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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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언젠가 누가 강우석 감독에게 물었다. 왜 당신은 ‘투캅스’ 같은 저질 코미디 영화만 만드는가. 강우석은 대답했다. ‘투캅스’ 같은 영화 한편 만들어서 성공하면 다른 영화 세편을 만들 돈이 남는다. 지금은 예술 영화 만들 때가 아니다. 일단 살아남아서 영화를 많이 만들고 우리나라 영화 산업을 살리고 봐야 한다.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벌써 10년전 일이다. 그때 강우석의 전략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강우석은 ‘투캅스’의 성공을 발판으로 영화 투자와 제작으로 돌아섰고 제법 큰 수익을 거둬들였다. 그의 회사 시네마서비스는 코스닥에 올라갔고 강우석의 주식 평가액은 2004년 1월, 200억원을 넘어섰다.

돌아보면, 그의 성공은 좀 배가 아프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화를 뭘 알아요? 기껏 ‘투캅스’ 같은 영화에나 열광하겠죠. 나는 그의 그런 건방진 태도가 싫었다. 나는 그가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강우석은 끝까지 부인하고 있지만 ‘투캅스’는 프랑스 영화 ‘마이 뉴 파트너’를 완벽하게 표절했다. 나는 강우석을 용서할 수 없었다. 창의성이 없는 건 그렇다 치고 표절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투캅스’ 하나로 우리나라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떠올랐다.

돌아보면 강우석의 영화는 모두 ‘투캅스’처럼 과장되고 억지스럽다. ‘공공의 적’도 그렇고 ‘실미도’도 그렇다. 나는 강우석 영화의 잇딴 흥행 기록이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왜 그의 영화는 이렇게 인기를 끄는가. 왜 우리는 그의 영화를 안볼 수 없는가. ‘실미도’는 아주 형편없는 영화는 아니지만, 안봐도 딱히 아쉽지 않을 영화다. 개봉 한달도 안돼서 500만명이나 기를 쓰고 봐야할 만큼 그렇게 훌륭한 영화는 결코 아니다.

‘실미도’의 놀라운 흥행을 보면서 나는 강우석과 시네마서비스를 비롯한 몇몇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가 대중매체와 영화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실미도’는 실화다. 나는 지난해 북파공작원들을 직접 인터뷰한적도 있다. http://leejeonghwan.com/cgi-bin/read.cgi?board=article&y_number=454&nnew=1

정말 영화 같은 사건이지만, 이를 영화로 만들 때 관건은 해석이다. 사건만으로 영화는 완성되지 않는다. ‘실미도’는 역사를 다루면서도 그 해석에 실패했다. 주제는 마냥 거창한데, 그 주제를 풀어내는 화법은 마치 ‘투캅스’처럼 서툴기만 하다. 장면 장면 감동은 남지만 영화를 총괄하는 메시지가 없다. 강우석은 지난 10년 동안 흥행의 기법만 어설프게 배운 모양이다. 그는 감독 보다는 영화 투자나 제작이 더 어울린다.

영화 마지막 부분, 수류탄이 터지기 직전 부대원들은 앞다투어 수류탄 위로 몸을 던진다.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서다. 친구가 물었다. 이 사람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았을까.

글쎄, 모두 이미 한번씩 죽은 사람들이었으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얼마든지 또 죽을 수 있다고 모든 미련을 버린 사람들이었으니까. ‘실미도’는 그렇게 아무런 희망도 없이 끝으로 치닫는 밑바닥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면 그건 아마 우리가 갈 곳 없는 이 사람들의 절망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사형 당하거나 평생 감옥에서 썩을 쓰레기 같은 놈들이니까, 그냥 아무렇게나 죽여버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손쉬운 편견은 끔찍하다. 그런 편견에 맞서는 절망과 분노는 기꺼이 무모한 죽음으로 치닫을만큼 뿌리가 깊다. ‘실미도’는 이 사람들의 절망과 분노를 제대로 짚어내야 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어설픈 구성은 집요하게 감정이입을 방해한다. ‘쉬리’나 ‘공동경비구역’의 무게감을 흉내내려는듯, 분단 현실을 서툴게 덧칠했지만 도무지 갈피를 못잡는다. 문제의식 없이 애매한 피해의식만 늘어놓으니 당연히 비장감도 떨어진다. 등장인물은 지극히 피상적인데다 낯설만큼 격앙되고 과장되기만 할뿐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감독의 시선도 중구난방이다.

흥행의 목적으로 역사를 차용했을 뿐, 해석 없는 역사 이야기는 무의미하다. 좋은 영화는 돈을 쏟아붓는다고 되는게 아니다. 흥행에 성공할지언정 ‘실미도’는 기억에 오래 남을 좋은 영화는 아니다. 억지 흥행은 ‘투캅스’ 시리즈만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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