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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99%의 반란이 시작됐다.

Written by leejeonghwan

October 17, 2011

월스트리트 반대 시위가 한 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처음에는 대학생들이 모여서 청년 실업을 해결하라며 불만을 터뜨리는 정도였지만 “우리가 99%다”라는 정치 구호를 내세우고 금융 시스템과 분배 구조를 비판하고 나서면서 미국을 넘어 유럽과 아시아 등 세계 전역으로 99%의 분노가 확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 반대 시위는 1980년 이후 30년 가까이 지속돼 왔던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 시스템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물론 청년 실업과 빈부 격차가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는 건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이후 미국 정부가 엄청난 규모의 재정 지원을 쏟아 부었지만 국민들 살림살이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의 주범인 금융회사들은 성과급 잔치를 벌이면서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가중시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역시 당초 기대와는 달리 월스트리트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미국은 달러화를 마구 찍어내면서 다른 나라들에 부실을 떠넘겼다. 기축통화인 달러화가 넘쳐나면서 세계적으로 환율 전쟁이 촉발됐고 세계적으로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지출을 늘리면서 급기야 재정위기로 확대됐다. 위기는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그런데 왜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가. 이들이 던지는 질문은 추상적이지만 절박하다. 우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근본적인 해법은 없는가.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한가.

시작은 단순했다. 사람들의 분노는 월스트리트의 금융회사들이 대규모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2009년 골드만삭스와 JP모건체이스의 직원들은 평균 59만달러와 46만달러의 성과급을 챙겼다. JP모건체이스의 최고경영자 제이미 다이먼은 지난해 스톡옵션을 포함, 무려 2080만달러를 받았다. 뉴욕멜론은행의 최고경영자 로버트 켈리는 지난해 8월 퇴임하면서 1720만달러를 챙겼다.

월스트리트의 고액 연봉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사람들이 분노했던 건 미국 정부가 7천억달러 이상의 구제금융을 쏟아 부은 직후였기 때문이다. 금융회사들의 탐욕이 만든 위기를 국민들 세금으로 메운 셈인데, 가뜩이나 주택담보 대출을 갚지 못해 집을 빼앗긴 사람들이 넘쳐나고 내수 시장이 위축되면서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월스트리트는 성과급 파티를 벌여왔다.

미국의 위기는 구조적이다. 부동산 가격 폭락과 실업, 실질소득 하락이 계속되면서 중산층이 급격히 붕괴되고 있다. 빈부 격차도 계속 확대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꺼져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무더기로 돈을 풀었지만 그 대부분이 금융회사들로 흘러들어갔다. 일자리는 거의 늘어나지 않았고 경제 지표도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정부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급기야 이제는 아무런 정책도 펼 수 없게 됐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3년, 세계 경제는 여전히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책임자들은 처벌을 받기는커녕 여전히 회전문을 들락거리면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금융 규제 강화는 흐지부지됐고 미국의 부실을 세계 여러 나라들에 떠넘기는 과정에서 글로벌 불균형이 더욱 심화됐다. 세계 경제는 낮은 금리와 과잉 유동성, 높은 레버리지로 성장했지만 이제는 고달픈 디레버리지 과정을 감내해야 한다.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푸어스는 지난 8월 사상 최초로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끌어내렸다. 분명한 건 미국의 빚으로 세계가 성장하던 시대가 끝났다는 사실이다. 양적완화와 재정정책이 근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사실도 명확해졌다. 그리스와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부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국가 부도 위기에 봉착하면서 프랑스와 독일, 영국 등 유로 존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은 한동안 침체의 수렁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 반대 시위는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에 대한 비판을 넘어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회의로 확대되고 있다. 1999년 미국 시애틀에서 열렸던 세계화 반대 시위에 이어 올해 초 아랍권 나라들에 민주화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중동의 봄’, 지난 여름 영국 런던 폭동과 ‘뉴욕의 가을’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구조적 불평등에 분노하는 99%의 단결된 힘이다. 일부에서는 월스트리트 반대 시위를 계급투쟁의 전조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이후 자본주의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군림해 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결합해 무한 경쟁 체제가 확산되고 공공부문이 무너지면서 민주주의의 근간이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계 경제는 비정규직과 이주 노동자, 저소득 계층을 착취·억압하고 국경을 넘어 3세계의 경제를 수탈하는 방식으로 성장해 왔지만 그마저도 이제 한계를 맞고 있다.

사람들의 요구는 다양하다. ‘자본주의의 탐욕을 버려야 한다’는 원론적인 요구에서부터 ‘생계비와 일자리 걱정을 하지 않게 해달라’거나 ‘메디케어와 사회안전망을 지키자’는 호소도 있고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실천적인 대안도 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를 해체하라”는 과격한 구호도 나왔다. 이밖에도 반전과 여성의 권리 향상, 인종차별 반대, 종교자유, 등록금 인하 등의 온갖 다양한 이슈가 쏟아지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월스트리트 반대 시위의 구호 가운데 상당수는 바보 같다”면서도 “이들의 시위가 금융 시스템에 책임성과 공정성을 부여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여기에 더 많은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사람들은 어느 순간 자신들이 큰 힘을 지녔음을 깨닫게 될 것이고 그 힘을 이용할 것”이라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자각은 국가적 토론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선거에서 그 결과가 드러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시위 현장을 찾아 “월스트리트는 손실을 사회화하고 이익은 사유화했다”면서 “이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왜곡된 경제”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비관론자로 꼽히는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칼 마르크스가 경고했던 것처럼 자본주의는 내부적 모순과 구조적 한계를 맞고 있다”고 설명했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스타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도 시위 현장에 나타나 “우리는 가장 멋진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대안을 생각할 때가 됐다”고 선언했다. 지젝은 “시위대가 무엇을 원하지 않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원하는지를 밝히는 진짜 어려운 문제에 부닥칠 것이며, 이제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대체하는 새로운 사회구조를 이야기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꿈꾸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는 조언도 빠뜨리지 않았다.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어떤 형태로 전개될지 현재로서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약육강식의 야수 자본주의 시스템에 근본적인 회의가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99%다”라는 구호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건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열망이다. 한계에 직면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치유할 유일한 대안이 민주주의라는 사실은 언뜻 당연해 보이기도 하지만 놀라운 발견이다.

문제의식과 해법은 간단 명료하다. 1%의 탐욕으로 나머지 99%가 고통 받는 일이 계속돼서는 안 된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결탁을 막고 모두가 평등한 기회를 부여받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금융 규제를 강화하고 조세 시스템을 개혁하고 무너진 공공 시스템을 복원해야 한다. 공적자금은 월스트리트나 여의도가 아니라 사회안전망 구축과 취약계층의 지원에 투자돼야 한다.

99%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힘을 자각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 시작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이제 피를 흘리지 않는 혁명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활발하게 토론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바뀔 수 있을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자본의 탐욕을 규제하면서 모두가 바라는 그런 세상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격주간 청소년 논술잡지 이슈엔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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