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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환 교수 이메일 인터뷰.

Written by leejeonghwan

June 10, 2004

장상환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공식 인터뷰는 아니고 아이디어를 얻는 차원에서 간단히 몇가지를 물었다. 장 교수는 올해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체류하고 있다.

장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진보적 경제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한때 민주노동당 정책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가 1994년에 썼던 ‘한국 사회의 이해’는 한때 이적 표현물로 규정돼 논란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검찰의 고발로 재판까지 갔다가 결국 2002년 무죄 선고를 받았다.

– 위기다 아니다 논쟁이 한창입니다. 장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위기의 원인은 어떤 것입니까.

= 2000년 3분기부터 시작된 불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위기의 원인은 공급 사이드가 아니라 수요 사이드입니다. 소득 불평등 심화 확대로 인한 내수 특히 소비 수요의 회복 지연입니다. 김대중 정부는 부동산 투자 활성화와 가계 신용 확대로 민간 소비를 촉진하려 했지만 결국 이것이 더이상의 소비진작을 막는 발목 역할을 하게 된 것이지요.

– 유동성은 넘쳐나는데 마땅한 투자 대상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장 교수님은 최근 진보누리에 기고하신 글에서 노무현 정부의 투자 활성화 대책을 비판하셨습니다. 혹시 장 교수님이 생각하고 계시는 투자 활성화의 대안이나 방향이 있습니까.

= 경기회복이 불투명한 상황에서는 민간투자는 규제를 완화해도 쉽게 확대되지 않습니다. 적자 재정 지출을 확대해서라도 공공 투자를 확대하는 방법 뿐입니다. 중소기업 연구개발 지원이나 사회복지 분야에 대한 투자 확대, 영구임대 공공주택 건설 확대 등이 투자 확대 정책이 될 수 있습니다.

– 재벌 개혁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공식입장은 재벌해체입니다. 그러나 사회변화의 구체적인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재벌해체는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당장 다국적 자본의 침탈도 큰 걱정입니다. 장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재벌 개혁의 방향은 어떻습니까.

= 재벌해체의 실질적 내용은 재벌가족 소유 및 경영독점기업을 민주적 참여기업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민주적 참여기업의 핵심은 노동자들이 경영과 소유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민주적 참여기업은 재벌의 지배와 외국 자본의 대기업 지배를 동시에 막을 수 있고, 노동자들의 권한을 높여줌으로써 그들의 책임감도 높이는 장점이 있습니다.

– 말지는 최근 스웨덴식 사회 대타협 모델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고용없는 성장 시대에 재벌이 사회적 비용을 분담해야 하고 이를 끌어내기 위해 재벌의 지배구조를 부분적으로 용인해줄 수도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이찬근 교수나 대안연대회의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사회 대타협 모델에 대한 교수님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 현재 재벌들은 투자활성화를 명분으로 세금을 감면해 주기만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사회적 책임은 전혀 지지 않겠다는 것으로 이런 자세로는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찬근교수의 주장은 재벌들에게 면죄부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회적 대타협은 노동자들의 정치적 사회적 힘이 커져서 재벌들이 그 요구에 부응하지 없을 때가 되었을 때 가능할 것입니다.

– 최근에는 삼성그룹과 청와대가 구체적인 빅딜 논의를 벌이고 있다는 소문도 들립니다. 삼성그룹, 특히 삼성전자만 해도 이 회사는 올해 17조원 가까이 이익을 낼 전망입니다. 이 돈의 상당부분은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으로 주주들에게 빠져나갈 전망입니다. 삼성그룹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어떻게 기업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을까요.

= 기업이 사회에 기여하도록 하는 방법은 질좋은 재화와 서비스를 적절한 가격으로 제공하는 것과 함께 고용을 확대하거나 조세 납부 확대를 통해 사회복지 재정기반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전자를 위해서는 투자를 위한 재원으로서 사내유보를 확대해야 하고, 후자를 위해서는 법인세를 올려서 세금을 많이 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내 유보를 늘리기 위해서는 주주자본주의가 아니라 계속 고용과 고용 확대에 관심이 큰 노동자들이 소유와 경영에 참여하는 민주적 참여기업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 저는 최근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이 주주 자본주의와 자본의 종속에서 비롯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인 투자 없이 단기적인 주주의 이익을 챙기는 시스템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주주 자본주의와 자본의 종속을 넘어서는 해법이라면 뭐가 있을까요.

= 주주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민주적 참여기업으로 전환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외국자본에 대해서는 개별기업 주식소유구성이나 전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을 단계적으로 낮춰 예컨대 최종적으로는 10%선으로 제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초단기적인 대규모 이동에 대해서는 일시 유출입 정지 등 자본통제가 필요합니다.

– 민중의 지지기반을 딛고 집권에 성공한 노무현 정부는 결국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부로 확인됐습니다. 그러나 막상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려면 비판의 지점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전히 김대중 정부의 노선을 따르기만 할뿐 구체적인 정책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정부는 구체적인 로드맵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질문이 좀 애매합니다만 당장 노무현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겠습니까.

= 노무현정권은 공업화 초기 시대로 악화되고 있는 노동자 기본권을 철저히보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금지, 비정규직의 정규직으로의 전환 등을 실현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공공투자 확대를 통해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것입니다. 셋째, 사회보장 지출을 확대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 등이 될 것입니다.

– 어제 청주에 있는 삼성전기 협력회사를 다녀왔습니다. 몇달 전에 삼성에서 사업부서를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이 회사에도 이전하라는 요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노조의 반발이 심하자 회사측에서 어느날 새벽 설비를 몽땅 뜯어서 중국으로 옮겨버렸다고 합니다. 결국 이 회사는 하루 아침에 개점 휴업 상태가 됐습니다. 1천여명의 노동자들은 모두 일자리를 잃었고 이 회사는 코스닥 등록까지 지난달에 폐지됐습니다.

– 문제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대기업의 횡포도 횡포지만 제조업 공동화와 일자리 감소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은데 대안이나 정부의 대책이 뭐가 있을 수 있을까요. 앞서 장 교수님께서는 정부가 공공투자를 활성화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대기업에게 투자 동인을 제공할 방법은 없습니까.

= 저임금, 조세인하 등의 방법은 현재 다른 개도국의 임금이 크게 낮아서 임금으로는 경쟁이 되지 않기 때문에 별로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대기업의 투자 동인은 직접적인 규제완화를 하는 것 보다는 국립대학 통폐합과 교육 투자 등을 교육 개혁 을 통해 우수한 인적 자원을 양성하는 등 국내 대기업의 투자 기반을 강화함으로서 촉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공공교육 개선과 노령 대비 등 사회보장 확대는 노동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사회적 임금을 높임으로써 기업들이 직접 부담해야 하는 시장 임금을 덜 부담해도 좋은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기업경영에도 도움이 됩니다.

= 문제는 사회복지가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인데 북구의 경우에는 너무나 완벽한 사회보장이 근로의욕을 저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너무나 미흡한 사회복지가 기업의 임금 부담 증대, 사회적 불안 등으로 경영여건을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 또 문제는 이를테면 삼성전자가 해마다 수십조원씩 이익을 내면서도 정작 그 이익의 상당부분이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으로 다시 외국으로 빠져나간다는데 있습니다. 자재 구입 등에서 해외 의존 비율도 오히려 높아져만 가는 상황입니다. 저는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을 버려두고 중소기업이나 공공부분 투자만으로 경제를 활성화시키기란 어렵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드리면 삼성전자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삼성전자를 민주적 참여기업으로 바꾸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요.

= 삼성전자의 이익의 일정부분을 노동자소유기금을 적립하고 이를 노동자 주식 취득자금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십년 정도 계속하게 되면 노동자의 주식보유 부분이 지배적이 됩니다. 또한 삼성전자의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 관련 회사 대표 등을 참여하도록 제도화해서 삼성전자의 이익이 주식 소유자에게 지나치게 유리하게 배당되지 않도록 하여 사내 유보를 확대하고 중소기업이 지나치게 불리한 조건으로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건 질문이 아니라 그냥 제 견해입니다. 100%까지 늘어난 외국인 투자 한도를 다시 10%로 줄이는게 가능할까 걱정스럽습니다. 당위성은 있는데 현실적이지 못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로서는 아이디어가 안 떠오릅니다. 외국에도 이런 사례가 있습니까.

= 외국의 사례는 모르겠지만 논리적으로, 실증적으로 국내 금융기관의 투명성, 책임성 등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식 시장의 완전한 개방은 변동성만 높인다는 IMF 연구자들의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지금 외국자본에 의한 단기이익 극대화 요구가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노동자의 기본권도 억압받고 주식시장의 불안정도 심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점진적으로 외국인 주식투자허용 상한선을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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