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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일본 오사카.

Written by leejeonghwan

November 16, 2010

일본 여행에서 돌아오기 전 날 오사카 우메다역 뒷골목에서 소고기덮밥을 시켜먹다가 나는 갑자기 목이 메었다. 반찬이라고 해봐야 손톱 크기의 단무지 두 쪽이 나왔을 뿐인데 이 초라한 저녁식사가 680엔, 우리나라 밥값의 두 배라고 생각하니 맥주 없이는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병맥주는 한 병에 500엔, 생맥주는 700엔이었다. 생맥주 한 잔에 1만원 꼴이다.


교토에서 뙤약볕에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다가 지쳐서 그나마 몸 보신을 생각해 장어덮밥을 시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장어 두 토막이 올라가 있고 미소 된장국과 단무지 한 접시를 포함해 990엔. 장어를 먼저 집어먹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간장에 밥을 비벼먹는 꼴이었다. 한국에서라면 성질을 냈겠지만 밍밍한 된장국을 반찬 삼아 묵묵히 먹는 수밖에 없었다.

유명하다는 오사카 도톤보리의 긴류라멘은 한국 관광객들을 배려해 김치를 주긴 하는데 덜어먹을 그릇이 없다. 그냥 라멘 그릇에 부어다가 건져 먹어야 한다. 친절하긴 하지만 우리나라 동네 분식집만도 못한 소박한 인테리어. 부실한 반찬. 달랑 1회용 나무젓가락 한 짝. 테이블에는 휴지조차 없다. 가격은 600엔, 그런데도 그나마 싼 맛에 손님이 몰려들었다.

길에서 파는 도시락도 1천엔은 기본, 초밥 도시락은 3천엔이 넘는 경우도 있고. 음료수 자판기는 100엔짜리가 있으면 반가울 정도. 시내버스와 지하철 요금은 200엔부터. 가까운 시내 왕복만 해도 6천원이 든다. 택시 기본요금은 710엔. 전철로 1시간 거리인 간사이 공항에서 오사카 시내까지 택시를 타면 1만5천엔이 넘는다고 한다. 20만원이 훌쩍 넘는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체감 물가가 이처럼 큰 차이가 나는 건 일단 환율 때문이다. 원엔 환율은 2007년까지만 해도 100엔에 800원을 밑돌았는데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한 때 1616원까지 치솟았다가 최근에는 1400원 수준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지금은 원달러 환율 보다 원엔 환율이 더 높다. 원달러 환율은 1170원 수준.

물론 두 나라의 임금 수준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의 올해 최저임금은 평균 시급 728엔이다. 우리 돈으로 1만225원. 그런데 길거리에 나붙은 아르바이트 구인 공고는 대부분 800엔이 넘었다. 우리나라 올해 최저임금이 4110원이고 그나마도 지켜지지 않는 사업장이 많다는 걸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거의 세 배가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저임금 4110원이면 3400원짜리 맥도널드 빅맥버거를 하나 사먹을 정도 밖에 안 된다. 일본에서는 같은 빅맥버거가 320엔. 최저임금 728엔이면 두 개를 사먹을 수 있다. 환율 영향도 있고 애초에 일본의 물가가 비싸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임금 수준의 차이가 크고 그만큼 구매여력도 차이가 난다는 이야기다.

소고기덮밥을 안주 삼아 생맥주를 홀짝 거리면서 생각했다. 두세 배 이상의 밥값을 내고도 왜 나는 이런 형편없는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것일까. 왜 우리의 노동은 일본 사람들만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일까. 똑같이 열심히 일하고도 왜 우리는 일본 사람들 받는 임금의 절반 밖에 받지 못하는 것일까.

그러나 새삼 신기하게도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공산품 가격은 큰 차이가 없었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애플 아이폰4 가격은 현금 판매 기준으로 16GB 모델이 4만6080엔, 32GB 모델은 5만7600엔. 환율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와 거의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싸다. 노트북 컴퓨터나 카메라, TV 등 다른 전자제품 역시 관세 등을 감안하면 큰 차이가 없었다.

한 끼 밥값이야 두 나라 모두 임금 수준 대비 체감 정도가 비슷할 수도 있지만 아이패드의 체감 가격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두 배 이상 비싸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한 달 월급 절반 정도 가격이라면 일본 사람들에는 3분의 1이나 4분의 1 정도 가격이고 중국 사람들에게는 월급보다 비싼 가격이 된다. 이런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최근 펴낸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라는 책에서 인도의 택시 기사보다 50배나 더 많은 임금을 받는 스웨덴의 버스 기사 이야기를 사례로 들고 있다. 인도 뉴델리에서는 버스 기사의 시급이 18루피인데 스웨덴 스톡홀름에서는 130크로나, 환율을 계산하면 870루피 정도 된다.

장 교수는 묻는다. 스웨덴의 버스 기사는 운전을 50배나 더 잘 하나? 생산성이 50배나 더 높은가? 장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스웨덴의 버스 기사가 훨씬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건 노동시장에 대한 엄격한 통제 때문이다. 만약 인도의 노동자들이 스웨덴에 몰려와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스웨덴 버스 기사들 임금은 지금보다 훨씬 낮아질 게 뻔하다.

버스 기사나 환경 미화원 같은 비교적 단순직 노동자 뿐만 아니라 엔지니어와 펀드 매니저, 컴퓨터 프로그래머 같은 전문 직종도 마찬가지다. 장 교수는 “한 개인이 받는 임금은 그의 가치를 완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일하는 사회 경제 시스템 덕분에 그만큼의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것이지 개인의 능력만으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인도의 버스 기사가 스웨덴에 와서 느끼는 억울함이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라마다 빅맥지수가 다른 것처럼 구매력에 따라 물가가 결정되지만 공산품의 가격은 세계 어디나 거의 동일하다.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휴대전화나 LCD TV, 승용차를 사려고 할 때 가난해진다. 이들의 노동력은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된다.

당연하면서도 중요한 몇 가지 시사점이 있는데 우선 임금이 올라가면 구매력이 높아진다는 사실. 물론 그만큼 물가도 올라가겠지만. 그리고 임금 수준을 높이려면 그만큼 그 사회의 생산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사실. 거꾸로 말하면 낮은 임금에 의존하다보면 생산성 향상도 더딜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인도의 버스 기사가 스웨덴에 취업하기 어려운 것처럼 아무리 두 배의 임금을 준다고 한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에서 정착하기는 쉽지 않다. 아이패드는 국경을 넘어 팔리지만 인력의 이동은 한계가 있고 일본의 쇠고기 덮밥이 우리나라에서 팔릴 일도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덕분에 우리는 순두부 찌개를 단돈 5천원에 먹을 수 있다.

(작성 중. )

핵심은 우리 모두 좀 더 높은 임금을 받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거다. 칼 마르크스는 노동이 모든 가치를 창출하며 유일한 이윤의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더 많은 임금을 받아야 하고 중국의 노동자들은 지금보다 일곱 배 이상 더 많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 국경을 넘어 연대하는 자본에 맞서 노동자들의 초국적 연대가 절실한 때다.

(지난 9월 일본 여행 후기를 이제야 올립니다. 늦여름인데도 40℃를 넘나드는 이상한 날씨였습니다. 100년만의 폭염이었다고 하는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느라 고생깨나 했습니다. 오사카와 교토, 나라, 고베, 히메지 등 간사이 지방을 한 바퀴 도는 일정이었습니다. 교토가 특히 좋았고 생맥주가 맛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환율이 100엔에 1400원이 넘었을 때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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