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깨는 것만이 대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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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을 뺏자는게 아닙니다. 5%의 지분을 갖고 있으면 그만큼만 경영권을 행사하라 이겁니다.”

민주노동당 이재영 정책국장이 입을 열었다. 이 국장은 최근 재벌의 사회 대타협 논의와 관련, 지배구조 개선과 재벌 해체가 선결돼야 한다고 단호하게 주장했다. 대안연대회의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이른바 스웨덴식 사회 대타협 모델에 대한 정면 반박인 셈이다. 이 국장은 재벌 해체 문제에 대해서는 한치도 양보할 수 없다는 민주노동당의 입장을 거듭 재확인했다.

스웨덴식 사회 대타협 모델은 1938년 스웨덴의 사회민주당 정권이 발렌베리 그룹 창업주 일가의 지배권을 인정해주는 대가로 일자리 창출과 기술 투자에 앞장서고 최고 85%의 높은 소득세를 내는 등 사회적 공헌에 합의한 과정을 말한다. 이른바 살스세바텐 협약이라고도 한다.

월간 『말』은 6월호에서 삼성 그룹의 지배구조를 인정해주고 사회공헌기금 등 사회적 책임을 부과하도록 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기업이 직접 고용을 늘리지 못한다면 그에 걸맞은 사회적 비용을 분담하고 기업과 사회가 공존하는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참고 : 고용 못늘리겠으면 비용을 분담해라. (이정환닷컴)

이 국장은 금융 자본이 중심이 돼 지주회사 형태로 발전한 스웨덴의 발렌베리 그룹과 우리나라 재벌은 발생부터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 국장이 스웨덴 모델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재벌의 도덕성과 경영 능력 부재다. 과거 삼성자동차의 실패나 SK의 분식회계를 비롯한 총체적 경영 부실의 책임을 물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국장이 보기에 재벌의 지배 구조를 인정해주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자는 주장은 이런 비합리적 경영의 폐해를 묵인하자는 말 밖에 안된다.

이 국장은 “외국 자본에게 넘어가기 전에 재벌의 소유와 경영 독점을 해체하고 장기적으로는 국민주 형태로 소유 분산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국장은 “최근 매각 절차를 밟고 있는 대우종합기계의 경우도 우리사주조합을 통한 노동자 인수와 종업원 지주제로 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모두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라는 이야기다.

민주노동당의 이같은 완고한 입장에 대한 대안연대회의의 반응은 한마디로 안타깝다는 것이다.

정승일 대안연대회의 정책위원은 “외국계 자본이 호시탐탐 국내 기업들 경영권을 노리고 있는데 지금 재벌을 깨서 어쩌겠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정 정책위원은 “민주노동당이 주주 자본주의에 맞서기는커녕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안연대회의에서 활동하고 있는 장하준 캠브리지대학 교수도 민주노동당의 종업원 지주제 논의와 관련, “주주가 되고 자본가가 돼서 경영권을 행사하자는게 어떻게 어떻게 진보냐”고 반박했다. 장 교수는 “그건 억울하면 돈 벌라는 자본주의 논리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안연대회의 주장의 핵심은 “장기 전망을 갖고 적극적으로 고부가가치 투자를 하면서 초국적 자본에 맞설 수 있는 국내의 대안은 사실상 재벌뿐”이라는데 있다. 세계시장 공략을 위해 재벌의 이익과 지배권을 보장하는 대신 국내 경제의 안정을 위해 재벌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자는 논리다.

대안연대회의와 반대 입장에는 참여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상조 한성대학교 교수나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 등이 있다. 대안연대회의가 재벌의 투명성이 충분히 확보됐다고 보는 반면 이들은 아직 멀었다고 반박한다.

김기원 교수는 대안연대회의를 겨냥해 “진보를 가장한 수구”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기업과 총수를 구분해야 한다”며 “총수의 준범죄적 행위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기업의 돈을 내놓는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반박했다.

재벌 개혁의 방향은 합리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지 대안연대회의가 주장하는 것처럼 협박이나 구걸을 통해 비합리적인 투자를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김 교수는 지난해 SK사태를 거론하며 “재벌이 외국 자본에 넘어가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개혁을 통해 합리적인 지배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과 출자총액제한제도의 강화 등 재벌 개혁을 서두르고 있는 가운데 이를 둘러싼 논란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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