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신자유주의 관료들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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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2기를 맞는 노무현 정부의 개혁 정책 방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이 대대적인 경제 개혁을 선언하고 나서면서 재정경제부 등 그동안 신자유주의 기조의 정책을 고집해왔던 경제 관료들과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두문불출했던 지난 2개월 동안 노 대통령이 경제 공부를 했다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청와대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케인즈와 하이에크, 리스트, 슘페터를 주로 공부했다. 케인즈가 시장의 실패와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반면, 하이에크는 시장경제와 법치원칙을 신봉한 대표적인 자유주의 이론가다. 리스트는 관세와 보호무역을 강조했고 슘페터는 기술혁신을 주창했다. 짧은 시간 동안 꽤나 복잡하고 다양한 커리큘럼을 소화한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 다음날 국민 담화에서 노 대통령의 첫마디는 역시 ‘경제’였다. 이날 노 대통령이 표방한 이른바 ‘혁신주도형 경제’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공공 부문과 시장이 함께 성장해야 하고 이를 위해 시장을 개혁하고 경제의 발목을 잡는 부조리를 말끔히 정리하겠다는 것. 그렇게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을 만들어야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논리다.

노 대통령은 “원칙을 지켜내지 못하고 기본을 바로 세우지 못하면 우리 경제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그 원칙과 기본이 무엇인가 노 대통령은 지난 1년 동안 보여주지 못했고 이날도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지금 무엇인가를 ‘혁신’하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와 사회적 합의, 그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구조적인 한계를 지적한다. 신자유주의 논리에 젖어있는 경제 관료들이 정책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이상 일련의 개혁 정책들이 정책 입안 과정에서부터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경제 부처 관료가 타 부처를 식민화하고 있다. 복지나 노동, 교육 문제가 모두 예산 문제로 귀결되고 결국 경제 문제로 치환된다. 관료 엘리트의 충원이나 형성과정이 미국의 일방적인 영향에 놓여 있었고 개발 독재 시대부터 착근돼 왔기 때문에 체질개선은 정권의 문제를 넘어선다.”

조돈문 가톨릭대학교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개혁 정책이 결국 경제 관료들에게 설득 당해 좌절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보고 있다. 총선 이후 열린우리당이 과반이상의 의석을 확보하기는 했지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다.

“열린우리당에서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의원들은 경제 전문가가 아니다. 노무현 정부는 그들의 불만을 설득시켜 지금 모델로 계속 갈 거다. 경제 브레인에 의해 설득 당하는 구도로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갈 거다. 김대중 정권 5년 동안 그렇게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갈 거다.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 모델로 너무 많이 나간 거다. 노무현 정권이 되돌리는 게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의지도 없다.”

신자유주의 기조를 버리지 못하는 이상 구조적인 변화가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청와대 정책 보좌관으로 재정경제부에 파견돼 1년 가까이 청와대와 재경부사이의 의견 조율을 맡았던 전아무개씨는 이런 부정적인 전망을 다시 확인해준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재경부에서 노무현 정부의 분배 우선 정책은 한마디로 “씨도 먹히지 않는 분위기”라는 이야기다.

청와대 앞 카페에서 만난 그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과 관련, “아무런 담론이 없다”고 규정했다.

“사실 노무현 정부와 재경부는 의견 충돌조차도 없었다. 담론이 없으니 충돌할 부분이 없는 건 당연하다. 지난 1년 동안 청와대는 재경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만 했다. 그나마 부딪혔던 부분이라면 신용불량자 문제와 부동산 대책 정도다.”

재경부에서는 신용불량자 문제나 부동산 대책까지도 시장 논리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가 우세하다. 심지어 공교육을 폐지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국장급 관료들도 있다. 지난해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한-칠레 FTA나 경제자유구역법 등 일련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도 결국 재경부의 의지대로 모두 통과됐다. 정부의 모든 정책이 재경부의 손에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은 참여정부 2기에서도 여전하다.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경제주간지 『이코노미21』에 보낸 기고문에서 “개혁을 위한 개혁이 아니라 성장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헌재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최근 아시아개발 은행 총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분배와 성장 가운데 성장이 우선이라는 시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히는 등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재경부와 사사건건 충돌을 피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이 이른바 ‘혁신주도형 경제’를 표방하고 뭔가를 제대로 ‘혁신’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맞서 싸워야할 적은 재경부의 관료들과 그들의 신자유주의 논리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그동안 최소한의 철학도 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두달의 휴식 끝에 의욕은 넘쳐 보이지만 결코 만만한 싸움은 아니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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