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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쩍은 네트워크 중립성 논쟁.

Written by leejeonghwan

July 26, 2010

우리나라에서 네트워크 중립성 논쟁은 2006년 9월 LG파워콤이 지금은 SK브로드밴드로 바뀐 하나로텔레콤의 하나TV 서비스를 차단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나TV는 하나로텔레콤이 야심차게 준비한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였다. 문제는 하나로텔레콤이 아닌 다른 인터넷 회선을 쓰는 이용자들이 하나TV를 이용할 때다. 이를 테면 돈은 하나로텔레콤이 벌고 LG파워콤은 네트워크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물론 이용자 입장에서는 달마다 꼬박꼬박 인터넷 요금을 내고 있기 때문에 내 맘대로 무슨 서비스를 이용하든 웬 상관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LG파워콤 입장에서는 이런 대용량 서비스가 늘어나면 네트워크 속도가 느려지고 추가로 설비투자를 해야 한다. 네트워크는 과연 중립적이어야 하는가. 정액 요금만 내면 이용자들이 무슨 서비스를 이용하든 그냥 내버려 둬야 하는가. 네트워크 중립성 논쟁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LG파워콤에 이어 케이블 채널 사업자들까지 하나TV 서비스를 차단하면서 논쟁은 더욱 확산됐다. 하나로텔레콤은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이라고 반발했고 다른 네트워크 사업자들은 이용약관에 명시된 합법적인 조치라고 반박했다. 정보통신부가 중재에 나서기도 했지만 하나로텔레콤은 비용 부담을 하지 않겠다고 끝까지 맞섰다. 눈치를 보던 KT는 메가패스TV를 메가패스 이용자들에게만 서비스하기로 했다.

2008년 7월 시범 사업을 시작했던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오픈 IPTV도 논란이 됐다. KT나 SK브로드밴드, LG파워콤 등과 달리 다음은 아예 네트워크가 없다. 만약 네트워크 사업자들이 접속을 차단하면 다음은 서비스를 접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다음이 그해 12월 IPTV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하면서 논쟁은 일단락됐지만 언제라도 다시 촉발될 수 있는 문제다. 네트워크 사업자들의 트래픽 부담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에는 이동통신 사업자들의 VoIP(인터넷 전화) 접속 차단도 논란이 되고 있다. 휴대전화로 스카이프를 이용할 수 있다면 가입자들끼리 무제한 무료 통화도 가능할 텐데 대부분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스카이프 접속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물론 데이터 요금은 들겠지만 통화 요금 보다 훨씬 더 싸기 때문이다. 그나마 와이파이 네트워크를 이용할 경우 데이터 요금조차 들지 않는다. 통화료 수입이 줄어드는 것도 직접적인 이유가 된다.

미국에서도 네트워크 중립성 논쟁이 한창이다. 지난 4월 미국 콜롬비아 특별행정구 항소법원은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네트워크 중립성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콤캐스트를 제재한 것은 권한 남용이라고 판결해 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콤캐스트는 지난 2008년 파일 공유 사이트인 비트토런트의 접속 속도를 의도적으로 낮춰서 제재를 받은 바 있다. 법원의 판결은 네트워크 중립성 원칙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FCC는 네트워크 사업자가 특정 서비스를 제한하거나 차단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법원은 이를 과도한 간섭이라고 판단했다. 네트워크 사업자가 알아서 결정할 문제라는 이야기다. 미국에서는 민주당이 네트워크 중립성을 지지하는 반면, 공화당은 완강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법원 판결 이후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네트워크 중립성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5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주최로 열렸던 망 중립성 포럼에서는 찬반 양론이 거세게 충돌했을 뿐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 국내 최초로 네트워크 중립성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였으나 네트워크 사업자들의 입장을 확인하는데 그쳤다는 평가가 많았다. 공성환 KT 상무는 “포털 사업자나 콘텐츠 사업자들이 네트워크 사업자들의 망을 이용해 수익을 내면서 아무런 비용 부담을 치르지 않고 무임승차하는 것은 규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김희수 연구원은 “2002년에는 KT의 시가총액이 NHN의 48배였는데 지난해에는 1.3배까지 좁혀졌다”면서 “대규모 투자를 하는 네트워크 사업자들은 해마다 수익성이 줄어드는 반면 포털과 VoIP, VOD 사업자들의 수익성은 급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네트워크 중립성 개념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네트워크 사업자들의 설비 투자 유인을 꺾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이사는 “거의 아무런 규제가 없는 미국과 온갖 규제가 뒤섞여 있는 우리나라는 네트워크 중립성 논쟁의 개념이 전혀 다르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무소불위의 결정권을 갖고 있는 네트워크 사업자들에게 최소한의 규제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지만 우리나라는 네트워크 사업자가 아니라 방송통신위원회가 모든 결정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전 이사는 “우리나라에서 다이얼패드가 왜 실패했는지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스카이프보다 훨씬 빨리 인터넷 전화 사업을 시작했던 다이얼패드는 KT를 보호하려는 정보통신부 때문에 국내에서는 사업을 할 수 없었다. 전 이사는 “여전히 방통위는 네트워크 사업자들의 이해관계를 일방적으로 대변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네트워크 중립성 논쟁 이전에 방통위가 규제 권력을 잘못 행사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네트워크 중립성 논쟁이 IPTV나 VoIP를 차단하느냐 마느냐 정도로 좁혀지고 있지만 최근까지 이동통신회사들이 휴대전화 와이파이 접속을 차단하거나 네이트와 매직엔 등으로 무선 인터넷 접속을 제한하는 등 네트워크 사업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부 정책이 결정돼 왔던 걸 부정하기 어렵다. 뒤늦게 네트워크 사업자들이 네트워크 중립성 이슈를 들고 나온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네트워크 중립성 논쟁이 처음 거론되던 때는 공유재로서 네트워크의 가치와 콘텐츠 사업자의 권리를 강조했다면 최근에는 네트워크 사업자의 비용 부담을 분담하자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마냥 시장에 맡겨두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없지만 방통위가 네트워크 사업자들을 감싸고 도는 건 더 문제가 될 수 있다. 최소한의 기본적인 네트워크 중립성 원칙을 확립하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트래픽 부담 급증, 비용은 누가 부담하나.
무임승차 비난에 포털은 ‘나몰라라’… 요금인상도 쉽지 않아.

네트워크 중립성이란 네트워크 사업자가 인터넷 콘텐츠의 트래픽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개념이다. 누구나 동등하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본 전제에서 출발한 개념인데 인터넷 도입 초기에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네트워크 사업자들의 수익모델을 침해하는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고 트래픽 부담이 급증하면서 무임승차 논란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KT에 따르면 국내 인터넷 트래픽은 2000년 이후 해마다 평균 53%씩 증가하고 있다. 파일공유 사이트인 소리바다의 경우 해마다 30% 이상의 트래픽을 추가로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IPTV 서비스는 고화질 동영상의 경우 15Mbps, 3D 동영상은 30Mbps를 점유한다. 시스코는 세계적으로 무선 데이터 트래픽이 해마다 152%씩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스마트폰 보급이 늘어나면서 모바일 동영상 서비스도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늘어나는 네트워크 투자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이냐다. 요금을 올려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초고속 인터넷 시장은 KT와 SK브로드밴드, LG파워콤, 여기에 케이블 채널 사업자들까지 가세해서 출혈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초고속 인터넷 요금이 10년째 거의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동통신 시장도 마찬가지다. 무선 데이터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매출이 늘고 있긴 하지만 크게 요금을 올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네트워크 사업자들이 포털이나 동영상 서비스 업체들에 비용 부담을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네트워크 사업자가 콘텐츠 서비스 업체에게 네트워크 사용 대가를 요구하는 전례가 없기 때문에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투자 유인이 없다는 볼멘소리도 하지만 접속속도가 느려질 경우 이용자들의 거센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라 이래저래 네트워크 사업자들은 고민이 많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네트워크 중립성 가이드라인에서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정한 바 있다. 첫째, 이용자가 선택한 합법적 콘텐츠의 송수신을 방해하지 말 것, 둘째, 합법적인 어플리케이션이나 서비스의 사용을 방해하지 말 것, 셋째, 네트워크에 해를 미치지 않는 합법적인 디바이스의 접속과 사용을 금지하지 말 것, 넷째, 이용자가 콘텐츠나 어플리케이션 프로바이더를 선택할 권리를 뺏지 말 것, 다섯째, 차별 취급하지 말 것 등이다.

트래픽 폭탄, 와이파이가 대안될까.
이통사들에게는 계륵… 앞다퉈 와이파이존 증설.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되면서 무선 인터넷 사용량이 급증하고 있다. 그만큼 이동통신 사업자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음성통화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매출이 늘어나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엄청난 추가 투자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KT와 SK텔레콤이 앞 다퉈 와이파이존을 늘리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와이파이존은 유선 네트워크 기반으로 반경 10미터 주변에 무료 무선 인터넷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이동통신사 입장에서 와이파이는 계륵과 같다. 당장 유료 무선 데이터 사용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매출에 마이너스요인이 되지만 급증하는 트래픽 부담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무료 와이파이존이 늘어나는 건 당연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지난 지방선거 때는 민주당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와 유시민 경기도지사 후보 등이 공공 와이파이존을 늘리겠다는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KT는 쿡앤쇼존을 올해 말까지 3만개 이상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SK텔레콤도 6천개 수준인 T와이파이존을 올해 말까지 1만5천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T와이파이존은 다른 이동통신사 가입자에게도 접속을 허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LG유플러스는 아직 와이파이존이 거의 없지만 연말까지 1만1천개 구축할 계획이다. 상대적으로 유선 네트워크를 전국 곳곳에 확보하고 있는 KT가 유리한 상황이다.

시장조사업체 지와이어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으로 미국이 7만1628개의 와이파이존을 보유해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이 3만6592개로 2위, 그 뒤를 영국(2만8182개)과 프랑스(2만6437개)가 잇고 있다. 우리나라는 1만2814개로 7위지만 만약 KT와 SK텔레콤 등이 계획대로 와이파이존을 늘린다면 중국을 제치고 2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토 면적 대비 와이파이 커버 비율은 일본이 4.7%로 가장 높고 프랑스가 4.0%, 우리나라는 1.3%로 3위다.

대우증권 박원재 연구원은 “무선 인터넷 초기에는 와이파이로 어느 정도 데이터 수요를 해결할 수 있겠지만 급증하는 데이터 트래픽을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특히 정액 요금제를 출시했던 해외 이동통신사들의 경우 트래픽 증가에 따른 수익증가는 제한적이고, 설비 투자 부담만 과중되는 문제점이 있다”면서 “근본적으로 기지국과 회선 증설, 망 업그레이드 등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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