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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짜리 미디어렙법, 과연 최선이었나.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29, 2011

반쪽짜리 미디어렙법이 여야 합의로 연내 입법될 전망이다. 통합민주당은 28일 의원총회를 열고 여야 합의안을 올해 안에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이 합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종편의 미디어렙 강제 위탁이 2년 동안 유예되고 방송사의 미디어렙 지분이 최대 40%까지 허용될 전망이다. 방송의 광고 직접영업을 금지한다는 당초 원칙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핵심 쟁점은 MBC와 SBS의 광고 직접영업과 조중동매 종합편성채널의 광고 직접 영업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문제인가에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언론개혁시민연대 등은 여야 합의안이 최선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MBC와 SBS의 자사 미디어렙 설립을 막는 게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은 종편의 광고 직접영업을 한시적이나마 합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은 일찌감치 종편의 미디어렙 강제 위탁을 유예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종편 입장에서는 합의안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2년 동안 합법적으로 직접 영업을 할 수 있게 되고 법안 통과가 미뤄질 경우에도 직접 영업을 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한나라당이나 종편이나 입법을 서두를 이유가 없는 셈이다. 한나라당이 다수당인 상황에서는 종편의 직접 영업을 당장 금지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현실론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결국 MBC와 SBS를 잡느냐 종편을 잡느냐 가운데 선택을 해야 할 상황에서 민주당과 언론노조, 언론연대 등은 MBC를 묶고 종편과 SBS를 풀어주는 선택을 했다. 현실적인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종편의 약탈적인 광고 영업을 막아야 한다던 당초 원칙에서 크게 후퇴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과 종편, SBS 등은 내심 이번 합의를 환영하는 분위기인데 이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종편은 2년이라는 제한이 붙긴 했지만 합법적으로 광고 직접영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신문의 영향력을 방송으로 그대로 옮겨와 실제 광고효과보다 훨씬 높은 광고비를 요구하는 약탈적 영업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SBS 역시 큰 불만은 없다. 독자적으로 민영 미디어렙을 설립해 최대 40%의 지분을 보유할 수 있게 됐고 계열 유선방송채널과 교차 판매까지 허용될 전망이라 그야말로 날개를 달게 된 상황이다.

결국 종편과 SBS가 빠져나가면서 MBC만 발목이 잡힌 상황이 됐다. 당장 광고가 급격히 줄어들지는 않겠지만 한동안 쏠림현상이 불가피할 거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 이야기다. 상황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MBC의 책임도 크다. MBC는 미디어렙 논의 과정에서 공영방송에 걸맞은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언론노조 등이 방송 공공성 확보를 위해 1공영 1민영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는 원칙을 굳혔을 때도 MBC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MBC는 종편의 미디어렙 강제 위탁이라는 공동의 목표에 침묵했고 그 결과 종편과 MBC 가운데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고 갔다. 만약 MBC가 KBS와 함께 공영 미디어렙에 남겠다고 선언하면서 SBS와 4개 종편을 민영 미디어렙에 묶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전혀 다른 상황이 됐을 수도 있다. 이런 비판에서 언론노조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언론노조도 종편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MBC 문제를 전면에 드러내는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미디어렙 입법을 내년 총선 이후로 미루자는 민언련의 주장도 문제가 많지만 연내 입법이 과연 최선이었는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종편은 연내 입법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직접영업을 시작한 상태고 한동안 이를 막기 어려운 상황이다. 연내 입법을 한다면 종편의 직접영업을 합법화하는 셈이고 입법을 미룬다면 종편의 직접영업을 금지할 여지를 남겨두는 셈이다. 결과적으로는 같다고 하더라도 굳이 서두를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종편보다는 MBC와 SBS의 직접영업을 막는 게 더 시급했다는 주장 역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종편의 약탈적 광고영업을 방치하고 SBS에 1사1렙을 허용하면서 MBC만 묶어둘 경우 방송의 공공성을 지킨다는 명분이 퇴색하는 것은 물론이고 늘어난 광고시장을 종편이 독식하는 결과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선정성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광고시장의 질서가 무너질 우려도 있다. MBC는 물론이고 KBS까지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방송사의 미디어렙 지분을 40%까지 허용한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우호지분까지 더하면 사실상 1사1렙 시스템과 다를 게 없어 편성과 광고를 분리한다는 방송 공공성의 기본 원칙을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단 입법부터 하고 내년 총선 이후 개정하면 된다는 주장은 현실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통합당이 다수당이 된다고 하더라도 한번 만든 법을 바꾸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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