓는다. 유 교수는 “아무런 계약이나 약속 없이 특혜를 주고 이제 와서 기업들에게 어떤 요구를 한다는 건 원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유 교수는 그러나 “비효율성을 감수하겠다고 생각하면 기업을 규제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강조한다. 정부에게는 늙은 부모에게 없는 힘이 있고 필요하다면 그 힘을 남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유 교수는 “정부가 기업을 규제하거나 간섭할 경우 반드시 법과 원칙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면서 “정부가 기업을 임의적으로 평가해서 규제하는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법과 원칙의 테두리 안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제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이 책은 문제제기에 그칠 뿐 구체적인 대안제시까지 나가지는 않는다. “성공한 맏아들이 그래야 하듯이 기업과 부자들과 자신들의 성공과정에서 암묵적인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원론적인 결론을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맏아들과 대기업의 차이를 정확히 짚는 데서 해법이 나올 수도 있을 텐데 도발적인 문제제기에 비해 결론이 힘이 약하다.

대학에 간 모든 맏아들이 성공하는 건 아닌 것처럼 정부의 특혜를 받은 모든 대기업이 성공하는 건 아니다. 맏아들은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동생들의 희생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 그건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맏아들과 대기업의 차이라면 맏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에 어떻게든 독립을 하지만 대기업은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정부의 지원과 특혜에 계속 의존한다는 점이 다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지점이다.

이 책에서는 “이제 와서 책임을 부과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맏아들이 아직까지 집에서 학비와 생활비를 받아가고 있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생활비 지원을 줄이거나 집안 형편이 나아졌다면 둘째와 셋째를 이제라도 대학에 보내는 것도 책임을 일깨우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맏아들에게 가족을 부양할 의무를 명확히 하는 동시에 맏아들 의존도를 줄여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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