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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원 23명, 어용노조가 만들어낸 임금 동결 합의.

Written by leejeonghwan

May 26, 2004

지난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내고도 임금을 동결한 포스코가 노동자들의 반발로 진통을 겪고 있다. 발전적인 노사 합의라는 안팎의 호들갑이 무색하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임금 동결을 계기로 대표성 없는 노조와 일방적인 노사 관계의 문제가 표면화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 12일 노경협의회를 갖고 올해 임금 동결에 전격 합의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포스코 노경협의회는 “최근 사회 현실을 감안,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및 중소기업 등과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데 적극 동참하기 위해 임금 동결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노경협의회가 노동자들의 대표성을 띠지 못하는데다 정작 포스코 노조는 조합원이 23명 밖에 안된다는데 있다. 포스코 노조는 지난 1992년 해체됐다가 1994년 활동을 재개했으나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다. 포스코의 전체 직원 수는 1만9천여명, 노조 가입률은 0.12%밖에 안된다. 포스코는 노경협의회를 구성, 노동자위원 대표를 뽑고 대부분의 노사 합의 사항을 이곳에서 협의, 처리하고 있다. 노경협의회는 1997년 이후 세차례 임금 동결을 결정한 바 있고 노조는 그 과정에서 아무런 이의 제기도 하지 못했다.

이번 동결을 계기로 노조 정상화 움직임이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포스코 노조정상화추진위원회(노정추)는 임금 동결 합의 다음날 성명을 발표하고 “임금 협상 과정에서 현장 노동자들은 철저히 배제됐다”면서 “노동자들의 합의 없는 임금 동결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노정추는 포스코 이구택 회장과 강창오 사장, 최종태 노무담당 이사, 성대영 노조위원장, 백인규 노경협의회 노동자 대표 등을 ‘임금동결 5적’으로 명명했다.

노정추는 “노조 가입운동을 벌여 어용노조의 집행부를 해임하고 민주노조를 출범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건기 노정추 홍보부장에 따르면 23명의 노조원 가운데 5명이 노정추 회원이거나 노정추 활동에 동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18명은 회사측 입장을 대변하는 이른바 ‘어용 조합원’이라는 주장이다. 노조위원장을 포함한 임원의 불신임에 필요한 정족수는 3분의 2 이상, 따라서 노조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18명의 두배인 36명 이상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결국 현재 노정추 지지 노조원 5명에 추가로 31명의 신규 노조 가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노정추의 주장에 따르면 당초 노조 가입 운동을 벌이기로 했던 지난 20일, 신분이 드러난 노정추 회원 3명에게 군산과 서울 등으로 예정에 없던 출장 명령이 떨어졌다. 노정추는 집회를 무산시키려는 회사측의 조직적인 음모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정추는 또 25일에도 회사측에서 30명의 경비들을 동원해 노조 가입 운동을 방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영태 노정추 위원장은 “노동자들이 분노하는 것은 임금 동결 자체보다는 동결되기까지의 과정이 밀실에서 이뤄졌고 현장노동자들을 철저히 배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장 위원장은 “노경협의회가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겠다는 것은 애시당초 기대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방적으로 임금 동결을 체결한 뒤에 노경협의회 대표들은 항의 전화를 피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꺼놓고 피해 다닌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노정추의 노조 가입 운동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장 위원장은 “지난 1990년 회사의 강력한 노조 탄압과 탈퇴 압력 이후 노동자들이 노조 가입을 꺼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1990년 이후 신입 사원 충원이 거의 없었던 것도 이런 상황을 거들었다. 결국 노조 집행부를 불신임하는데 필요한 최소 31명의 추가 가입마저도 현재로서는 어려운 상황이다. 노정추 회원은 현재 해고자와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해 20여명이다. 이들은 공식적인 활동은커녕 심지어 노정추 가입 사실조차도 숨기고 있다. 그만큼 회사의 압력이 심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포스코 홍보팀의 김진원 과장은 “노경협의회가 지금까지 잘 이끌어 왔지만 최근 임금 동결과 관련, 직원들 불만이 있는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김 과장은 노정추의 최근 활동에 대해서는 “처음 듣는 일”이라고 답변했다.

포스코는 지난해 14조3593억원 매출에 1조9805억원 순이익을 올리는 등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올해 들어서도 1분기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4% 늘어난 4조2850억원, 영업이익은 30.2% 늘어난 1조80억원을 기록했다.

매일경제신문을 비롯한 경제신문들은 일제히 포스코의 임금 동결 합의 기사를 비중있게 다루고 “포스코가 기본 임금을 동결함으로써 다른 사업장의 노사협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바람잡이에 나섰다. 특히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임금 동결, 적극적으로 고려할 때”라고 주장했다. 전경련과 대한상의 등 경제 5단체 부회장단은 17일 산업자원부 조찬간담회에서 “최근 포스코 등 대기업의 임금 동결 발표를 계기로 대기업 임금 동결 분위기를 확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포스코는 이번 임금 동결을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의 임금 격차를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노정추는 임금을 하향 평준화하려는 의도라고 반발하고 있다. 노정추는 24일 발간한 소식지 ‘철의 노동자’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이들 주장의 핵심이 임금 동결 반대가 아니라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임금 동결을 한다 해도 노동자가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해야한다. 그것이 노동자의 자존심이고 투쟁성이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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