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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를 팝니다.

Written by leejeonghwan

November 5, 2011

미국에서는 군대 민영화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이 이라크에 최고 행정관으로 파견한 폴 브레머의 경호를 맡은 건 미국 군대가 아니라 블랙워터라는 민간 군사회사였다. 이 회사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뉴올리언즈에서 경찰 대신 치안을 맡기도 했다. 민간 군사회사 시장은 연 1천억달러에 육박하는데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이 회사 직원들은 군인들보다 2~3배의 연봉을 받는다.

핼리버튼이라는 회사는 이라크 전쟁에서 220억달러를 벌어들였다. 군사 지원 서비스에 책정된 예산의 절반을 이 회사가 챙겼다. 이들은 요인 호위와 경호는 물론이고 급박한 상황에서는 교전을 벌이기도 하고 포로를 붙잡아 고문하기도 한다. 주목할 부분은 이들이 군인과 거의 비슷한 일을 하지만 이들의 폭력을 정당화할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다. 허용할 수도 없고 허용돼서도 안 되지만 이라크에 파병된 민간 군인이 2만명이 넘는다.

바그다드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 벌어진 수감자 학대 사건은 군사 아웃소싱의 한계를 드러냈다. 민간 군인들은 미국 정부의 명령과 통제를 따르지 않았다. 이들은 군법에 구애받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매우 미약한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이들이 저지른 범죄의 책임은 결국 미국 정부가 져야 한다. 이라크 전쟁은 정부에게는 악몽이었지만 민간 군사회사들에게는 노다지였다. 미국 국방부 예산의 57%가 민간 업체에 빠져 나간다는 통계도 있었다.

폴 버카일은 ‘정부를 팝니다’에서 “미국 정부는 처음부터 민간 계약자 없이는 수행할 수 없는 규모의 작전을 세워뒀고 민간 계약자들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고 설명한다. 버카일은 “미국 헌법에 따르면 ‘민간 군인’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며 정부의 권한을 대신하는 민간 자체가 존재할 수가 없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불법적으로 민간에 권한을 위임하고 있으며 관리도 통제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 딕 체니 부통령은 브라운루트라는 회사에 컨설팅을 맡겼다. 퇴임 이후 체니는 브라운루트의 모 회사인 핼리버튼의 대표로 옮겨간다. 이런 민간 군사회사들은 퇴임 관료들을 고용해 정부에 압력을 넣고 정부 고유의 권한을 아웃소싱하면서 성장해 왔다. 정부가 했던 일이 민간으로 넘어가면 비용은 껑충 뛰어오르기 마련이다. 그렇게 흘러들어간 돈의 일부는 정치인들 후원금으로 활용된다.

핼리버튼 같은 회사들은 제대로 입찰을 거치지도 않았다. 이들은 미국 정부와 독점적으로 계약을 맺고 해마다 더 많은 예산을 청구했다. 미국 국방부는 관리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계약 내용을 검토하지도 않았다. 버카일은 “이라크 전쟁은 정부와 계약을 맺는 민간 공급자들이 도대체 애국자인지 사기꾼인지 ‘사기꾼 애국자’인지 도무지 구분하기 힘든 환경을 만들어 버렸다”고 지적한다.

모든 영역에서 공공부문의 민영화가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공항 보안을 공영화하기로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9‧11 테러 이후 민간 보안회사들을 믿기 어렵게 됐다는 판단 때문인데 버카일은 여기에서 공공부문 민영화의 해법을 찾는다. 버카일은 민영화를 전면 부정하지는 않는다. 공공의 영역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적절한 감독과 통제를 한다면 민간 위임이 효율적일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민간 교도소도 많다. CCA라는 회사는 63개 교도소에서 6만9천명을 수감하고 있는다. 미국 전체 민간 교도소 수감 인원의 절반이 넘는 규모다. 민간 교도소는 효율적인 측면도 있지만 수감자들에게 완력을 사용할 권한이 이들에게 없다. 가석방 대상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이윤을 먼저 고려하게 되는 구조적 한계도 있다. 죄수=돈이니까. 어느 경우나 위임되지 않은 권한이고 인권 침해의 소지가 크다.

버카일은 아웃소싱은 헌법에 근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위임할 부분과 위임하지 않을 부분을 구분하고 권한과 책임을 설정하는 게 해법이라는 이야기다. 버카일은 “정부 공무원이 수행하는 고유한 정부 기능을 민간 계약자에게 위임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리는 길”이라면서 “복잡하게 얽힌 아웃소싱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되리라 기대할 수는 없지만 공적 가치를 지키고 보존하는데 앞장 서는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부를 팝니다 / 폴 버카일 지음 / 김영배 옮김 / 시대의창 펴냄 /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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