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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모델, 이미 한물 갔다.”

Written by leejeonghwan

May 14, 2004

스웨덴 모델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썰렁하다.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이야기다. 삼성경제연구소와 삼성전자에서 현장 경험을 쌓고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최석포 우리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월간 『말』에 대안연대회의와 대담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최 연구위원의 설명을 들어보자.

“발상부터 틀렸다. 삼성전자가 사회공헌기금을 내면 얼마를 내겠는가. 1조원? 2조원? 그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대타협 모델도 좋지만 그건 경쟁력 약화와 직결된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거고 최악의 경우 주주총회에서 이건희 회장과 경영진을 갈아치울 수도 있다. 차등 의결권이나 황금주 제도도 현실성이 없다. 외국인 투자자들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꼴을 보고 싶은가.”

최 연구위원의 대안은 원론적이다. 그는 시장의 문제를 시장의 논리로 풀자고 주장한다. 국부 유출이 그렇게 걱정스러우면 좋은 주식을 외국인들 내주지 말고 더 많이 사라는 이야기다. 국민연금을 비롯해 온갖 연기금과 기관 투자자들이 나서서 삼성전자를 사들였으면 외국인 지분 비율이 이렇게 높지 않을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는 삼성전자의 엄청난 자사주 매입과 소각도 삐딱하게 볼 것 없다고 주장한다. “남는 이익으로 자사주를 사는 건 세계적 추세다. 배당은 그대로 주주들에게 빠져 나가지만 자사주 매입과 소각은 그대로 주가에 반영된다. 외국인들이 주식을 팔고 나가지 않는 이상 이익이 회사에 남아있다는 이야기다.”

최 연구위원은 스웨덴 모델의 문제의식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면서도 좀더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히려 다시 한번 발상을 전환할 것을 주문했다.

“삼성전자의 사회적 책임은 선심 쓰듯 사회공헌기금을 몇푼 내놓는게 아니라 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핵심 기술 산업을 국내에 유치하고 더 많은 고용과 경제 효과를 창출하는데 있다. 그게 장기적으로 삼성전자와 국내 경제가 함께 사는 길이다. 그러려면 삼성전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참고 : 고용 못 늘리겠으면 비용을 분담해라. (이정환닷컴)

삼성전자, 에릭슨에게 배워라

스웨덴의 에릭슨도 삼성전자만큼이나 큰 회사다. 에릭슨의 모 그룹인 발렌베리 그룹은 에릭슨뿐만 아니라 사브와 ABB, 일렉트로룩스 등 굴지의 대기업들을 거느린 재벌 그룹이다. 발렌베리 그룹 14개 계열사의 시가총액 비중이 스웨덴 주식시장 전체 시가총액의 40%를 넘어설 정도다.

삼성전자와 에릭슨은 크게 두가지에서 다르다. 먼저 스웨덴은 연대임금제를 도입해서 에릭슨에 다니는 노동자나 조그만 중소기업에 다니는 노동자나 임금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생산직과 사무직의 임금도 거의 비슷하다. 연대임금제는 어떤 회사를 다니든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에서 출발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삼성전자 노동자의 임금을 지금보다 3분의 1이상 많게는 절반 가까이 깎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돈이 넘쳐나는 회사에서 노동자들 임금을 깎으라니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스웨덴은 1950년대에 연대임금제를 처음 도입했는데 그때 취지는 대기업들 임금을 깎아서 대외 경쟁력을 갖추자는데 있었다. 대기업들은 절감된 인건비만큼 고용을 늘리거나 신규 투자를 해서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 연대임금제를 도입하면 대기업 노동자들은 임금이 깎이겠지만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임금이 늘어난다. 당연히 기업의 부담도 늘어나고 경쟁력 없는 기업은 자연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대기업만 신나는 제도다.

삼성전자와 에릭슨의 두번째 차이는 이익의 사회환원에 있다. 스웨덴에서는 모든 소득의 50% 이상이 세금으로 나간다. 에릭슨처럼 돈을 잘 버는 회사는 당연히 세금도 엄청나게 낸다. 스웨덴에서는 삼성전자처럼 쓰지도 못할 만큼 엄청난 이익을 내는 회사가 나올 수 없다.

여기에 중요한 해답이 있다. 연대임금제를 도입하는 대기업은 임금을 깎는 만큼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다.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은 문을 닫아야겠지만 대기업은 더욱 규모를 키워나간다. 그리고 그 기업의 이익은 사회에 환원된다. 사회는 기업을 믿고 기업은 사회의 복지를 떠받친다. 그게 스웨덴 사회 민주주의의 기본 모델이다. 핵심은 조금 공허하게 들리지만 연대와 화합이다.

정부는 그렇게 거둬들인 엄청난 세금을 아낌없이 복지에 투자한다. 스웨덴에서는 2~6세 아이의 80% 이상이 공공 탁아소에서 자란다. 탁아소 요금은 거의 무료에 가깝다.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정부가 모든 걸 책임진다.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은 기본이다. 이렇게 하는 일이 많다보니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이 넘을 정도다. 정부가 앞장서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놀랍지 않은가. 우리는 좋은 회사에 다니면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삼성이 해마다 직원들에게 수천만원씩 성과급을 주는 것도 부럽기만 할뿐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러나 스웨덴에서는 모든 노동자들이 비슷한 임금을 받는다. 에릭슨에 다니는 노동자나 이발사나 청소부나 은행원이나 임금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잘 버는 회사의 노동자들은 못 버는 회사의 노동자를 위해 임금의 일부분을 기꺼이 희생한다. 그들이 임금이 깎이는 만큼 사회는 더 평등하게 되고 복지는 더 향상된다. 모두가 평등하게 가난한게 아니라 모두가 평등하게 넉넉하고 여유롭다는 이야기다. 스웨덴에서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조건의 평등이다.

물론 스웨덴이 최선의 대안은 아니다. 스웨덴의 복지제도는 많은 문제와 한계를 안고 있다. 그러나 이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때다. 스웨덴이 스웨덴 나름의 자본주의를 발전시켜 온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현실에 맞는 자본주의를 모색해야 한다. 스웨덴을 넘어서려면 우리는 먼저 제대로 스웨덴을 이해해야 한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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