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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수신료 인상에 목을 매는 이유.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13, 2010

KBS 이사회가 지난달 19일 TV 수신료를 2500원에서 3500원으로 1천원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수신료를 6500원으로 올리고 KBS 2TV가 광고를 받지 않기로 하는 방안이 논의됐으나 국민들 반발을 의식해 물러섰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KBS 이사회는 11명의 이사들이 만장일치로 합의했다고 밝혔으나 여전히 국민들 반발이 크고 향후 방송통신위원회 검토와 국회 의결 과정에서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방통위는 지난 2일 종합편성채널 신규 사업자 신청을 받아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KBS 수신료 인상과 종편 사업자 선정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건 광고 시장이 한정돼 있는데 새로운 방송사가 들어올 경우 방송사들 전체가 수익 악화가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종편 진출을 희망하는 신문사들은 KBS 수신료를 인상하되 KBS 2TV까지 광고 없는 방송으로 만들면 다른 방송사들로 그 광고 물량이 넘어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방송 산업에는 아직까지 광고가 여유가 있는 편이지만 신문 산업은 이미 사양 산업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대부분 신문사들이 신문 판매로는 거의 수익을 못 내거나 오히려 적자를 보면서 광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데 그나마도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다. 종편 진출이 유일한 해법으로 여겨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KBS 수신료 인상이라는 선결 과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 역시도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정부는 그동안 종편 선정을 미끼로 신문사들을 관리해 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실제로 종편 진출을 희망하는 신문사들이 정부 비판에 더 소극적이라는 평가도 많았다. 업계에서는 종편 사업자가 2개 이상 선정될 경우 사업성이 없거나 자칫 업계 전체가 공멸할 거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지만 일부에서는 정부가 어떻게든 먹을거리를 만들어주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기대도 있다. 결국 KBS 수신료 인상이 최대 변수라고 할 수 있다.

KBS 수신료는 1981년 컬러 TV가 보급되면서 500원에서 2500원으로 오른 이래 29년 동안 동결돼 왔다. KBS는 난시청 지역 해소와 디지털 플랫폼 구축, 공영성 확대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수신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KBS가 해마다 엄청난 흑자를 내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설명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불신도 거센 상황이다.

KBS는 지난해 697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는데 올해는 1천억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정부 지원과 협찬이 크게 늘어난데다 올해는 월드컵 효과도 컸다. 이 때문에 KBS 내부에서도 왜 수신료를 인상하는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다. 게다가 최근에는 이런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연말에 대규모 성과급 잔치를 벌일 예정인데다 장비 구입 등 비용 지출을 늘려 당기순이익 규모를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발견되고 있다.

난시청 지역 해소를 위해 수신료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우선 KBS가 그동안 난시청 지역 해소를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도 의문이고 대부분의 가구들이 유선방송으로 KBS를 시청하고 있는 상황에서 난시청 해소를 위해 수신료를 올린다는 건 이중으로 부담이 된다. 디지털 플랫폼 역시 MBC나 SBS 등은 수신료 없이도 잘 하는데 왜 KBS만 국민들에게 손을 벌리느냐는 비난 여론에 직면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KBS의 공정성이 크게 실추됐다는 비판도 거세다. 김인규 KBS 사장은 KBS 출신이긴 하지만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 특보를 지냈던 사람이다. 김 사장의 취임 이후 KBS는 정부 비판에 소극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노골적으로 정책 홍보에 나서는 등 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KBS의 신뢰도가 MBC 보다 뒤쳐진다는 사실이 입증된 바 있다.

물론 KBS 수신료가 30년 가까이 동결된 상황이라 수신료를 인상할 때가 됐다는 주장도 언뜻 그럴 듯해 보인다. 영국의 BBC의 수신료를 연간 139.5유로, 우리 돈으로 27만491원에 이른다. 독일 ARD는 204.4유로(36만6112원), 일본 NHK는 1만4910엔(22만1414원)으로 우리나라의 7배에서 많게는 12배 수준에 이른다. 운영 재원 가운데 수신료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도 KBS는 41% 밖에 안 되는데 BBC는 76%, ARD는 81%, NHK는 97%나 된다.

KBS는 수신료를 충분히 올려야 좀 더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BBC의 수준 높은 교양·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그 사례로 든다. 그러나 수신료 인상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공영성과 독립성을 확보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우선이라고 반박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낙하산 인사가 내려오고 보도의 독립성이 흔들리는 지금 시스템으로는 공영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KBS는 지난 9월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딸의 특채 의혹 사건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고 최근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의혹 역시 축소 보도했다. 지난 3월 천안함 침몰 사고 역시 정부 입장만 일방적으로 대변하는데 그쳤다.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크게 줄어든 반면 흥미 위주의 오락 프로그램이 늘어난 것도 주목된다. 수신료를 받는 KBS나 광고로 먹고 사는 MBC나 다를 게 뭐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KBS가 BBC나 ARD에게 부러워할 것은 높은 수신료가 아니라 국민들의 전폭적인 신뢰와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독립이라는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BBC와 ARD는 대통령과 집권 여당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낸다. BBC가 보수당 집권 시절 여러 차례 민영화 요구에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공영방송의 가치를 국민들에게 입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정부 여당과 방송통신위원회가 KBS 이사진의 과반수를 선임하고 여기에서 사장이 결정되기 때문에 정치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쫓겨나다시피 물러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의 측근 인사가 후임으로 들어온 것도 이를 반증한다. 반면 BBC와 ARD 등은 사장 선임은 물론이고 프로그램의 편성과 제작, 평가 과정 전반에 시청자들의 참여를 보장해 공적 소유의 개념을 실현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땡전 뉴스’로 전락한 KBS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면서 한때 수신료 납부 거부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1994년부터는 전기요금에 합산 부과하도록 바뀌면서 사실상 준조세 성격이 됐다. 전기요금을 3개월 이상 안 내면 전기가 끊기기 때문에 TV 수상기가 있는 가구라면 수신료를 내지 않을 방법이 없다. 그러나 만약 KBS의 구조적인 변화 없이 수신료 인상이 단행된다면 엄청난 국민적 반발에 부딪히게 될 걸로 보인다.

물론 수신료 인상을 반대하는 쪽에서도 수신료 인상 자체를 무작정 반대하는 건 아니다. 시청률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업방송과 다른 공영방송의 가치를 부정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 다만 공영성과 독립성을 확보할 제도적 장치 마련이 우선돼야 하며 지금처럼 이른바 조중동 등 일부 신문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이 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KBS의 구조 개혁을 논의해야 할 때다.

(논술 잡지, ‘이슈&’에 실린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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