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강국 인도의 경쟁력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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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실기만큼이나 이론수업에도 많은 시간을 들입니다.”
“그건 컴퓨터가 많지 않기 때문이겠죠.”

첫번째는 뭄바이에서 만난 컴퓨터 학원 압텍(Aptech)의 프라모드 케라 사장의 자랑 섞인 이야기, 두번째는 방갈로르에서 만난 한국인 유학생 김철수씨의 김빼는 이야기다. 성공회대학교 3학년인 김씨는 1년 과정으로 압텍에서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있다.

김씨가 보기에 압텍의 교육과정은 우리나라보다 크게 뛰어난 부분은 없다. 그렇지만 분명히 다르긴 다르다. “결과만 놓고 보는 우리나라와 달리 이 나라 사람들은 과정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후딱 만들어놓고 나중에 에러 잡느라고 시간을 다 허비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꼼꼼하게 계획을 짜고 효율적으로 일을 나누어 맡습니다. 나중에 보면 여기가 훨씬 더 빠르고 깔끔하죠.”

김씨의 말처럼, 인도의 경쟁력은 오히려 컴퓨터가 부족하기 때문에 길러진 ‘습관’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만들었다 뜯어고치기를 되풀이하는 우리나라 프로그래머들과 달리, 인도인들은 컴퓨터를 쓸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머릿속에 완벽한 밑그림을 그려놓아야만 한다. 김씨는 인도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새삼 인도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쟁력의 원천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만큼 효율적으로 협업과 분업을 이루지 못한다. 인도의 소프트웨어 산업을 이끄는 힘은 잘 짜여진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시스템이 제대로 짜여 있으면 예측이 가능하다. 일을 역할에 따라 나누어 맡고, 계획에 맞춰 진행할 수 있다. 우리는 소비자가 바라는 시간에 정확히 제품을 내놓는다.” 인도의 대표적 소프트웨어 서비스 회사 인포시스의 나라야마 머시 사장이 한 말이다.

인도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쟁력은 값싼 인건비에서 비롯된 것이 틀림없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인도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처음에는 컴퓨터 몇대를 들여놓고 단순한 데이터 입력 따위를 대신해주는 것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나라에서도 기술력과 효율성에서 이들을 따라갈 만한 회사가 그리 많지 않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카네기 멜론 소프트웨어 연구소가 매기는 소프트웨어 개발능력 등급에서 최고 등급을 받은 회사는 23개다. 그 가운데 15개 회사가 인포시스나 타타 컨설턴시 서비스, 위프로 같은 인도 회사들이다.

인포시스는 지난해 18만3천장의 이력서를 받아, 그 가운데 3천명을 뽑았다. 신입사원들은 14주 동안 호된 훈련을 거치면서 전문가로 거듭나게 된다. 인포시스 신입사원의 첫월급은 500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정도면 인도에서는 최고 수준이다. 10억이 넘는 인구 가운데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인 데 취직했고 최고의 월급을 받으니, 일하는 분위기도 신날 수밖에 없다.

방갈로르 외곽의 일렉트로닉 시티에 자리잡은 인포시스는 자부심과 활력이 넘쳐흐르는 젊은 회사였다. “이 사업은 결국 사람 장사다. 우리는 최고 수준의 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우리만큼 효율적으로 인력을 운용하는 소프트웨어 회사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 머시 사장의 자부심에 걸맞게 인포시스는 탄탄한 성장가도를 달려왔다. 인포시스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2억6780만달러, 순이익은 8050만달러로 지난해보다 각각 50%와 35% 늘어났다. 순이익률은 30%를 훌쩍 넘어섰다.

소프트웨어 강국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인도 정부는 일찌감치 지난 1986년 소프트웨어 산업의 잠재력을 알아채고, 적극적이면서 파격적인 육성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소프트웨어에 대해 무관세 수입을 허용했고, 소프트웨어 수출에 대한 소득세를 100% 면제해주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소프트웨어 기술단지(STP)를 설립했고, 이것이 제 역할을 해줬다. 이곳에 입주한 기업들은 모든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5년 동안 소득세도 면제받는다. 이곳에서는 외국인이 100% 지분을 소유하는 것도 허용된다.

값싸고 우수한 인력을 마음껏 끌어다 쓸 수 있는데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그래서 외국 기업들이 물밀듯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IBM, 시스코, TI, 노텔,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미국 기업들이 앞다퉈 인도에 소프트웨어 개발센터를 설립했고, 그 결과 자연스럽게 기술이전이 이뤄졌다. 인포시스나 타타 컨설턴시 서비스, 위프로 같은 회사들은 그 틈새를 파고들어 소프트웨어 서비스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

“말씀만 하세요, 뭐든지 시키는 대로 만들어드립니다.” 아무런 기술력도 창의력도 없는 인도가 값싼 인건비를 내세워 뛰어들 수 있었던 유일한 시장이었다.

시작은 초라했지만 성장은 눈부셨다. 운이 따랐던지 실리콘밸리의 인력난과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미국인 한사람 몫의 돈을 주고 10명을 고용할 수 있는데다 12시간의 시차 덕분에 미국이 잠든 시간까지 밤새도록 작업을 굴릴 수 있다는 점도 놓칠 수 없는 인도의 매력이었다. 게다가 다른 나라들과 달리 영어가 공용어라 말도 잘 통한다. 마침 Y2K(2000년 인식오류) 문제가 불거지면서 일감이 부쩍 늘어났다. 인도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착실하게 야금야금 노하우를 쌓아나갔다.

미국 기업들은 이제 인도와 손을 잡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인포시스 같은 회사들은 단순하고 따분한 하청작업을 넘어, 제품 기획과 개발에까지 직접 참여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면 제일 먼저 인도에 들고 와서 시험해본다.

성장성은 아직도 남아 있다. 미국 경제가 움츠려들면서 이곳 분위기도 조금 가라앉았지만, 방갈로르에는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인도소 프트웨어기업협회는 2008년 무렵이면 시장이 850달러 규모까지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57억달러에서 15배나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좀처럼 믿기 어려운 전망이다. 이런 전망을 뒷받침하듯 지난 몇년 동안 3천개가 넘는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새로 만들어졌다. 직접 미국에 줄을 댄 회사는 1천여개, 나머지 회사들은 큰 회사에서 쪼개져 나오는 작은 일거리들을 받아다가 생계를 꾸려나간다.

소프트웨어 서비스는 언뜻 초라해 보이지만 그래도 굉장히 많이 남는 장사다. “다들 그럭저럭 순이익률이 20%를 넘는다. 우리는 지금 3500만달러 매출에 700만달러 정도의 수익을 낼 수 있는 회사를 찾고 있다.” 소프트웨어 회사에 투자하는 퍼스트 벤처캐피털 인디아의 가우라브 달미아 사장의 이야기다. 이만한 회사가 증권거래소에 올라가면 5천만달러는 쳐준다고 한다. 인도의 벤처캐피털은 이런 회사들에 투자해 보통 30% 정도의 수익을 올린다. 대박을 터뜨리는 건 아니지만 큰 위험 없이 제법 짭짤한 재미를 볼 수는 있다. 인도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세계 벤처캐피털의 투자는 이제 시작에 지나지 않지만, 앞으로 봇물을 이룰 태세다.

정보기술 혁명에의 희망은 한국에서는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인도에서는 아직도 기세가 드높다. 신문을 펼치면 온통 정보기술 기업들의 광고로 도배돼 있다. 인도의 정보기술 혁명, 그 성공에 대한 열망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뭄바이·방갈로르=글·사진 이정환 기자 jlee@dot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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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소프트웨어산업 매출현황 (단위:백만달러)
/내수/수출
1995년/350/485
1996년/490/734
1997년/670/1083
1998년/950/1750
1999년/1250/2650
2000년/170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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