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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산업의 몰락은 이미 오래된 일이고 방송산업 역시 마냥 장밋빛인 건 아니다. 민영 미디어렙이 도입되면 방송광고 시장이 조금 확대되긴 하겠지만 당장 4개의 종합편성채널과 1개의 보도전문채널이 출범을 서두르고 있다. 파이는 조금 늘어났는데 나눠먹을 입은 그보다 더 많아졌다. 지금까지는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그나마 과열경쟁을 억제해 왔는데 경쟁체제가 도입되면 처절한 생존경쟁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방송사들은 경비 절감을 이유로 외주 제작비율을 계속 늘려왔다. 방송사들이 갑, 외주 제작사들이 을이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외주 제작사는 한정돼 있는데 그 프로그램에 욕심을 내는 방송사는 크게 늘어났다. 장사가 되는 인기 탤런트와 프로듀서, 방송 작가의 몸값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제는 외주 제작사가 갑이 됐다.

인기 시트콤 ‘하이킥’의 경우 2시즌은 제작비가 편당 2640만원이었는데 3시즌으로 오면서 7260만원으로 세 배 가까이 뛰었다. 방송사들은 늘어난 제작비용과 얇아진 수익구조의 이중고를 겪게 됐다. 과거에는 외주 제작사들이 프로그램을 통째로 방송사들에게 넘겼는데 이제는 방송권만 넘기고 2차 판권과 해외 판권을 비롯한 모든 저작권을 직접 관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바야흐로 플랫폼 사업자에서 콘텐츠 사업자로 권력이 이동하고 있다.

‘본방 사수’의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선방송 채널에서 재방송도 많고 IPTV나 지난 방송 다시보기 서비스 등도 꾸준히 사용자가 늘고 있다. 유선방송 채널과 경쟁에서도 지상파의 입지는 계속 좁아지고 있다. 지상파 방송의 시청 점유율은 50% 미만으로 낮아진 상태다. ‘슈퍼스타K’의 성공에서 보듯 이제 유선방송 채널사업자(PP)들도 지상파 방송 못지 않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올레TV스카이라이프(OTS)의 놀라운 성장 속도도 눈길을 끈다. OTS는 KT의 유선 인터넷과 IPTV 서비스에 KT의 자회사인 스카이라이프의 위성방송 서비스를 결합한 서비스를 말한다. 가입자 수 추이를 보면 유선방송 서비스 가입자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OTS 가입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OTS는 유선 인터넷의 품질이나 실시간 방송의 채널 수는 물론이고 IPTV를 통한 VOD(주문형 비디오) 서비스에서도 다른 유료 방송 서비스를 압도한다.

KT의 미디어 기업으로서의 가능성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미국에서 넷플릭스의 성공을 보면 이해가 된다. 넷플릭스는 당초 온라인 DVD 대여 서비스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미국 최대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가 됐다. 99달러짜리 셋톱박스를 설치하면 월 9달러에 VOD 서비스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TV 셋톱박스 뿐만 아니라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 애플 아이패드를 통해서도 서비스를 제공한다.

넷플릭스와 비슷한 서비스로 훌루나 부두, 박시 같은 서비스들이 있다. 미국에서 유선방송 서비스가 월 10만원 가까이 하는 것과 달리 이들 스트리밍 서비스들은 저렴한 가격에 원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훌루는 광고를 보면 무료로 VOD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미국에서는 유선방송 서비스를 끊고 넷플릭스로 옮겨타는 가구가 크게 늘어났다. 이를 ‘코드 컷팅’이라고 부른다.

이런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OTT(Over the Top) 서비스라고도 부르는데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성공 모델이 없다. 굳이 비슷한 서비스를 꼽자면 곰TV나 판도라, 아프리카 정도가 있는데 아직까지 PC 기반에 머물러 있다. 방송사들이 콘텐츠 판매에 큰 열의가 없는 데다 통신회사들의 과점 상태가 계속되면서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는 KT 정도가 유력한 대안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방송시장은 이제 본격적으로 스마트+소셜TV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시청자들이 TV를 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과 동시에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컴퓨터를 사용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모토롤라 조사에 따르면 TV 시청자의 42% 정도가 TV를 보다가 이메일이나 인스턴트 메신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으로 시청 중인 프로그램에 대한 의견을 공유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닐슨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는 모바일 이용자의 86%가 TV 시청 중에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용자들을 TV 앞으로 불러모으려면 좀 더 흥미를 유발할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 좀 더 인터랙티브하고 소셜한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최근에 나온 스마트TV는 단순히 TV와 웹을 결합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지만 이제는 소셜TV를 고민해야 할 때다.

이제 TV가 아니라도 뉴스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9시 뉴스를 보려고 8시55분부터 TV 앞에 앉아 광고를 보며 기다릴 이유가 없다. 월화 드라마를 굳이 9시50분부터 볼 이유도 없다. 필요할 때 언제든지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불러다 볼 수 있는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다. 만약 방송사들이 적당히 안주하면서 변화를 따라잡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N-스크린 전략도 생존의 필수 전략이다. 가까운 미래에 지상파라는 플랫폼은 수많은 콘텐츠 플랫폼 가운데 하나로 전락할 것으로 보인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되 그 콘텐츠를 여러 플랫폼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유통시키느냐가 미디어 기업의 경쟁력이 된다. 미국의 방송사들이 자기잠식(cannibalization)의 가능성을 경계하면서도 태블릿 서비스에 뛰어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어떻게든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어 가능성을 발견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제 채널(브랜드)이 아니라 콘텐츠 단위로 소비되는 시대가 됐다. 채널 9번이나 11번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하이킥’을 소비하고 ‘슈스케’를 소비하고 ‘공주의 남자’를 소비한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컴퓨터에서는 채널이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게 MBC인지 KBS인지 SBS인지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지상파 방송사들도 이제 플랫폼 기업이 아니라 콘텐츠 기업으로 변모해야 한다. 살아남으려면 멀티 플랫폼 전략을 세워야 한다.

스마트+소셜TV의 시대에도 여전히 뉴스의 가치는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축구나 야구 등 스포츠 중계도 여전히 본방 사수의 가치가 있고 최근 급증하는 오디션 프로그램들도 그나마 과도기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드라마나 쇼‧오락 프로그램,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경우는 일정 정도 시청 점유율 하락을 받아들여야 한다. 본방 사수와 이에 의존하는 광고 수익모델에도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동안 ‘시청률=광고 매출’이라는 등식이 유지되겠지만 벌써부터 시청률 왜곡에 대한 우려가 많다. 실질적인 콘텐츠 수요를 산정하는 새로운 기준이 나와야 한다. 수요 분석에 따른 타겟형 광고나 양방향 광고,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결합한 리치 미디어 광고 등이 새로운 수익 대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위기가 곧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전제는 기득권을 포기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모험이 없으면 변화도 없다.

(월간 ‘더피알’ 10월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