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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의 엉터리 보고서들.

Written by leejeonghwan

March 4, 2009

주식시장 격언 가운데 주가는 비관 속에서 태어나 회의 속에 자라고 낙관 속에서 성숙하고 행복감 속에서 저물어 간다는 말이 있다.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면 그 곳이 언덕이기도 하고 내리막길이기도 하지만 지금 당장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바닥인 것 같은데 더 내려가기도 하고 다 올라온 것 같은데 언덕이 계속 나타나기도 한다. 주가는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를 반영하지만 이를 배반하는 경우도 많다.


주가가 영원히 오를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런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주가는 등락을 거듭하면서도 결국 기업의 가치에 수렴하는데 어느 기업이든 성장의 둔화를 겪기 마련이고 그 가치 역시 한계를 맞을 수밖에 없다. 물론 투자자들이 앞뒤 안 가리고 몰려들면서 실적에 관계없이 주가가 뛰어오를 때도 있지만 머지않아 결국 제 자리를 찾아가게 된다. 급등 뒤에는 급락이 있고 거품은 결국 꺼지기 마련이다.

흔히 주식시장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세일즈맨이다. 증권사들은 주식 매매 수수료가 주요 매출인데 이들의 가장 큰 고객은 투자신탁회사나 자산운용사의 펀드 매니저들, 이른바 기관 투자자들이다. 애널리스트들은 시장을 분석하고 보고서를 쓰기도 하지만 이들의 주요 업무는 기관 투자자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고 주문을 받아오는 일이다. 증권사들이 쏟아내는 보고서는 판매 상품인 셈이다.

경제 주간지들이 뽑는 베스트 애널리스트는 이들의 연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베스트 애널리스트를 중심으로 스카우트 열풍을 불러일으킬 만큼 신뢰도가 높지만 사실 이 투표에 참여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기관 투자자들이다. 고객들이 세일즈맨을 평가하는 시스템인 셈인데 당연히 고객들 입맛에 맞는 보고서, 이를 테면 이들이 보유한 종목에 대해 좋은 전망은 내놓는 보고서를 쓰는 애널리스트들이 좋은 점수를 받게 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게 현실이다. 보고서 업무가 30%, 기관 세일즈 업무가 70%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보고서의 정확성이나 신뢰도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당장 기관 투자자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 애널리스트들의 세계다. 새벽 6시에 출근해 저녁 12시에 퇴근하는 생활에 억대 연봉을 받는 애널리스트들도 수두룩하지만 주가가 떨어지고 매출이 줄어들면 가장 먼저 구조조정의 손길이 미치는 곳도 바로 리서치 센터다.

온갖 종목에 매수 추천은 넘쳐나는데 중립이나 매도 추천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2008년 6월 이후 6개월 동안 나온 2633개 종목 보고서 가운데 ‘강력매수’ 의견이 26건, ‘매수’ 의견이 2088건인 반면, ‘중립’ 의견은 518건, ‘비중축소’ 의견은 1건 뿐이었고 ‘매도’ 의견은 아예 단 1건도 없었다. 이런 배경에서 중립 의견만 나와도 상당한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는 “어떤 종목에 대해 매도 의견을 낸다면 당장 해당 기업은 물론이고 그 종목을 보유하고 있는 펀드매니저에게 항의 전화가 올 것”이라며 “매도 의견을 내야 하는 상황이지만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래서 주가가 폭락할 때는 보고서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도 한다. 전망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거나 정정 보고서를 내는 경우도 거의 없다.

이런 상황이니 주식시장에서 비관론자들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이들은 설령 전망이 맞더라도 욕을 먹게 된다. 비관론을 외치다가 퇴출된 전문가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임송학 전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과 박윤수 전 우리증권 리서치센터장, 유동원 전 씨티그룹 글로벌마켓증권 리서치센터장, 정동희 전 피데스증권 투자전략팀장, 외국인으로는 스티브 마빈 도이치증권 한국 지점 리서치센터장 등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는 늘 되풀이 된다”는 주식시장의 오래 된 격언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바닥없이 추락하고 있지만 언젠가 과거처럼 거침없이 치고 오를 것이라는 의미겠지만 실제로 이 격언은 오버슈팅(과열)이든 언더슈팅(침체)이든 결국 제자리로 돌아올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줄 뿐이다. 주식시장은 단기적으로 결국 제로섬 머니 게임일 뿐이고 얻는 사람이 있으면 그만큼 잃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주가를 결정하는 요인은 기업 실적과 그 전망이다. 기업의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되고 늘어난 이익이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통한 시세차익 등으로 주주들에게 배분될 것으로 기대될 때, 주가는 정확히 그만큼 올라야 맞다. 이익 대비 주가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주가수익비율(PER)이라는 개념이 있다.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개념이다. PER이 10배라면 이 기업의 주식 시가총액이 이 기업이 올해 벌어들일 이익의 10배라는 이야기다.

흔히 성장성이 높은 기업일수록 PER이 높고 성장의 한계에 직면한 전통 산업은 낮다. 같은 업종이라면 PER이 높을수록 주가가 비싸다는 의미고 PER이 낮을수록 주가도 싸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 신영증권 분석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으로 세계 주식시장의 PER은 10.4배다. 선진국 시장만 놓고 보면 10.6배, 개발도상국들이 모인 이머징 시장은 8.4배, 우리나라는 9.1배다. 1988년 이후 최저 수준이라는 게 신영증권의 분석이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PER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전에는 10배와 15배 사이를 오가는 정도였고 IMF 이후 1999년 초반 20배 이상으로 치솟았다가 2000년 이후 정보기술 거품이 꺼지면서 5배 수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10배를 넘어선 것은 2002년에 잠깐, 그리고 2006년 이후부터다. 우리나라의 PER은 이머징 시장 평균보다는 높고 선진국 시장 평균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적정 주가수준을 고민할 때 또 하나 고려해야 할 지표가 바로 배당성향이다. 기업들은 해마다 결산을 하고 난 뒤 이익의 일부를 주주들에게 배당으로 나눠주는데 배당성향이란 당기순이익 가운데 배당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배당성향이 높을수록 주가도 높지만 중요한 것은 얼마나 꾸준하게 높은 배당을 줄 수 있느냐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배당성향은 IMF 이후 평균 20% 안팎에 머물렀는데 조금씩 높아지는 추세다.

만약 PER가 12배고 배당성향이 25%인 기업의 경우 배당만으로 본전을 뽑으려면 48년(=12/25%)이 걸린다. 이 정도면 주가가 높은 편일까, 낮은 편일까. 만약 주가가 더 오르려면 이익이 늘어나거나 배당성향이 늘어나 본전을 뽑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더 줄어들어야 한다. 또는 시장 전체 평균 PER가 높아져서 투자자들의 기대 수준도 높아져야 한다. 과연 주가는 얼마나 더 오를 수 있는 것일까.

이와 관련, 미래에셋증권은 2008년 8월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적정 PER가 12.5배라는 분석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배당성향을 25%로 보고 주식 투자의 기대 수익률을 9%, 잠재 성장률과 물가 상승률을 각각 4.5%와 2.5%로 잡은 다음 배당성향을 ‘기대수익률-(잠재성장률+물가상승률)’로 나눠서 계산한 결과다. 주가가 천정을 찍었던 그해 7월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적정 PER를 넘어 14.1배의 PER를 기록했는데 증권 전문가들은 아무도 과열을 경고를 하지 않았다.

PER은 주가의 고평가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인데 투자자들은 흔히 PER이 오르면 주가가 너무 비싸다고 말하지 않고 시장의 평가 수준이 높아졌다고 이해하고 PER이 높아졌으니 주가가 더 올라도 된다는 자가당착적 결론을 끌어낸다. 지난해 중국 주식시장의 PER가 20배가 넘어섰을 때 많은 투자자들이 더 오를 수 있다고 믿었던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머니 게임의 논리로 보면 오히려 더 매력적일 수 있다.

올해 들어 세계적으로 주가가 폭락한 것은 미국 금융 불안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실물경제까지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 투자자들이 여전히 기업 실적을 보지 않고 단순히 주가의 움직임만 보고 투자를 결정한다. 기업 실적 역시 크게 하향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순진한 투자자들은 주가가 제 자리를 찾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주가가 제 자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주가는 시장의 유동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적립식 투자가 늘어나고 너도 나도 쌈짓돈을 주식시장에 쏟아 붓기 시작하고 국민연금 등 연기금까지 주식시장에 몰려 들어오면 주가가 적정수준을 크게 웃돌 수도 있다. “밀물이 밀려오면 모든 배가 떠오른다”는 격언처럼 시장이 과열 국면으로 내달을 때면 이미 가치 평가가 무의미해진다. 이런 상황을 다른 말로 거품이라고 부르는데 그 거품이 이 제로섬 머니게임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전설적인 투자자라고 불리는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일찌감치 이런 격언을 남겼다. “바보보다 주식이 많으면 주가가 떨어진다. 거꾸로 주식보다 바보가 많으면 주가가 오른다.” 지난해 주식시장이 주식보다 바보가 많았다면 올해는 바보들이 겁을 집어먹고 빠져나가는 분위기다. 바보들이 다시 몰려들면 주가가 뛰어오르겠지만 아무리 많이 몰려들어도 적정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게 역사가 알려준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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