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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서가 말하는 위기의 본질.

Written by leejeonghwan

June 12, 2004

전병서 대우증권 리서치센터 본부장. 그는 지금까지 만났던 애널리스트 가운데 가장 논리 정연하고 명확한 사람이다. 한때 반도체 전문 애널리스트로 이름을 날렸던 그가 리서치센터를 총괄하는 본부장이 됐다. 3년 만에 그를 다시 만났다. 그가 말하는 시장의 논리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 위기냐 아니냐 논란이 많다. 기업들 투자 부진도 심각한 상황이다. 자본 파업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지표는 굉장히 좋지만 체감 경기는 그 어느 때 보다 어둡다. 최근 경제 상황을 어떻게 보나.

= 우리나라는 IMF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완전 경쟁에서 과점 경쟁 체제로 돌입했다. 반도체. 철강, 화학, 자동차 같은 수익 잘내는 사업들이 IMF 이전에 완전 경쟁을 하다가 한개 또는 두개만 살아남으면서 과점 경쟁의 혜택을 보고 있는 거다.

현대자동차가 최근 10년 동안 노사쟁의를 벌이면서 안망한 세계에서 유일한 회사다. 자동차 회사가 세개 있다가 하나 남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지금처럼 좋은 회사였느냐. 아니다. 반도체 회사가 세개 있다가 두개 없어지고 하나 남았다. 철강, 화학, 통신, 모두 마찬가지다. 한국통신이 1999년에 이익을 3천억원 냈는데 지금은 가입자수도 줄고 영업환경이 나빠진다고 하는데도 이익이 1조원을 넘는다. SK텔레콤이나 KTF도 마찬가지다. 통신회사 여섯개 있던 거 다 날아가고 두개 남았다.

지금까지는 과점 경쟁의 혜택을 봐왔던 셈인데 이제 문제는 그 다음 단계다. 기업들이 한국 사회에서 더이상 돈 벌어먹기 어려운 단계로 들어왔기 때문에 투자를 안하는 거다.

지금 투자를 하지 않으면 다음 정권 때는 심각한 성장률의 하락을 겪게 될 거다. 과점의 혜택을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이야기다.

– 실업 문제도 심각하다.

= 일자리 문제도 좀 뒤집어 볼 필요가 있다. 일자리가 없는게 아니라 기대 수준이 높아서 그렇다.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중국이나 다 4%대의 실업률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가 특히 심각해 보이는 건 상향 욕구가 크기 때문이다. 1만달러 수준의 일자리가 아니라 사람들이 1만5천달러나 2만달러 수준의 일자리를 찾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맨 파워다. 삼성이 세계 2위의 반도체 회사지만 5년 뒤에는 그림이 안 그려진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삼성전자 공장에서 반도체 생산하는 사람은 외국에서 공부하고온 박사 석사가 아니라 시골에서 올라온 10대, 20대 여성들이다. 이 사람들이 3교대 365일 일하고 있다. 앞으로 5년뒤 지금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들인데 이 사람들이 이런 조건을 감당하면서 일을 할 것인가. 기업들도 답답해 한다. 하이닉스 반도체가 왜 공장을 중국으로 옮기려고 하겠는가. 결국 같은 이유에서다.

1만5천달러나 2만달러 수준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정도 되는 수준의 일자리에는 맨 파워가 부족한 상황이다. 그래서 체험하는 불황이 더 심각한 거다.

– 투자 부진과 실업, 두가지로 좁혀서 볼 수 있겠다. 근본적인 원인이 뭐라고 보나.

=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것도 다시 보자. IMF 이후에 들어온 건 금융 자본이다. 금융자본을 위한 글로벌 스탠다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주주 이익의 극대화다. 주주가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하고 경영도 투명해야 하고 기업 지배구조도 합리적이어야 하고. 그런데 문제는 이 주주들이 기업과 영원히 함께 갈 수 있느냐. 절대 아니다.

웬만한 기업은 이미 외국인 투자자 지분 비율이 50에서 60, 70, 80%까지 간다. 얘들이 요구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건 결국 자기들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이다. 5년 뒤 시장을 내다 본 설비 투자나 한국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성 같은 건 아이 돈 케어다. 당연한 거 아니냐. 내가 5년 동안 갖고 있을 게 아닌데.

최근에도 SK텔레콤이 3세대 이동통신에 2천억인가 3천억인가 설비투자를 하겠다고 하니까 양놈들이 다 팔겠다고 해서 결국 취소했다. 이게 말이 되냐. 미래를 내다본 설비투자는 뒷전이고 당장 주주들의 이익을 생각하고 주가를 끌어올리는거다.

– 이게 우리나라에 좀더 특화된 현상인가.

= 우리나라가 제일 심하다. 외국인 지분이 너무 높다.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4조원씩 산다는데 이 돈이면 최첨단 반도체 라인을 하나 만들 수 있다. 이건 2년반 뒤에 이익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그걸로 주식을 사재낀다. 지금 기업들 이익은 상대적으로 다른 놈들이 죽어서 벌어들이는 이익이다. 그런데 그렇게 번 돈을 시장을 재편하는데 쓰는게 아니라 주주들의 이익을 챙기는데 쓰고 있다. 가만 내버려둬도 올라갈 주가를 올리는데 말이다.

– 최근 사회 공헌기금 논의는 어떻게 보나.

= 사회공헌기금 내려면 낼 수 있는데 이렇게 정부나 노동자가 내라고 해서 억지로 내는 건 절대 못하겠다는 분위기다. 니들이 나 돈버는데 보태준거 있냐. 사회공헌기금이라는게 콘센서스가 형성되고 문화로 자리잡아야 내는 거지. 이건 공헌이 아니라 도네이션 택스라는 거다. 다들 웬만하면 이민갈 생각을 하고 있고 이민 안가는 사람들도 생각은 노무현 정권이 40년 동안 가져온 시스템을 앞으로 2년만에 뒤집을 수 있을까. 글쎄요. 2년 지나면 원점으로 돌아갈 거다. 그런 이야기들을 한다. 2년만 더 참아보자 그런 분위기다. 그 사이에는 어떻게 하느냐. 일단 현금 싸 짊어지고 기다려보자는 거다.

– 양극화도 심각한 상황이다.

= 과잉 유동성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기업들 돈이 많아진 건 사실인데 많은 회사는 많고 없는 회사는 여전히 없다. 돈이 많은 회사는 자사주를 사들이고 주주들도 더 사고 주가가 계속 오른다. 없는 회사는 회사도 못사고 주주도 못사고. 주가는 양극화될 수밖에 없다.

– 자본 파업은 실재하는가. 대안은 뭔가.

= 유동성이 400조원을 넘어선다고 한다. 위기의 본질은 유동성은 넘쳐나는데 투자 대상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내수나 농수산, 중공업 모두 망하고 있다. 어디에도 투자할 데가 마땅치 않다.

과잉 유동성이 고수익을 찾아서 움직이기 때문에 계속 불균형을 낳는거다. 지금처럼 계속 돌아다니면 안되고. 해외로 가야 된다. 나가서 골프장을 사고 집을 사면 안되고 펀드로 가야 된다. 우리 아이디를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다. 미국도 그렇지만 달러가 나가서 돈을 벌어서 새끼를 쳐서 자기 나라로 송금을 한다. 이게 자기 나라로 모두 돌아가면 주식이든 채권이든 폭등을 한다.

프라이빗 에쿼티 펀드니 이런 거 빨리 이뤄지고 구조조정 기업들에 대해 투자를 하고 부동 자금의 사이즈를 줄이고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 베트남이든 중국이든 어디든 투자를 해야 한다. 이걸 빨리 하지 않으면 이런 많은 돈이 돌아다니면서 계속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의사 결정을 빨리해야 한다. 방향을 선명하게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눈치만 볼 거다. 마케팅이 필요하다. 몇명 이상 고용하면 청와대 불러서 대통령하고 밥먹게 해라. 이를테면 100억원 이상 사회공헌기금 내면 신문에 이름 내주고 공원에 공헌비도 세우고 차에다 스티커 붙여주고 정지선 같은 거 위반해도 봐줘라. 대우해주는 분위기가 돼야 된다. 그래야 서로가 도네이션 할 거 아니냐.

돈 100억씩 내면 기부 입학도 허용해줘라. 100억으로 못사는 집 애들 1천명이 공부할 수 있다. 한명이 물 흐려봐야 얼마나 하겠냐. 그러나 그 천재 1천명이 20년 뒤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하겠냐. 그렇게 알아서 하게 만들어야지 칼자루 대고 안하면 죽인다고 하면 누가 하겠느냐.

– 노무현은 친 시장적인가. 반 시장적인가.

= 좌파니 우파니 그런 거 관심없다. 이미 정부가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실제로 정치권에서 세계 경제의 흐름을 알고 있느냐. 결코 삼성이나 LG, 현대만큼 안된다.

차떼기 때문에 난리를 쳤는데 그 회사 매출액이 50조다. 광고비가 1조2천억이다. 200억 차떼기, 그거 일주일 광고비다. 그것 가지고 총수를 구속시키네 마네 하는데 주가는 어땠나. 끄덕없었다.

– 정부가 시장에 할 수 있는 역할이 거의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 정부가 마케팅과 IR을 하는 거다. 아일랜드를 봐라. 대통령이 나가서 돈을 끌어와야 한다. 한국에 들어와서 자본질을 하는게 아니라 제조업을 갖다 놔야 한다. 그걸 할 수 있는 대통령이 21세기 대통령이다. 그걸 못하고 안에서 돈내라 마라 하는 건 골목대장이다.

자본 시장의 펀드는 고용을 창출 못한다. 그게 아니라 FDI로 바로 들어와야 한다. 인텔이나 HP나 마이크로소프트가 공장과 R&D 센터를 짓게 만들어야 한다. DHL이 한국을 동아시아 물류 허브로 선택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걸 하느냐 마느냐가 한국 정부 관료가 해야 할 일이다.

북핵 문제 이야기할 때도 포츈 500대 기업 가운데 미국 기업만 20개를 휴전선 근처에다가 돈 한푼 받지 말고 기업당 100만평씩 주면 된다.

– 실업 문제의 대안은 있나.

=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해야 한다. 세금을 안받으면 적자재정이 된다. 고용을 5천명 이상 하면 1년동안 세금 면제해줘라. 삼성전자가 2만명 늘리면 세금 50% 깎아줘라. 경영진들 훈장도 주고. 지들 돈 벌려고 알아서 사람들 쓴다. 그렇게 갈 게 아니다. 실업률 못줄이면 절대 정권 안정 안된다.

– 재벌 개혁은 어떻게 보나.

=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기업들의 지배구조에 대한 위협이 있다. 삼성그룹도 이미 그린메일링의 위협이 들어와 있다. 독과점이니 뭐니 이야기하는 건 글로벌 시대에 말이 맞지 않다. 규모가 되는 놈만 살아남는다. 삼성전자 이익은 80%가 나가고 20%만 남는다. 개혁 하면 할수록 우리가 차지할 비중은 더 줄어든다. 노동만 대고 자본의 이득은 못보는 구조로 간다.

이미 한국의 메이저 기업은 외국인 지분이 너무 높다. 한국의 대주주와 연기금이 지분을 높이지 않으면 외국인이 나갈 때 상상을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시가총액이 400조, 외국인이 160조, 그 가운데 20%, 20조가 나간다고 치자. 그럼 환율이 폭등하고 물가도 오른다. 우리가 너무 과도하게 팔았고 방어를 못했다.

– 차등의결권은 어떻게 보나.

= 그걸 양놈들이 허용하겠나. 사실 이건희 회장의 지배구조 바꾸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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