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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연대회의 사람들을 만나다.

Written by leejeonghwan

June 6, 2004

이찬근 인천대학교 교수를 만났다. 오후 4시였는데 6시부터 수업이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시원시원하고 거침이 없다. 인터뷰에 두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5시 30분이 되자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학교 앞 중국 집으로 자리를 옮겨서도 그는 연신 독설을 퍼부어댔다. 이과두주를 연거푸 서너잔 걸치고 얼큰히 취한 이 교수는 수업을 일찍 끝내고 돌아올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결국 그날 술자리는 저녁 12시 넘어서까지 계속됐다.

지나치게 정치적인거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만큼 활동적인 교수도 드물다. 현장을 누비면서 운동가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는 교수가 결코 흔치는 않다. 물론 비판도 많이 받는다. 대안연대회의에서도 좀 과격한 주장을 하는 쪽이고 심지어 재벌 개혁과 관련해서는 “진보를 가장한 수구”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다. 이 교수의 주장은 지난번 기사에 많이 반영됐다.

참고 : 고용 못늘리겠으면 비용을 분담해라. (이정환닷컴)

그리고 몇주 뒤 프라자호텔 커피숍에서 장하준 캠브리지대학교 교수와 정승일 대안연대회의 정책위원을 만났다. 장 교수에게 ‘사다리 걷어차기’를 선물로 받았다. 영어로 쓴 책인데 최근 번역돼 출판됐다. 이 책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그날 들은 몇가지 흥미로운 논점들을 간단히 정리한다.

이야기를 하면서 과연 이 사람들이 좌파가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좀 위험한 주장들도 있다. 장 교수는 참여연대 장하성 교수의 사촌 동생인데 두 사람의 성향은 정반대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기꺼이 그를 천재라고 인정한다. 그는 대안연대회의의 핵심 브레인이다.

종업원 지주제 어떻게 볼 것인가.

(장하준) 기본적으로 좌우를 가르는 기준 가운데 하나가 집단 의지의 표현으로 정부의 개입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좌파가 정부가 개입하면 안된다고 한다. 이정우 실장 같은 사람이 제일 하고 싶어하는게 종업원 지주제다. 힘 없고 돈 없는 사람이 억울한 일 당하면 억울하면 출세하고 억울하면 돈 벌라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안당하게 만드는게 진보지, 그래 억울하면 우리도 돈 벌자고 하는게 종업원 지주제다. 이런게 진보 정당의 핵심이 될 경우에 그건 진보가 아니다.

(정승일) 민주노동당의 송태경 정책국장이 1990년대 초반부터 심혈을 기울여 만든게 이른바 종업원 사회주의다. 이게 민주노동당의 공식 강령이다. 민주노동당에는 그것 밖에 없다.

(장하준) 주주가 되고 자본가가 돼야 발언권을 행사한다고 하는 사람이 어떻게 진보냐. 자본주의 논리에 뼛속까지 물이 든거다.

(정승일) 종업원 지주제가 제일 잘된 데가 미국이다. 자기도 모르게 미국식 자본주의를 따라 가는 거다. 노동자의 경영 참여가 두가지 있다. 하나는 소액주주로 참여하는 거고 다른 하나는 소액주주와 무관하게 이해당사자로 참여할 수도 있다.

(정승일) 재벌 다 깬 다음에 종업원 지주제 하면 된다고 한다. 소버린 들어오는데 그건 나 몰라라다. 소버린 보고 일단 깨라고 하고 소버린이 다 해먹고 나중에 팔 때 종업원들이 살 건가.

(장하준) 주주 자본주의 다 좋은데 그거 하면서 노동자 편이라는 소리나 하지 말라고 해라.

박정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장하준) 우리나라는 어떻게 하다가 주주자본주의, 중앙은행 독립, 이런게 다 좌파야. 미치겠어. 우파라고 생각하고 그런 이야기하면 모르겠는데 좌파라면서 그런다니까. 정부 개입하지 말자는 것도 유럽에서는 다 우판데 우리나라는 좌파가 그래. 박정희 한거 반대로 해야 그게 좌파니까.

(장하준) 우리나라 개혁세력의 뿌리 자체가 반 박정희다. 박정희의 망령에서 아직 못 벗어났다. 박정희 때는 정당성의 문제였고 1990년대에는 정당성 문제는 해결됐는데 이게 정신분열증 같은게 온거다. 박정희 하던 대로 하면 안되니까 경제 계획도 없애고 뭣도 없애고 해서 다 흐트러 놨는데 아직도 정부 권력은 남아있단 말이지. 그러다 보니까 정부 권력의 부작용이 제일 많이 보이는게 민주화 됐던 1990년대라고.

(정승일) 가장 문제 중에 하나가 시장에 맡기면 경제 성장을 가져다 준다는데 그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압축성장해서 문제가 많다고 하는데 스웨덴도 사회민주당 정권이 들어와서 압축 성장했다. 일본도 압축성장했다.

(장하준) 압축 성장 하면 좋은 거다. 성장은 필요하고 성장기의 고통스러운 순간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은거다. 그게 만능은 아니지만 어느 시점까지 가야 대부분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수준이 된다. 박정희가 문제는 많지만 무조건 반 박정희로 가는 것도 문제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박정희가 경제성장을 했을리가 없다고 한다. 다 껍데기 성장이었다고 한다.

(정승일) 박정희 정책 중에 상당부분은 스웨덴이나 핀란드가 썼던 거다. 사회민주당 정권의 기본 정책이 생산시설의 국유화 아니냐. 엄청나게 정부가 개입한 거다. 시장경제의 기본을 상당 부분 부인하는 거다. 유럽은 국영기업이 굉장히 많다. 한국이나 일본이 제일 적다.

정부의 시장 개입은 바람직한가.

(정승일) 개혁 세력에게 질문하고 싶은게 혁신주도형 경제라는데 그 혁신은 누가 주도하는 거냐. 옛날에는 투입 주도형이라고 해서 생산 시설을 늘리고 노동 투입을 늘리면 될 거라고 했는데 실제로 안그랬다. 이거 거짓말이다. 세계적으로 연구개발비가 3% 넘어가는데가 없다. 우리나라는 이미 혁신 주도형이다.

(장하준) 강철규 같은 사람들은 정부가 개입하면 다 실패한다고 말한다. 시장주의도 독성이 강한 시장주의다. 재벌 비판하고 그런게 지배추구 이론이라고 뷰캐넌이니 하는 보수파들 가운데서도 좀 너무 한다고 하는 애들이 하는 건데, 어디서 그런 걸 잘못 배워와 가지고 말이야. 그러면서 또 좌파라고 할 거 아냐. 미치겠다니까.

(이정환) 아직도 정부 주도의 성장이 가능하다고 보는 건가. 시장주의자들은 정부의 개입이 성장을 가로막는다고 이야기한다.

(장하준) 가능한게 아니라 필요한 거다. 아전인수로 해석해서 그렇다. 재벌들은 도움은 받더라도 간섭받기 싫으니까 그런 시대 지났다고 하는 거고. 좌파들은 박정희랑 반대로 해야 하는 거니까 정부 주도 안된다고 하고.

(정승일) 민주노동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하자. 그 정부가 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뭐냐. 소버린이 들어왔는데 어떻게 할 거냐. SK는 어떻게 잡을 거냐. 좌파라는 건 자본을 통제하는 거 아니냐. 뭘로 통제할 거냐. 시장이 좌파 정권 편들겠다. 민주노동당은 정신 못차리고 있다. 우리사주 그거 하나 밖에 없다.

(정승일) 자유주의는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개입하지 말라는게 핵심이다. 인신이나 사장의 자유 같은 인권 문제는 자유주의의 일부분이다. 진중권 같은 사람들 조심해야 된다. 이거 같은거 아니다. 시장에 모든 걸 맡겨서 관치경제가 없어지면 그게 민주주읜줄 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말부터 모순이다. 자유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정승일) 참여연대 김상조 선생이 맨날 한국은행 통계 인용하면서 이자보상비율, 이자를 못내는 기업이 4분의 1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경제개혁이 덜 됐다고 한다. 그 기업들 죽이자는 이야기다. 왜 살려주냐 이거다. 모럴 헤저드라 이거다.

(장하준) 그거 정말 편한 포지션이다. 다 망하게 해야 된다고 하고 그럴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런 일이 안일어나면 개혁이 덜 됐다고 한다. 그야말로 19세기 자본주의다.

대안연대회의는 최근 조직 개편을 하고 조돈문 인하대학교 교수를 운영위원장으로 유철규 성공회대학교 교수를 정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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