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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 고액 연봉 논쟁.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18, 2011

정명훈의 고액 연봉이 논쟁이 됐다. 한겨레와 프레시안, 미디어오늘 등에서 문화기획자 김상수씨의 칼럼을 연속으로 게재하면서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정명훈의 고액 연봉과 특혜에 관심이 집중됐고 논란이 확산되면서 박원순 시장이 나서서 연봉을 조정하기에 이른다. 안타까운 건 논쟁이 정명훈의 정치적 성향과 20억원의 연봉, 그리고 그의 음악적 역량과 성과를 둘러싼 다분히 주관적인 의견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는 데 있다.

정명훈이 이명박과 친하기 때문에, 그리고 서울시장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를 잘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그럴 거라고 믿는다). 연주회를 한 번 할 때마다 4200만원씩, 연간 20억원(판공비와 기타 경비 포함)에 이르는 연봉이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적은 금액은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연봉을 많이 받는다고 비난하는 건 연봉 8천만원을 받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을 귀족 노동자들이라고 비난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실력 있는 오케스트라를 키우기 위해 지휘자 한 사람에게 연봉 20억원이나 그 이상을 쓸 수도 있다. 예술의 가치를 단순한 시장논리로 따져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있었고 정명훈이 아니면 어디 가서 그 정도 수준의 실력 있는 지휘자를 데려올 수 있겠느냐는 반론도 있었다. 그러나 서울시향이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다면 정명훈이 실력 이상으로 과대평가 받고 있으며 지나친 특혜를 부여받고 있다는 지적 역시 마냥 무시하기는 어렵다.

김상수씨는 정명훈이 국내에 알려진 것과 달리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마에스트로의 반열에 들지 못했으며 국제 기준으로 볼 때도 지나치게 많은 연봉과 특혜를 받고 있다고 비난한다. 상임 지휘자 한 사람의 이름값에 기대기보다는 정명훈 수준의 명예 지휘자를 여럿 선임해 연 2∼3회 지휘를 맡기고 평소에는 좀 더 책임감 있는 상임 지휘자를 두거나 여러 객원 지휘자들이 경쟁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서울시향의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정명훈의 음악에 대한 평가는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음악을 모르면 입을 다물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정명훈이 해외에서 가장 인정받는 한국인 지휘자라는 이유로 과도한 특혜를 받고 있는 건 아닐까, 그를 서울시향의 음악감독으로 앉혀두기 위해 필요 이상의 지출을 감수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혹시 그게 우리 안의 문화 사대주의에서 비롯한 것은 아닐까 돌아볼 필요도 있다.

몇 가지 질문을 더 해볼 수 있다. 서울시향을 세계적인 수준의 오케스트라로 만드는데 꼭 정명훈이 필요한 걸까. 정명훈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일까. 정명훈이 이 변방의 이름 없는 오케스트라를 맡아주는 게 그렇게 고마워서 최고 수준의 연봉으로 보답을 해야 하는 걸까. 지난 7년 동안 서울시향의 실력이 놀랄만큼 발전했다고 한다면 그것으로 고액 연봉과 특혜가 정당화되는 것일까.

수준 높은 연주를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그건 단순히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가 우리 곁에 있다는 자기만족에서 비롯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도 세계에 내놓을 부끄럽지 않을 수준의 오케스트라 하나 가져야 한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게 꼭 한국인 지휘자여야 하나. 정명훈이 아니면 우리에게 다른 대안이 없는가. 그렇지 않다. 그게 정명훈의 고액연봉과 특혜를 정당화하나. 그렇지 않다.

나는 정명훈의 연봉 20억원이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세계적인 마에스트로”에 대한 과도한 평가와 예우, 그리고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불편하다. 김상수씨가 지적한 대로 정명훈의 고액 연봉과 특혜는 이명박·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토목공사식 문화성과주의의 결과다. 그리고 여기에 클래식 음악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고급문화라는 기묘한 문화 사대주의와 엘리티즘이 결합되면서 본질을 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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