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2025년 세계 3위 경제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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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의 쌍둥이 빌딩만 무너뜨린 게 아니다. 테러는 꿋꿋하게 성장가도를 달려왔던 인도의 소프트웨어 산업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얼굴이 까만 인도 사람들은 언뜻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뜩이나 터번까지 둘러멘 덩치 큰 시크교도들은 테러범으로 오해 받기 딱 알맞다. 갑자기 공항마다 검문 검색이 까다로워졌고 미국 대사관은 비자 발급을 질질 끌었다.

문제는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미국 출장이 잇따라 취소됐고 소프트웨어 수출도 큰 타격을 입었다. 약속 잘 지키기로 소문난 인도 기업들은 신용에 큰 금이 갔다. 그 사이를 못참고 몇몇 미국 기업들은 거래 업체를 바꾸고 있다. 새로운 경쟁자들, 중국과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필리핀, 파키스탄이 잽싸게 그 틈을 파고 들고 있다.

인도 소프트웨어 기업 협회, 나스콤은 몇달 전까지만 해도 올해 성장률을 지난해보다 40% 가량 낮춰잡고 있었는데 이제는 훨씬 더 낮춰 잡아야 하게 됐다. 나스콤이 지난 11월7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2분기 매출은 890억루피로 지난 1분기 보다 146억루피, 19.6% 늘어나는데 그쳤다. 성장성이 이미 크게 꺾였다.

정작 문제는 테러 이후다. 많은 기업들이 9월부터 한달 가까이 일손을 놓은데다 그 뒤로도 일감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아직 집계는 안됐지만 3분기 실적은 훨씬 참담할 것이다.

그렇다고 애꿎은 테러 탓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쯤해서 인도의 성장성의 한계를 명확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인도 소프트웨어 산업은 수출이 70.3%, 그 가운데 62.4%가 미국에 집중돼 있다. 덩치는 부쩍 커졌지만 아직까지 자생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미국이 마음을 바꾸면 당장이라도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른 나라들이 정보기술 거품이 꺼지면서 고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인도는 한발 늦게 불황을 맞은 셈이다.

힘겨운 불황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중국과 동남아시아 나라들이 악착 같이 덤벼들고 있다. 값싼 인건비는 더이상 경쟁력이 되지 못한다. 언제까지나 미국만 쳐다보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인도 소프트웨어 산업의 위기는 자못 심각하다.

“인도는 지금 허황된 신화에 빠져있다.” 독설을 퍼붓기로 유명한 인도 하드웨어 기업 협회 비니 메타 회장의 이야기다. “언젠까지나 값싼 인건비를 내세워 싸구려 하청이나 받아 올 것인가. 자생력 없는 소프트웨어 산업, 하드웨어 산업의 뒷받침 없는 소프트웨어 산업은 한계가 분명하다.”

뜯어보면 인도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기형적으로 성장해왔다. 나스콤이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매출의 70% 이상이 기술력 없는 싸구려 용역에서 나온다. 25개 기업이 전체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타타 컨설턴시 서비스나 인포시스 같은 큰 기업들은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많은 작은 기업들은 아직도 값싼 인건비 말고는 마땅히 내세울 만한 경쟁력이 없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성장가도를 달려왔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더이상 이들의 앞날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인도의 한계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무엇보다도 내수시장이 취약한 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많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인도에 있는 컴퓨터를 모두 모아봐야 630만대 밖에 안된다. 겨우 1천명에 6대 꼴인데 세계 평균 26대, 미국의 500대에는 아직도 한참 모자란다. 인도 사람들에게 컴퓨터는 아직도 엄청나게 비싼 물건이다. 높은 성장성을 떠받쳐 주기에는 아직까지 시장이 너무 좁다.

그럭저럭 ‘사람 장사’는 먹혀 들었지만 제품을 만들어 팔자니 사줄 데가 마땅치 않다. 워낙 불법복제가 판을 치는데다 마케팅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에 내수 시장을 발판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전략은 도무지 먹혀들지 않는다. 인도 사람들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를 내놓기 훨씬 전부터 윈도우와 비슷한 운영체제를 만들어 냈지만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고 일찌감치 사라져 버렸다. 결국 그렇게 소프트웨어를 직접 기획해서 개발하는 회사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너도나도 손쉬운 하청작업에 매달리고 있는 형편이다. 조금이라도 더 싸게 파는 나라가 나타나면 언제라도 뺏길 수 있는 일감들이다.

하드웨어 기반 시설도 형편 없다. 초고속 통신망이라고 곳곳에 깔려있기는 하지만 한시간에 1.5달러나 받으면서도 속도는 우리나라의 전화 모뎀 수준 밖에 안된다. 불평없이 진득하게 앉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신기할 따름이다. 인도 정부가 지금처럼 하드웨어 투자를 아낀다면 인도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머지않아 고립될 것이 뻔하다.

인력 문제도 심각하다. 인도 사람들은 값싼 인건비 못지 않게 우수 인력이 많다고 자랑하지만 우수 인력의 대부분은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미국으로 빠져 나갔다. 많은 기업들은 아직도 쓸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흔히 잘못 알려져 있지만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13만명의 소프트웨어 전문 인력이 모두 우수 인력은 아니다. 이삼성인디아의 신진범 소장은 우리나라에 흘러 들어오는 인도 사람들은 인도에서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질 낮은 인력의 대량생산은 인도의 성장성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아직도 기회는 남아있다. “인도의 인건비는 아직도 한국의 3분의 1, 미국의 5분의 1 밖에 안된다. 인도는 어떻게든 이 강점을 살려 성장의 발판을 탄탄히 다져야 한다. 수익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 나스콤의 필로츠 반드레발라 회장의 이야기다. 나스콤은 여전히 상황을 낙관하고 있다.

압텍의 프라모드 케라 사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소프트웨어 아웃소싱을 단순한 비용 절감의 의미로 받아들이지 마라. 아웃소싱은 핵심사업에 조직의 역량을 집중시켜 비즈니스의 가치를 증가시키는 전략이다. 오랜 경험을 쌓은 인도 기업들은 당신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있다. 우리는 최고의 동반자다.”

인도의 소프트웨어 산업의 성장성은 아직도 유효할까. 둘러보면 몇가지 긍정적인 신호들이 엿보인다.

파견 근무보다 원격 근무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첫번째 신호다. 미국에 건너 가서 하는 파견 근무는 이익률이 20% 밖에 안되지만 인도에서 하는 원격 근무는 50%를 넘어선다. 원격 근무는 지난 91년 5%에서 올해는 44%까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수익성이 계속 나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인도 기업들이 미국의 그늘을 벗어나 독자적인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두번째 신호는 유럽 시장에서 온다. 미국 못지 않게 유럽도 인도의 값싸고 우수한 노동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나스콤의 전망에 따르면 2005년 무렵 유럽 쪽 수출 비율은 30%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경쟁이 치열해지는만큼 시장을 넓혀 돌파구를 찾겠다는 전략이다. 유럽 쪽을 잘 뚫는다면 한동안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세번째 신호는 수익성 높은 사업으로 방향을 돌리는 기업들이다. 타타컨설턴시서비스 같은 기업들은 일찌감치 컨설팅 쪽으로 돌아서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독자적으로 제품을 개발·판매하려는 기업도 부쩍 늘어났다. 소프트웨어 기술을 딛고 하드웨어 산업도 조금씩 기지개를 펴고 있다. 인도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이제 ‘사람 장사’에서 서비스와 제품 장사로 돌아서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인도는 해마다 평균 6%의 경제 성장률을 지켜왔다. 호들갑스런 인도 사람들은 2025년이면 인도가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 될 수 있다고 큰 소리친다. 물론 그 원동력은 소프트웨어 산업이 될 것이다. 인도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이제 변화에 직면해있다. 여기서 살아남느냐 도태하느냐는 주어진 몇가지 과제들을 얼마나 멋지게 풀어내느냐에 달려있다.

글·사진 뉴델리·뭄바이·방갈로르 = 이정환 기자 jlee@dot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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