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쯔마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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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걸어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걷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것을 버리고 떠나야 할 수도 있고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을 맞닥뜨릴 수도 있다.


새해가 되면서 나는 잘 나가던 경제부 기자를 그만두고 어리버리한 사회부 기자로 제 2의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해야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바빠지게 됐다. 끝은 어디일까. 내다보아도 어딘가 까마득하기만 하다. 굳이 내가 선택한 일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지 않은가. 결국, 버티고 싸우고 살아남는 수밖에 없다.

사회부에 처음 들어오면 사쯔마와리(察巡)를 해야 한다. 사쯔마와리는 일본 말이다. 보통 줄여서 사쓰마리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하면 순찰 정도 되겠다. 자기 담당구역안의 경찰서와 병원, 법원, 검찰청 등을 돌면서 기사 거리를 찾는 일이다.

담당구역은 또 일본 말로 나와바리라고 부른다. 서울시에는 31개의 경찰서가 있는데 그 경찰서들을 각각 구역을 정해 나누어 맡는다. 이를테면 관악 경찰서를 중심으로 한 관악 라인이나 중부 경찰서를 중심으로 한 중부 라인 등이 있다. 내가 맡고 있는 라인은 동대문 라인이다. 여기에는 여섯개의 경찰서와 두개의 병원, 두개의 대학, 한개의 법원과 검찰청이 있다.

몇일 사이에 터득한 동대문 라인 사쯔마와리 순서는 이렇다. 동대문 경찰서 – 서울대 병원 – 북부 경찰서 – 도봉 경찰서 – 노원 경찰서 – 중랑 경찰서 – 북부 지원 – 북부 지청 – 경희대 병원 – 청량리 경찰서. 시계방향으로 돌 때도 있고 반시계 방향으로 돌 때도 있다. 한바퀴 도는데 아무리 빨라도 네시간이 걸린다. 제대로 하려면 저녁 9시부터 한번 돌고 새벽에 3시반부터 한번 더 돌아야 한다. 사쯔마와리를 돌고 저녁 12시에 한번 새벽 6시반에 한번, 그렇게 하루 6번 보고를 해야 한다.

그래서 사쯔마와리를 도는 기자들은 하루에 겨우 두세시간 밖에 못잔다. 반시계 방향으로 돌 때는 노원 경찰서 기자실, 시계 방향으로 돌 때는 청량리 경찰서 기자실에서 잔다. 사쯔마와리를 돌고 조금 늦게 들어가보면 여기저기 신문사에서 나온 기자들이 아무렇게나 쓰러져 자고 있다. 이렇게 경찰서에서 먹고 자면서 사쯔마와리를 하는 것을 하리꼬미(張りこみ)라고 한다. 역시 일본 말이고 잠복하다라는 뜻이다.

경찰서에 가면 형사계와 강력계, 교통과, 수사과를 차례로 들러 새로운 사건이 터지지 않았는가 살펴본다. 형사들은 기자들에게 친절하다. 책상을 뒤지거나 조서를 꺼내 봐도 별 말 않는다. 그런데 보통은 사건이 거의 없다. 사건이야 늘 넘쳐나지만 쓸만한 사건이 없다는 이야기다. 밤새 돌아다녀봐야 쓸만한 기사거리 하나 없을 때도 있다. 병원이나 법원도 마찬가지다. 병원에 가면 영안실과 응급실에 들러 기사거리를 찾는다. 법원에 가면 당직실에 들러 영장과 판결문을 찾아 읽는다. 역시 기사거리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사쯔마와리를 안할 수 없는 건, 결국 그런 잡동사니 가운데서 언젠가 큰 기사가 터져나오기 때문이다. 사쯔마와리를 하지 않으면 기사를 쓸 수 없다. 다른 신문에 뺏기지 않으려면 다른 신문보다 훨씬 더 열심히 사쯔마와리를 해야 한다. 소모적이지만 결국 기사는 그렇게 현장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어제는 편의점에서 새벽에 아르바이트하던 여학생이 강간 당한 사건이 있었다. 용역깡패 20명이 난동을 부린 사건도 있었다. 환각물질을 마신 10대 소년이 상습적으로 소매치기를 하다 붙잡힌 사건도 있었다. 채팅에서 꼬신 여자를 18시간동안 승용차에 태우고 다니면서 600만원을 뜯어낸 사건도 있었다. 하나같이 기사거리도 안되는 자질구레한 사건들이다. 마음은 무겁지만 기사거리가 되기에는 이제 너무 흔한 사건들이다. 현실은 참 딱딱하다. 못본척하고 싶어도 어디선가 사건은 일어난다. 다만 모르고 있을 뿐이다.

경찰서는 사회의 맨 아래 바닥이다. 나는 여기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무엇을 찾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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