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삼미 슈퍼스타즈를 생각함.

Written by leejeonghwan

January 24, 2004

요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책이 은근히 인기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정말 지지리도 야구를 못하는 구단이었다. 해태 타이거즈의 불성실한 팬이었던 나는 삼미 슈퍼스타즈를 꽤나 비웃었던 기억만 어렴풋이 남아있다. 도대체 만년 꼴찌 주제에 슈퍼스타즈라니, 이름까지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기록을 뒤져보니 삼미 슈퍼스타즈는 1982년 첫해, 깜짝 놀랄만한 기록을 무더기로 쏟아냈다. 18연패, 원정 최다 21연패, 최저승률 1할8푼8리. 시즌 최소 302득점, 최소 637안타, 한 팀에 최다 16연속 패, 1경기 최다 20실점, 최다 12 사구 허용, 최다 38 안타 허용, 사상 첫 노히트노런 패, 첫 단독 홈스틸 허용 등등. 삼미 슈퍼스타즈는 3년만인 1985년 청보 핀토스로 이름이 바뀌면서 짧지만 파란만장했던 역사를 접는다.

그런데 무려 22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누군가가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야구가 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였다”고 말한다면 꽤나 난감한 일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플레이를 펼치고 혜성처럼 사라져 간 구단”이란다. 다른 어디도 아니고 바로 그 삼미 슈퍼스타즈가.

이제 와서 돌아보면, 1980년대에 야구는 사람들에게 시대의 아픔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거의 유일한 오락이 아니었을까. 야구 말고 다른 무엇이 그때 사람들을 그만큼 열광하게 할 수 있었을까. 비웃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열심히 뛰었던 꼴찌 구단, 삼미 슈퍼스타즈를 기억하는 일은 그래서 어딘가 쓸쓸하다.

마침 삼미 슈퍼스타즈의 패전 전문 투수 감사용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 패전 전문 투수라니, 참.

다 진 게임에만 나오는 투수는 무슨 생각으로 공을 던질까.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모두가 포기한 게임을 용케 살려놓았을 때 그는 얼마나 자랑스럽고 기뻤을까.

삼미특수강 직원었던 감사용은 지금까지 전무후무한 아마추어 출신 프로야구 선수다. 3년 동안 1승 1무 16패 1세이브를 기록했다고 한다. 싸이더스에서 만드는 이 영화의 제목은 ‘슈퍼스타 감사용’이다. 생각 없는 코미디 영화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해의 프로야구를 생각하면, 나는 도무지 삼미 슈퍼스타즈를 잊을 수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야구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것이었고, 또 그런 이유로 야구를 꽤나 좋아하는 나로서는 도무지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그를 쓰기 시작한 지금은 2001년. 세상은 그 해의 프로야구에서 19년이나 멀어졌고, 이젠 그 누구도 삼미 슈퍼스타즈를 기억하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플레이를 펼치고 혜성처럼 사라져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회원일 것이다. 삼미로서는 당연한 일이고 나로서는 감히 가문의 영광이라 말할 수 있겠다.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가운데.


감사용 보다는 한참 뒤 일이지만, 나는 해태 타이거즈의 4번 타자 외야수 박재용이 좋았다. 청각 장애인인 박재용은 사람의 입모양을 보고 말을 알아듣는다.

언젠가 박재용이 심판하고 싸우는 장면이 티비 카메라에 잡혔다. 심판이 삿대질을 하면서 소리를 질러대고 심판의 말을 못알아듣는 박재용은 멍한 표정으로 포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오랫동안 그의 그 표정은 기억에 남았다.

나는 또 언젠가 그가 9회말 동점에서 뽑아낸 정말 영화 같았던 역전 만루홈런을 잊을 수 없다. 청각 장애인인 그가 프로야구 선수가 되기까지, 그리고 4번 타자가 되기까지 겪었을 고독과 노력을 생각하면 새롭게 힘이 솟곤 했다. 아무리 다시 생각해도 그때 그 만루홈런은 정말 짜릿했다.

.

www.leejeonghwan.com

Related Articles

Related

“당신들은 전혀 래디컬하지 않다.”

대학 거부 선언한 김예슬이 한국 진보에게 던지는 뼈 아픈 충고.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지난달 10일 한 대학생이 학교를 그만뒀다. 그것만으로는 특별한 일도 아니지만 그가 던진 메시지는 충격적이었다. 그는 국가와 대학과 시장을 적으로 규정했다. "일단 대학은 졸업하라"는 주변의 충고를 거부하고 자퇴를 선택한 그는 "작지만 균열이 시작됐다"며 "그래, 누가 더 강한지 두고 보자"고 선전포고까지 했다. 한 젊은이의 감상과 치기로 보기에 그 울림은 컸다....

쌍용자동차, 사람 자르는 것으로 위기 넘어설 수 있나.

쌍용자동차가 지난 8일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전체 인력 7179명 가운데 2646명을 정리해고한다는 계획인데 당연히 노동조합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쌍용차 노조는 13~14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한 결과 84%의 찬성으로 가결, 만약 정리해고가 시작되면 총파업으로 맞서겠다는 입장이다. 쌍용차 사태는 한치앞도 내다 보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주요 언론이 보도한 바와 같이 쌍용차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따르면 다음달 6일 법원에 제출될 실사...

궤변으로 점철된 공병호의 장하준 비판.

국내 대표적인 자유주의자로 꼽히는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이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가 지난해 10월 출간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공 소장은 월간조선 2월호에 기고한 에서 "생각이 가난하면 삶이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며 장 교수의 주장을 반박했다. 장 교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은 애초에 동등한 경쟁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선진국들은 보호무역으로 성장했으면서 이제 와서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Join

Subscribe For Updates.

이정환닷컴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

www.leejeonghw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