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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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푸어라는 말은 형용모순이다. 수억원짜리 집이 있는데 어떻게 가난할 수 있단 말인가. 김재영 MBC PD수첩 PD는 이 책에서 하우스 푸어는 “2000년대 한국 사회경제의 모순이 잉태한 최종 결과물”이라고 진단한다. 이 책에는 그동안 그 어느 언론에도 나오지 않았던 현장의 사례가 풍부하게 담겨있다. 부동산 열풍의 끝이 머지않았다는 확신을 불러일으키는 참담한 사례들이다.


2006년 중반 경기도 성남시 분당 신도시에 109㎡ 아파트를 4억원 대출을 포함, 7억원에 산 김아무개씨. 반년만에 집값이 1억원 이상 뛴 건 좋았는데 2008년부터 집값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다. 6억원 밑으로 떨어졌다가 2009년 잠깐 반등한 뒤 다시 5억원대로 떨어졌다. 이제는 매수세도 완전히 끊긴 상태다. 김씨가 그동안 낸 이자만 1억원. 월급 500만원을 받으면 원금과 이자 300만원을 내고 200만원으로 가계를 꾸려 나가야 한다.

3년 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109㎡ 아파트를 7억8천만원에 분양 받은 정아무개씨는 “처음에는 로또에 당첨된 줄 알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아파트는 최고 20% 이상 할인된 가격에 팔리고 있다. 10억5천만원이던 158㎡ 아파트는 9억원에 구입할 수 있다. 물론 이제 와서 후회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 없는 일이다. 그럴 듯한 모델 하우스만 보고 건설회사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평생 모은 돈을 쏟아부었던 자신의 욕망을 탓할 뿐이다.

PD수첩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매입자 4424세대의 등기부등본을 모두 떼서 이들의 거주 현황과 대출 규모 등을 전수조사했는데 놀랍게도 거주 비율은 11.4% 밖에 안 된다. 집 주인 10명 가운데 9명은 투기적 목적으로 구입했을 뿐 실제 거주는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1998년까지만 해도 이 비율은 55.8%였다. 근저당 설정 총액을 뽑아봤더니 지난해 기준으로 577억원, 58.8%가 대출을 받고 있다. 평균 3억4천만원씩이다.

시뮬레이션 결과 은마아파트의 경우 102㎡ 아파트의 경우 집값이 해마다 4%씩 올라도 3억원의 손실을 보게 된다. 오르지 않는다면 6억원의 손실을 보게 된다. 은마아파트는 사실상 재건축을 할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이다. 2006년 102㎡ 아파트를 8억원 대출을 끼고 11억2천만원에 샀다가 최근 9억원에 경매에 내놓은 경우도 있다. 이 사람은 이자부담과 집값 하락에 취득세와 등록세를 포함하면 5억원 가까이 손해를 본 셈이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시영아파트의 경우는 더욱 참담하다. 3년 전 56㎡ 아파트를 5억원 대출을 끼고 7억3천만원에 구입한 박아무개씨는 달마다 이자만 150만원을 내고 있다. 이 아파트를 재건축해서 중대형 평형으로 옮겨가려면 박씨는 최소 3억5천만원에서 많게는 9억원의 추가 부담금을 내야 한다. 이들은 재건축이 시작되는 순간 쫓겨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이자 부담에 허리가 휘는데 수억원의 빚을 더 떠안는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가락동 시영 아파트 김아무개씨는 42㎡ 아파트에 네 식구가 산다. 아침에 수돗물을 틀면 뻘건 녹물이 나오는 이 아파트는 한때 6억원 이상에 팔리곤 했지만 지금은 4억원대로 떨어졌고 그나마도 거래가 안 되는 상황이다. 109㎡로 옮겨가려면 2억5천만원의 추가 부담금을 내야 한다. 김씨는 “지금도 거래가 되지 않는데 이러다 깡통 아파트가 되는 건 아닌지 정말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개나리아파트 장아무개씨는 실제로 재건축 아파트에서 쫓겨난 경우다. 장씨는 달마다 350만원씩 대출 이자를 내고 있긴 하지만 어엿한 이 집의 주인이다. 그런데 2억5천만원의 추가 부담금을 내라는 재건축 조합의 요구를 거부했고 결국 강제 명도집행을 당했다. 달동네 철거민에게서나 벌어질 것 같은 일이 강남 한복판 재건축 아파트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김재영 PD는 “집을 사지 말고 차라리 전세에 살면서 저축을 하라”고 조언한다. 2억원을 빌려서 20년 만기 금리 6.5%로 원리금 균등분할 상환할 경우 달마다 갚아야 할 원리금은 149만1146원다. 20년 동안 3억6천만원을 갚아야 한다. 그런데 만약 140만원씩 4.8%의 복리 예금에 집어넣을 경우 9.3년만 지나면 비과세 상품의 경우 2억800만원을 모을 수 있다. 2억원을 빌려서 20년 동안 갚을 것인가 2억원을 9.3년만에 모을 것인가.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여기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만약 3억4천만원짜리 아파트를 은행 대출 2억원을 끼고 샀다고 가정해 보자.

첫 번째 시나리오. 집값이 2000~2008년처럼 폭등할 경우.
이 경우는 성공이다. 이럴 가능성이 높다면 빚을 내서라도 집을 미리 사둬야 한다.

두 번째 시나리오. 집값이 1991~2000년처럼 박스권을 맴돌 경우.
이 경우는 실패다. 집값 상승이 금융비용을 상쇄하지 못한다면 엄청난 기회비용을 치러야 한다. 결국 은행 배만 불려주는 짓이다. 9.3년이면 2억원을 저축할 수 있는데 왜 2억원을 빌려서 20년 동안 갚아야 하나. 어떤 집을 사고 싶으면 그 집에 전세로 들어가서 부지런히 저축을 해라. 그게 훨씬 더 빨리 그 집을 사는 방법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 만약 집값이 일본처럼 15년 장기 약세 국면으로 접어들 경우.
이 경우는 전세도 위험하다. 월세가 낫다. 월세 보증금은 가능한 크게 가져가고 월세는 작게 가져간다.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은 “2007년 이후 호가와 실거래가의 괴리가 심해지고 있는 게 바로 버블 붕괴의 전조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선 부소장은 “집값이 너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집값이 오른다고 언론에서 조장하거나 선동하더라도 매도 호가는 올라가지만 실거래가는 따라 올라가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매도 호가가 실거래가에 수렴하는 순간 급매물이 늘어나면서 버블 붕괴가 시작될 거라는 이야기다.

“언론사들이 분양광고를 매개로 해서 또 한편으로는 일반 가계를 재물로 삼아서 더 이상 부동산으로 투자수익을 올리기 힘든 상황이 됐는데도 금방 대박이 날 것처럼 환상을 불러일으켰지요. 반면 구조적으로 분양가 문제를 지적하는 등 비판적 접근은 지면에서 사라졌습니다. 일부 경제지들의 경우 기자들에게 부동산 광고 영업까지 하게 하는 실정인데 무슨 비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설령 있다 하더라도 결국 엿바꿔먹기 위한 협박용 기사일 뿐이죠.”

선대인 부소장은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선 부소장은 “많은 언론이 집값이 오른다는 이야기만 하지 실제로 집값이 떨어질 경우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면서 “명백히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객관적인 전문가인양 언론이 보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선 부소장은 “부동산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다 이런 사람들 뿐이니 기자들도 자연스럽게 이들에게 세뇌아닌 세뇌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돌아보면 부동산 불패 신화는 이미 2008년부터 급격히 허물어지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 초기 파격적인 규제 완화 덕분에 잠깐 살아나는 듯 했던 부동산 경기는 지난해부터 급속도로 꺼져가고 있다. 정부가 출구전략을 지연시키고 언론이 진실을 은폐·왜곡한 덕분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보수·경제지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을 풀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게 근본적인 해법이 되지 않는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하우스 푸어는 정부와 언론의 책임도 크지만 결국 그들의 책임이다. 10억짜리 아파트가 20억이 되고 30억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허황된 믿음이 하우스 푸어를 양산했다. 안타깝지만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정부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주류 언론에 대한 불신도 확산되고 있다. 규제는 이미 풀릴 대로 풀렸고 정부가 억지로 경기 부양을 하려고 해도 그 비싼 아파트를 받아줄 바보들이 이제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우스 푸어 / 김재영 지음 / 더팩트 펴냄 /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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