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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시장 개방이 더 이익이라고? 10년 뒤, 100년 뒤에도 그럴까.

Written by leejeonghwan

April 17, 2009

쌀 관세화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부쩍 늘어났다. 우리나라는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2004년까지 쌀 시장 개방을 유예 받은데 이어 다시 2014년까지 개방 시점을 미뤄둔 상태다. 그런데 쌀 관세화를 도입하자는 건 관세를 물리되 시장을 개방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2004년 쌀 시장 개방을 10년 뒤로 늦추는 대신 해마다 수입물량을 2만2천톤 이상 늘려야 한다. 2014년이 되면 국내 전체 쌀 소비량의 7.96%인 40만8700톤까지 수입물량이 늘어난다. 쌀 시장을 개방하자는 주장은 의무적으로 수입을 늘리기 보다는 차라리 관세를 높게 물리는 게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최근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해 쌀 값이 1톤에 1천달러 이상으로 뛴 것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관세화를 해도 국내 농가에 큰 충격이 없을 거라는 이야기다.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17일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쌀 관세화는 농민에게도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장 장관은 “우리나라에 쌀이 남아돌아도 2014년 이후 매년 40만8천톤씩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한다”며 “그러나 지금 관세화를 할 경우 의무 수입물량을 30만여톤만 들여오면 된다”고 말했다. 장 장관은 또 “전문가들의 전망으로는 앞으로도 쌀의 국제 가격이 계속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며 “높은 국제가격에 400%가량의 높은 관세를 붙인다면 국내에 수입해도 가격 경쟁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바람을 잡은 곳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었다. 박동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지난 2월 열린 토론회에서 “쌀 수입을 관세화로 전환할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향후 10년 동안 2천억~4천억원의 수입쌀 도입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연구원은 “관세화로 전환할 경우 수입 쌀 공급물량이 줄어들어 쌀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하락 압력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언론은 이 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두고두고 우려먹으면서 쌀 관세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확대 재생산해왔다.

조선일보는 8일 사설에서 “의무 수입물량이 이대로 계속 늘어나는 것보다는 지금이라도 높은 관세를 붙여 쌀 시장을 개방하는 게 국가적으로 더 유리하다”고 주장했고 서울경제는 지난달 18일 사설에서 “사정이 이렇다면 쌀 수입 관세화를 미룰 이유가 없다”면서 “일찍이 쌀 수입에 대해 관세화로 전환한 일본과 대만 등의 경험은 관세화가 꼭 불리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서울신문도 9일 칼럼에서 “의무 수입물량을 최소화하고 환율과 국제 쌀 가격을 최악의 조건으로 놓고 따져도 10년간 1800억∼3700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주장을 소개하면서 관세화 쪽에 더 많은 비중을 뒀다. 헤럴드경제는 10일 칼럼에서 “방향은 정해졌다”면서 “조기 개방이 해답”이라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관세화 유예로 치러야할 대가와 고나세화 개방에 따른 국익을 냉철히 비교 분석, 적극적인 대국민 설득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세화를 찬성하는 언론의 논리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어차피 의무 수입물량이 2014년이면 40만8천톤이나 된다. 차라리 관세화를 하면 수입이 그보다 줄어들 수 있다.
둘째, 국제 쌀 값이 올라서 개방을 해도 수입이 많지 않을 것이다. 개방을 하고 관세를 높게 물리면 된다.
셋째, 개방을 하면 정부가 의무적으로 쌀을 사들일 필요가 없으니 비용도 절감된다.

언론은 이미 쌀 시장 개방 공론화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반대 논리를 펼치는 곳은 한겨레 밖에 없다. 송기호 변호사는 10일 한겨레 기고에서 “만약 한국이 의무 수입물량을 늘리지 않으려고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하겠다고 하면 미국은 당연히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쌀을 포함시키려고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 변호사는 “일본이 지금 미국에 600% 수준의 높은 관세를 매길 수 있는 것은 일본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쌀을 조기 개방하려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송 변호사의 주장은 일단 관세화를 받아들이고 나면 처음에는 높은 관세를 물린다고 하더라도 결국 관세를 낮출 수밖에 없을 것이고 결국 국내 농업을 초토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최경림 외교통상부 자유무역협정 정책국장은 반론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쌀에 관한 관세 감축의무가 없음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국농업경영인협회 관계자는 “언론이 쌀 시장 개방이 공론화됐다는 제목을 내걸고 있지만 실제로는 농어업 선진화 위원회에 의제로 채택되지도 않은 사안”이라면서 “정부나 언론이 자칫 여론을 조성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사안을 올바로 판단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쌀 관세화를 둘러싼 답답한 논란의 본질은 애초에 2004년의 협상이 터무니없는 졸속이었던 데서 비롯한다. 그때도 농민들 반발이 거셌지만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전면 개방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의무 수입물량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는 수동적인 태도로 협상에 나섰고 2014년까지 40만톤 이상을 의무적으로 수입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협정을 맺었다. 애초에 쌀이 식량주권의 문제며 다른 수출산업을 일부 희생하더라도 절대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최소한의 원칙을 포기했다.

쌀 시장을 개방하자고 주장하는 일부 언론의 논리를 뒤집으면 다음과 같다. 애초에 이건 상식의 문제다.

첫째, 당장 의무 수입물량을 줄이기 위해 관세화를 도입하자고 주장하지만 관세율이 낮아질 경우 수입을 늘리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둘째, 국제 쌀 값이 올라서 국내 농가가 경쟁력이 있다고 하지만 환율이 내려가고 국제 곡물시장 상황이 바뀌게 되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국내 농업이 무너지고 나면 아무리 비싼 값이라도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셋째, 10년 뒤가 아니라 30년 뒤, 100년 뒤를 내다보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당장 몇천억원 더 이익을 보는 문제가 아니다. 한번 개방하고 나면 이를 뒤집기는 훨씬 더 어렵다. 한번 무너진 농업을 다시 살리기는 더욱 어렵다.

참고 : 쌀 시장 개방 비준안, 누가 통과시켰나. (이정환닷컴)
참고 : 열린우리당의 무력감, “쌀 시장 개방, 피할 방법이 없다.” (이정환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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