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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돌아왔다. (민주노총 논평)

Written by leejeonghwan

October 15, 2010

노동자들이 돌아 왔다. 무너진 대지(大地), 칠레의 지하 700m에서 구리광산 노동자 33명은 70일을 견뎌냈다. 그리고 어제, 지하의 노동자들은 지상 노동자들의 끈질긴 구조 끝에 아내와 아이들을 다시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이들 노동자 모두와 가족들에게 경의와 감사를 표한다. 이들은 절망의 암흑 속에서 노동자 특유의 단결과 조직력, 인내와 유머, 자치의 힘과 희망을 캐냈다. 사람보다 구리가 소중한 자본조차 어제는 노동자들이 보여준 생존투쟁에 고개를 숙이고, 지구 반대편 한국의 노동자들은 계급의 의미를 다시금 발견했다.


지구 반대편 땅의 대통령 중, 혁명가 아옌데와 그를 죽인 독재자 피노체트를 이어 피녜라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기억될 칠레 대통령이 될 정도로 세계는 이번 사건을 주목했다. 그러나 누구보다 주목받아야 할 이들은 당연히 33명의 노동자이며, 그 중에서도 작업반장 우르수아였다. 작업반장이라는 관리자에 대한 우리의 기억과 달리 그는 고난의 70일을 평등과 자치의 규율로 훌륭히 이끌었다고 한다. 가장 마지막으로 지상에 올라 온 순간 그가 대통령에게 한 말은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였다. 광부들은 영웅이기에 앞서 “부당한 노동조건의 희생자”라고 한 칠레의 사제 파우비프의 말은 33명 가운데 최고령이며 이미 여러 번의 붕괴사고를 겪었다는 마리오 고메스(67)의 잘린 두 손가락과 오버랩 된다.

세계는 환호했고 지원을 가장해 홍보에 열을 올리는 이들도 있었지만, 침작한 숙련노동자인 우르수아는 끔찍한 산재사고가 반복되지 않기를 정부에 당부했다. 이는 비단 칠레 대통령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지도층에게 전하는 노동자들의 생환 메시지였다. 칠레 대통령은 사고원인의 책임자들을 “처벌하지 않을 수 없다”며 “광업과 건설, 교통, 농업, 수산업 등에 새로운 노동안전조치를 발표할 것”을 약속했다. 이 모든 일은 한국의 현실과 대비된다. G20 의장국인 한국은 OECD 국가 중 최고의 산재발생 국가이며, 산재노동자 10명 중 고작 3~4명만이 복직한다. 한편, 최근 우리의 대형 산재참사 희생자들 중에는 이주노동자들이 많다. 반면 칠레노동자들과 함께 구조된 볼리비아 출신의 이주노동자는 지하의 노동자공동체에서도 지상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차별받지 않았다. 그는 열악한 광산노동은 싫지만 칠레 노동자들의 곁에 남기를 원했다.

세계적인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G20정상회의, 아카데미상시상식, 세계경제포럼(WEF) 등에 파견할 인력과 재정을 줄여서라도 칠레 광산노동자들의 소식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 역시 작금의 우리 언론현실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이밖에도 갖가지 칠레 발 소식들이 언론을 장식하고 있으며, 칠레 노동자들은 우리에게 적지 않는 교훈을 던져준다. 단결을 통해 보여준 그들의 지하생활은 노동자들의 현재와 더불어 노동자들이 만들어 갈 미래에 대한 영감을 일깨워준다. 물론 그들이 늘 절망과 싸우는 투사이거나 이기심을 극복한 영웅일 필요는 없다. 지하에서도 그들은 여느 노동자처럼 모두를 위해 일을 하고 자신을 위해 휴식했으며 서로를 위해 놀았다. 이들의 70일은 흡사 쌍용차의 77일을 닮았지만, 쌍용차와 칠레 광산의 결말은 전혀 달랐다.

33인 광산노동자들에 대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책도 나온다고 한다. 방송에서는 1회 인터뷰 출연료로 1천6백만 원을 제시했다는 말도 있다. 선정적인 상업주의가 노동자의 벗이자 혁명가 체게바라까지 상품으로 여기는 것처럼, 33인 칠레 노동자의 생존담이 상업주의에 오염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두 번째로 구조된 광부는 “저희를 예술가나 언론인처럼 대하지 말길”부탁한다. “그냥 광부로 대해주시길 바랍니다.”고 했다. 이후 모든 수입도 모두 동등하게 나누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들은 700m 지하에 갇혀서도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읽으며 견뎠다. 그런 노동자들이기에 지상의 시련과 유혹도 잘 이겨내리라 믿고 기대한다. 칠레 노동자들이 사랑한다는 시인 네루다, 그는 국가권력의 폭력에 잡혀가는 위험 앞에서도 당당하게 생을 마감했다.

“당신들(피노체트의 군대)에게 위험한 것이라고는 이 방에 단 하나밖에 없네.”

장교는 깜짝 놀라며 권총에 손을 댔다. “그게 뭡니까?”

“시(詩)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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