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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Written by leejeonghwan

November 20, 2011

“우리는 몇 십년 몇 백년 뒤에 찾아올 낙원을 준비하며 살아가지 않는다. 낙원은 인류 역사의 시작에도 없었고 마지막에도 없을 것이다.” 에른스트 비그포르스.

복지국가가 좋다는 건 누구나 안다. 병원 갈 때 병원비 걱정 없고 늙어서 뭘로 먹고 살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아이를 낳으면 무상보육에서 무상교육까지, 일자리를 잃으면 실업급여를 주고, 새 일자리를 찾아주는 그런 나라도 세상에 있다. 세금 부담이 엄청나지만 그만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그런 나라. 일자리를 잃는 게 곧 죽음이 되는 지구 반대편 어떤 나라와 비교하면 그 나라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유토피아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의 정치적 상상력은 급진적이지만 공허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현실적이지만 파괴적인 시장근본주의 사이에 어중간하게 걸쳐 있다. 신자유주의라는 유령을 비난하면서도 아무런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표현을 빌리자면 “낡은 것은 수명이 다했지만 아직 새로운 것은 나타나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홍기빈 소장이 쓴 이 책은 그 새로운 가능성과 대안을 모색하는 책이다.

홍기빈은 이 책에서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의 기초를 만든 에른스트 비그포르스와 그가 만든 ‘잠정적 유토피아’ 이론을 소개한다. 이 책의 결론은 “사람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상상력과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윤리적 당위를 찾아냄과 동시에 그것이 허망한 백일몽이 아닌 현실적 희망이 될 수 있도록 다듬어줄 객관적 상황에 대한 과학적 해명을 결합하는 것이 바로 ‘잠정적 유토피아’를 일궈내는 비결”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의 작동원리를 완전고용을 창출하기 위한 공공지출 확대, 이른바 케인즈주의에서 찾는 사람들도 많지만 비그포르스는 단순히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 수준을 넘어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집는 일련의 개혁정책을 단행했다. 물가안정과 균형재정을 유지하면서 불황과 실업을 해결하고 성장을 견인했다는 사실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스웨덴 사회민주주의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중간 지점의 어설픈 타협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비그포르스는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목표가 온 사회가 사회민주주의의 윤리적 이상에 동의하도록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그 출발점은 계급투쟁이라는 현실이 돼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의가 내걸어야 할 윤리적 이상은 추상적이고 애매한 상식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삶의 현실 속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윤리적 이상을 온 사회가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과정이 바로 노동운동이고 사회민주주의 운동이다.”

비그포르스의 정치 철학은 1919년에 발표한 예테보리 강령에서 실체를 드러낸다. 비그포르스는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의 근간이 된 이 강령에서 급진적인 혁명이나 거대 담론이 아니라 실천적인 행동 과제들을 제시한다.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을 높이고 평등하게 부를 배분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들은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공상적 유토피아가 아니라 잠정적 유토피아의 전망을 가늠하게 했다.

“마르크스주의적 강령에서는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국유화를 핵심 강령으로, 현실에서 노동자들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한 절박한 요구들은 최소 강령쯤으로, 상황에 따라 넣어도 그만 안 넣어도 그만인 옵션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비그포르스는 아득하게 멀어보이는 유토피아를 강령으로 외치는 대신 노동자와 근로 대중이 지금 여기에서 절박하게 여기는 여러 문제들에서 사회민주주의가 제시하는 미래 사회의 비전을 그려내자고 제안한 것이다.”

물론 비그포르스의 실천 과제들이 처음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건 아니다. 사회민주당 역시 지배정당으로 자리잡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국가 주도의 일자리 창출과 노동시간 단축, 사회복지 확충, 은행과 보험의 사회화 등을 골자로 한 예테보리 강령은 지나치게 과격하다는 이유로 배척 당했고 1920년 노동자 경영 참여 확대를 요구한 산업민주주의 위원회 보고서나 1928년 상속세 세율을 높이자는 주장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을 거치면서 대중적 지지기반을 구축하게 된다. 좌파나 우파나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넘어설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업과 불황을 해결하는 경제 정책을 짜낸다는 것은 혁명을 피하면서 자본주의를 구출하겠다는 것이니 이는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마르크스주의를 배반하고 또 그 예언을 빗나가게 만드는 일이 된다.”

홍기빈은 이 책에서 좌파의 공상적 유토피아 이론을 호되게 질책한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교조에 충실하다 보면 자본주의가 완전히 붕괴해 사회화 및 국유화의 시기가 올 때까지 경제 정책에서 할 수 있는 일이나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이야기다. 홍기빈은 “좌파나 우파나 시장 경제란 스스로의 운동 법칙을 갖고 있으니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굳건한 신념을 공유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우리가 80년 전 스웨덴의 실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증유의 경제적 곤궁과 이를 틈탄 파시즘이 위협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우파의 경제 신화에 빠져있는가 마르크스주의의 경제 신화에 빠져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민주주의와 문명의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불황과 실업에 대처했고 진보적 복지국가 건설의 틀을 세웠다.”

비그포르스는 발상을 전환했다. 시장이 생산적이며 국가는 비효율적이라는 통념을 뒤집어 실업은 사적 자본가들의 비생산성에서 비롯하며 실업이 늘어날 때는 국가가 산업을 조직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국가가 시장의 바깥을 떠돌게 아니라 직접 대규모 생산적 산업을 조직하고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비그포르스는 사회화라는 개념과 별개로 나라살림의 계획(planmassig hushallning)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비그포르스가 1932년에 쓴 “돈이 없어서 일도 못할 지경이라고?”라는 제목의 팜플렛은 사회민주당이 대중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실천적 전략을 제시했다.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은 높은 실업률을 방치하고 임금 저하를 유도해 저축을 늘려 투자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비그포르스는 사람들이 높은 임금을 받아 소비를 시작해야 투자가 늘어난다는 반론을 펼쳤다. 사회민주당은 그해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다.

집권에 성공한 사회민주당은 보수적 성향의 농민당과 동맹을 맺고 강력한 구조개혁 작업을 시작한다. 임금 투쟁에 주력해 왔던 노동운동 진영을 설득해 연대임금 정책을 도입하고 기술혁신과 산업합리화 정책에 호응을 끌어낸 것도 큰 성과였다. 1938년에는 경영자 단체와 노동운동 단체가 살트세바덴(찰츠요바덴)에 모여 노사 대타협 협약을 맺기에 이른다. 노동조합이 파업을 자제하는 대신 국가 차원의 성장 전략을 모색한다는 내용이었다.

주목할 대목은 스웨덴 복지국가 시스템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회민주당이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노사 대타협도 어느날 갑자기 저절로 이뤄진 게 아니라 양쪽이 서로 위협을 느낄 정도로 대등한 권력을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국가가 주도해 갈등을 봉합하는 수준을 넘어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한 노동운동 진영이 자본을 압박해 대등한 타협을 끌어냈다는 사실도 중요한 교훈이다.

사회민주당이 1944년에 발표한 전후 강령의 세 가지 원칙은 첫째, 완전 고용, 둘째, 공정한 분배와 생활 수준의 향상, 셋째, 민간 부문의 효율성 상승과 민주주의의 확장이었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지 않고서는 사회민주주의 경제의 이상을 결코 달성할 수 없으며 또 완전 고용과 복지의 향상이야말로 생산성 향상의 중대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비그포르스는 특히 세 번째 원칙을 위해 국가 차원의 경제 계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첫째, 국가가 운영하는 상업은행을 만들고 보험 부문을 국유화해서 통화 및 신용 흐름을 국가가 지휘 통제하며 기업의 장기적 투자를 촉진하고 장려하는 기관을 둔다. 둘째, 건설 및 주택 부문이나 농업처럼 기술적으로 뒤쳐져 병목 현상을 일으키는 산업 부문의 효율성을 개선한다. 셋째, 수출과 수입 등 여러 다른 부문들이 서로 선순환 관계를 맺도로 조직한다. 넷째, 독점을 감시하고 독점을 일으키는 부문을 국유화를 포함 여러 형태로 개입한다.

렌-메이드네르 모델도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시스템을 구성하는 핵심 원칙이다. 전국적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하면 대기업들은 인건비가 줄어들어 초과이윤을 얻겠지만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낮았던 기업들은 어려움을 겪거나 도산하게 된다. 경제학자인 렌과 메이드네르는 국가 차원의 적극적 노동 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해고된 노동자들이 새로운 직장을 얻을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을 돕고 실직자의 소득 보전을 정부가 맡는 시스템이다.

렌과 메이드네르는 재정 및 통화정책에 의존한 수요관리에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케인즈주의가 필연적으로 만성적 인플레이션과 비생산적 산업 부문의 효율성 저하 문제를 피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렌-메이드네를 모델은 노동운동 진영 스스로 생산성 향상을 위한 산업 합리화를 수용해야 하며 정부가 여러 선택적 경제정책으로 이를 적극적으로 추동해야 한다는 전제를 내걸었다.

홍기빈은 “복지국가는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종착역이 아니고 한 정거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한다. 비그포르스가 예테보리 강령에서 내세운 자유와 평등, 효율성, 협동, 안정이라는 가치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홍기빈은 “다음으로 설정해야 할 목표는 아래로부터의 경제 민주화를 통해 소유권이라고 하는 자본의 근본적 권력을 노동자들이 사회로 빼앗아 오는 것”이라는 결론을 끌어낸다.

소유주 없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발상도 흥미롭다. 주주들이 모든 이윤을 독식하는 주주자본주의 시스템을 극복해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내부적으로 이윤을 계속 유보하자는 구상이다. 장기적으로는 주주의 역할이 사라지게 되겠지만 과도기적으로 주주의 결정권을 줄여 나가는 동시에 주식 배당금을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주식이 일종의 채권처럼 바뀌게 되고 주주의 권리 역시 채권 소유자와 비슷한 수준으로 줄어들게 된다.

비그포르스가 다음 단계의 잠정적 유토피아로 제안한 건 임노동자 기금(lontagarfonder)이었다. 대기업의 초과 이윤을 회수하기 위해 이윤이 높은 기업일수록 더 많은 기금을 출연하도록 해서 이를 하나의 기금으로 조성한다는 발상이었다. 이 기금은 현금이 아니라 해당 기업이 신규로 발행한 주식 형태로 납부돼 노동운동 진영에서 관리하게 된다. 소유주 없는 사회적 기업을 제도화하는 실천적 전략인 셈이다.

여기서 비그포르스가 그렸던 유토피아의 최종 목표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비그포르스는 소득의 재분배가 아니라 사회적 권력의 재분배를 목표로 했다. “노동자들이 세탁기와 자동차, 아파트, 별장을 갖게 된다고 해서 사회의 경제적 권력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비그포르스와 렌, 메이드네르의 생각이었다. 그게 비그포르스가 꿈꿨던 계급 차별이 사라지고 생산과 소비 모두에서 노동자들의 주체로 서는 사회민주주의의 이상이었다.

“비그포르스가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사회 변화의 대부분은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회의 변화는 투쟁을 필요로 합니다. 사회의 변화는 싸움을 필요로 합니다. 비그포르스는 싸움을 회피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비그포르스는 결코 주저함 없이 사회가 계속 변화해 나가도록 승리를 얻을 때까지 꿋꿋이 버티며 싸운 이였습니다.” 타에 엘란데르 전 총리가 비그포르스의 추모식에서 한 말이다.

“비그포르스는 마르크스주의에 착종된 윤리적 당위와 과학적 진리의 문제를 분리해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했다.” 홍기빈은 “사람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상상력과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윤리적 당위를 찾아냄과 동시에 그것이 허망한 백일몽이 아닌 현실적 희망이 될 수 있도록 다듬어줄 객관적 상황에 대한 과학적 해명을 결합하는 것이 잠정적 유토피아를 일궈내는 비결”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최근 본격화하고 있는 복지국가 논쟁에 교과서가 될 만한 책이다. 복지국가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 수많은 힘겨운 투쟁과 타협의 산물이며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구성원들의 강한 의지와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다. 복지 천국, 스웨덴이 부러운가. 홍기빈은 일단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게 우선이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유토피아는 멀고 요원하지만 당장 잠정적 유토피아라도 그려보자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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