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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역설… 모두가 부자가 될 수는 없다.”

Written by leejeonghwan

October 9, 2011

[서평] 요하네스 발라허의 ‘경제학이 깔고 앉은 행복’, “더 많이 번다고 더 많이 행복한 건 아니다.”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세계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첫 번째 세계에서 당신의 연간 소득은 5천만원인데, 사회 전체의 평균 소득은 2500만원이다. 두 번째 세계에서는 당신의 연간 소득이 1억원인데 사회 전체의 평균 소득은 2억원이다. 당신은 어느 세계에 살고 싶은가. 하버드대 의과대학 학생들에게 물어봤더니 절반 정도로 선택이 갈렸다. 절대적인 부의 규모도 중요하지만 소득 불평등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도 많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실험이 있다. 역시 서로 다른 두 개의 세계를 가정해 보자. 첫 번째 세계에서 당신의 휴가는 2주일인데 사회 평균은 1주일이다. 두 번째 세계에서는 당신의 휴가가 4주일인데 사회 평균은 8주일이다. 당신은 어느 세계에 살고 싶은가. 이 실험에서는 80% 이상의 사람들이 두 번째 세계를 선택했다. 소득은 총량 못지 않게 상대적인 불평등 정도가 중요하지만 행복은 총량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다.

이 두 가지 실험은 소득과 행복의 기준이 다를 수도 있다는 가정을 끌어낸다. 독일 뮌헨대 요하네스 발라허 교수가 쓴 ‘경제학이 깔고 앉은 행복’은 “과도한 물질 추구와 지나친 비용-편익적인 경제학적 분석이 사회 정의에 문제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개인의 행복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사회 전체의 부가 구성원들이 보유한 자산의 합계가 아니라 공적 자산의 비중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도 흥미롭다.

발라허는 “호모 에코노미쿠스 모델의 가설과 달리 인간의 행동은 단순히 합목적적이지 않으며 고정돼 있지도 않다”면서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굴레가 경제학을 망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행위자가 공정하다거나 정당하다는 이유로 특정 행동방식을 의미있고 중요한 것으로 간주해 자신의 이익에 직접적으로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그 손실을 감수할 각오가 돼 있을 때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분석 방식이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소득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소득과 행복은 1만달러 정도의 한계치까지만 긍정적 상관관계가 있다.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동유럽의 나라들은 소득이 늘어날수록 행복도 늘어난다. 그러나 1만달러가 넘는 나라들은 소득이 늘어나는만큼 행복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소득의 한계효용 체감이라고 한다. 무더운 여름날 저녁 맥주 첫 잔이 가장 맛있는 것과 같다. 두 번째 잔도 맛있긴 하겠지만 첫 잔 만큼은 못하기 마련이다.

미국의 경우 1963년부터 2006년 사이에 물가를 반영한 평균소득이 1만5121달러에서 3만7674달러로 두 배 이상 늘어났지만 삶의 만족도는 거의 그대로다. 독일이나 다른 선진국들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는 1950년대 말 이후 평균소득이 6배 이상 늘어났지만 삶의 만족도는 제자기 걸음이다. 발라허는 묻는다.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지 않는데 왜 더 많은 부를 축적하려고 그토록 애를 쓰는 것인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행복은 유동자산이 분자, 욕구가 분모를 이루는 분수로 나타낼 수 있다”는 이론을 세운 바 있다. 발라허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는 더 높은 소득에 비교적 빨리 익숙해지고 자신의 기대 태도를 거기에 맞춘다”. 발라허는 이를 ‘쾌락 적응’이라고 부른다. 더 많은 소득과 소비가 가져다 주는 행복을 과대평가하면서 늘어나는 욕구에 적응하게 되고 끝없는 경쟁에 휘말리는 쾌락의 쳇바퀴에 걸려들게 된다는 이야기다.

아마르티아 센 캐임브리지대 교수는 “인간의 행복에 가장 결정적인 것은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재산이나 자원을 소유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의 능력이나 삶의 기회가 바로 성공적인 삶에 이르는 열쇠”라는 이론을 끌어낸 바 있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자신의 목표와 소질, 능력에 부합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삶을 살 수 있는냐는 것, 다시 말해 삶의 다양한 모델을 실현할 수 있는 선택 가능성에 있다”는 이야기다.

발라허는 이 책에서 새로운 성장의 척도와 새로운 경제 시스템, 의식적이고 지속가능한 라이프 스타일과 소비 및 노동방식을 선택하라고 제안한다. 발라허가 제시하는 인간다운 경제의 두 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사람의 삶이 지속적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물질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경제활동은 그 자체가 성공적인 삶에 유익한지 아닌지를 보고 평가를 받기도 해야 한다.”

발라허는 “더 많이 소유하고 소비한다고 해서 삶이 더 만족스러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면서 “더 중요한 것은 안정적인 사회적 관계와 일에 대한 만족감, 안정된 직장, 사회적 참여 그리고 건강”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넘어 호모 리시프로칸(호혜적인)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고 있지만 정작 구체적인 대안과 사례를 제시하는 단계까지는 나가지 못하고 있다.

“지금 당장 삶의 질을 낮추지 않고도 다른 나라 사람들이나 미래 세대의 기회를 지킬 수 있는” 그런 방법이 뭐가 있을까.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일찌감치 “새로운 이념을 찾아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오래된 이념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지속 가능하고 윤리적인 경제, 호혜와 공존의 경제를 모색하는 게 해법이겠지만 성장 지상주의의 한계를 인식하고 극복하는 것이 더 우선적인 과제일지도 모른다.

경제학이 깔고 앉은 행복 / 요하네스 발라허 지음 / 박정미 옮김 / 대림북스 펴냄 /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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