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국민연금 더 내게 해달라”고 떼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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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을 더 많이 낼 수 있게 해달라?

“월급 375만원 사슬을 풀라”는 제목의 지난 25일 조선일보 칼럼은 공적연금에 대한 이 신문의 인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무려 보건복지 전문기자가 쓴 칼럼이 이렇다.


“얼마 전 국민연금공단에서 통지서를 받았다. 62세에 내가 받을 연금은 고작 월 100만원을 조금 넘었다. 1988년 국민연금이 시작되면서 지금껏 낸 돈이 이미 5천만원을 넘었고 회사 부담금을 포함해서 매월 34만원씩 내고 있다. 그런데도 30년을 내고 받을 돈이 겨우 한 달에 100만여원이라니…. 한숨부터 나왔다. 공무원연금은 월평균 210만원, 사학연금은 월평균 240만원이니 절반도 채 안 되는 액수다. 노후가 한심할 뿐이다. 공무원이나 교사들처럼 연금을 많이 받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김동섭 기자는 이 칼럼에서 “국민연금은 재벌 회장이나 말단 회사 직원이나 모두 월 소득 375만원’의 상한선에 묶여 있다”면서 “국민연금을 많이 받는 비법은 바로 ‘월급 375만원’의 사슬을 푸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 기자는 “버는 것만큼 내는 것이니 다른 사람이 시비 걸 일도 아니고 지금처럼 소득의 4.5%를 내는 것이니 보험료 인상도 아니다, 돈을 더 내고 나중에 받는 것이니까 연금 재정수지에도 별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칼럼은 우리 사회 보수 기득권 계급의 의식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흥미로운 시사점을 준다.

국민연금은 국내 출시된 모든 금융상품을 통틀어 수익비율이 가장 높다. 소득이 적은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구조지만 소득이 많은 사람도 투자 대비 효과가 크다는 이야기다. 조선일보가 국민연금의 상한인 월급 375만원 기준을 더 높여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 기자의 경우 지금은 월 34만원(월급 375만원 기준)씩 내고 65세 이후 월 100만원씩을 받게 되는데 이걸 54만원(월급 600만원 기준)까지 늘리면 200만원씩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김 기자의 주장은 부자들은 더 많이 내고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말로 요약된다. 난 월급이 600만원이 넘는데 왜 34만원 밖에 못 내게 하느냐는 이야기다. 이같은 주장은 국민연금이 금방이라도 고갈될 것처럼 허풍을 떨던 그동안 보수 언론의 논조와 상충된다.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면서도 국민연금이 매우 효과적인 재테크 수단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김 기자는 지금까지 5천만원을 넘게 냈는데 65세 이후 월 100여만원 밖게 못 받는다고 불만을 털어놓고 있지만 김 기자가 70세까지만 살아도 원금 이상을 받게 된다. 이 정도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금융상품은 우리나라에서 국민연금 말고는 없다.

김 기자가 보건복지 전문기자라면 국민연금의 수급 불균형이 과도한 수익비율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내는 보험료보다 받아가는 연금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아무리 기금을 잘 운용하더라도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민연금의 월 소득 상한을 375만원으로 제한했던 건 저소득 계층의 노후를 지원하는 국민연금의 취지에서 벗어나 고소득 계층의 재테크 수단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이런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국민연금의 수급 불균형 구조를 해소하려면 좀 더 많이 내고 좀 더 적게 받도록 수익 비율을 바꿔야 한다. 그렇지만 가뜩이나 용돈 수준에 지나지 않는 저소득 계층의 연금을 깎을 수는 없는 일이고 고소득 계층의 수익 비율을 줄이는 개혁이 필요하다. 그런데 조선일보 김 기자는 뻔뻔하게도 월 100만원으로는 부족하다며 더 많이 벌게 해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

김 기자가 요구하는 대로 월 375만원의 상한을 풀면 김 기자 같은 사람들이 받게 될 연금은 늘어나겠지만 기금 고갈 시점은 더욱 빨라지게 된다. 이 경우 고소득 계층이 저소득 계층의 자산을 편취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김 기자는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알면서도 은폐하는 것일까.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성과 소득 재분배 효과를 높이려면 저소득 계층의 수익 비율을 높이는 동시에 고소득 계층은 더 많이 내고 더 적게 받도록 해야 한다. 월 375만원의 상한을 풀려면 월 375만원 이상 고소득 계층의 수익 비율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마이너스 수익 비율을 도입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그런데 김 기자는 정 반대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보건복지 전문기자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다. “버는 것만큼 내는 것이니 다른 사람이 시비 걸 일도 아니고 지금처럼 소득의 4.5%를 내는 것이니 보험료 인상도 아니다, 돈을 더 내고 나중에 받는 것이니까 연금 재정수지에도 별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상식 이하다. 고소득 계층은 수익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여전히 민간 금융상품의 수익비율 보다 매우 높고 고소득 계층이 많이 가져갈수록 저소득 계층의 몫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게 시비 걸 일이 아닌가. 연금 재정 수지에 별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국민연금을 고소득 계층의 재테크 수단쯤으로 생각하는 이 칼럼은 조선일보가 어느 계층을 대변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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