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PD수첩이 검찰 소환을 거부하는 이유와 거부해야 하는 이유.

Written by leejeonghwan

April 15, 2009

김보슬 MBC PD가 15일 오후 검찰에 체포됐다. 검찰 소환조사를 거부하고 MBC 사옥 안에 머물러 왔던 김 PD는 오는 일요일 결혼을 앞두고 드레스를 고르러 나갔다가 약혼자인 조준묵 PD의 집 근처에서 체포돼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송됐다.

김 PD는 지난해 4월29일 제작해 방영한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와 관련, 명예훼손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김 PD는 지난해 8월 인사 발령 이후 불만제로팀에서 일해왔다. 이에 앞서 이 프로그램을 함께 제작했던 이춘근 PD가 지난달 25일 체포됐다가 이틀 뒤인 27일 풀려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언론 자유 침해라며 검찰을 비난하고 있지만 동시에 궁금해 하는 것은 이들이 왜 굳이 검찰 수사를 거부했느냐다. 잘못한 게 없다면 당당하게 조사를 받고 진실을 밝히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PD수첩 PD들이 받고 있는 혐의는 첫째, 다우너 소를 광우병에 걸린 소인 것처럼 오해하도록 방송을 내보냈고, 둘째, 아레사 빈슨이 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 진단을 받았는데 이를 광우병(vCJD)인 것처럼 왜곡해서 보도했고, 셋째,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가 “걸렸을지도 모른다”고 말한 것을 “걸렸던”이라고 의도적으로 잘못된 번역을 내보냈고, 넷째, 우리나라 사람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미국 사람의 2배에 이른다고 믿을 수 없는 주장을 소개했고, 다섯째, 0.1g만으로도 100% 죽는다는 보도 역시 검증된 바가 없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하나씩 반론을 들자면, 첫째, 다우너 소가 광우병에 걸린 것으로 의심되는 소인 것은 분명하고, 둘째, 광우병은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의 한 종류인데다, 셋째,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도 이 둘을 혼용해서 쓰고 있었고, 넷째, 우리나라 사람이 광우병에 더 취약하다는 주장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학설이지만 이를 뒤집는 학설이 아직 나오지 않았고, 다섯째, 지금까지 광우병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된 사람은 100% 죽었고 사망률이 100%가 아니라는 반증이 나온 바가 없다.

물론 검찰의 문제제기나 MBC PD들의 반박이나 논란의 여지가 많다. 일부 번역에 오류가 있었던 것을 인정했고 문제의식을 부각시키려고 의도적으로 여러 멘트와 주장을 취사선택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단 짚고 넘어갈 것은 과연 이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영한 것이 범죄가 성립이 되느냐다. 좀 더 정확하게는 고발인인 농림수산식품부와 정운천 전 장관, 민동석 전 농업통상정책관 등의 명예를 훼손했느냐가 핵심 관건이다.

PD수첩 PD들이 검찰 조사를 거부하는 것은 언론이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특별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검찰은 MBC를 압수수색해서 PD수첩의 범죄 사실을 입증하겠다는 입장이지만 PD들은 압수수색을 해야 할 충분한 이유를 먼저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고 해서 압수수색을 당하고 그때마다 검찰에 불려다닌다면 언론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는 심지어 “편파적이거나 불공정·과장 보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무엇이 과장됐고 무엇이 왜곡됐는지 그리고 그게 어떻게 명예를 훼손하고 업무를 방해했는지 검찰이 먼저 입증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압수수색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 위법이지만 현재로서는 부당한 압수수색에 항의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

박 교수는 “진실을 근거로 하지 않았다고 비판하지 말라는 건 아무 것도 비판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 광우병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위험을 경고하는 일은 애초에 정보가 불완전한 상황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의 위험이 있다는 게 허위 사실인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신중하게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명예훼손이 될 수 있나?

그게 아니라면 검찰은 왜 PD수첩을 압수수색하려는 것일까. 검찰은 무엇을 밝혀내려고 PD들을 체포하려는 것일까. 좀 더 자세히 읽고 싶다면 박 교수의 미디어오늘 기고와 인터뷰를 추천한다.

참고 : PD수첩, 수사거부가 법치구현. (미디어오늘)
참고 :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에서 나온 21개 요구사항에 대한 반론. (미디어오늘)
참고 : “불공정·과장 만으로 압수·소환못해.” (미디어오늘)

언론인에게 무슨 특권이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언론이 정부의 정책을 비판할 때 이를 공정하지 않다거나 허위 또는 과장 보도라는 이유로 처벌하려고 한다면 이에 앞서 이를 입증해야 할 책임이 검찰에 있다. 일단 수사를 해보고 범죄가 되나 안 되나 보겠다는 태도는 명백한 언론 탄압이고 인권 침해고 월권이다.

기사를 잘못 쓰면 잡혀가나? 기사를 잘못 써서는 안 되겠지만 기사를 잘못 쓰는 것과 수사 대상이 되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다. 언론 자유라는 거창한 구호를 외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잘못 쓴 기사가 어떻게 범죄를 구성하고 있는지 납득할 수준은 돼야 하지 않을까. 100만명을 불러냈으니까? 그래서 그게 범죄가 되나. 그렇다면 죄목은 뭔가. 명예훼손? 도대체 누구의 명예가 어떻게 훼손됐나. 검찰 소환을 거부하거나 압수수색을 방해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지만 이에 앞서 검찰의 수사 방식도 결코 상식적이지는 않다.

(급하게 올리느라 중간중간 내용을 추가하고 제목도 수정했습니다. 게다가 쓰다가 잠이 들어버리는 바람에.)

.

www.leejeonghwan.com

Related Articles

Related

절벽에서 뛰어내리면서 비행기를 조립한다는 것.

절벽에서 뛰어내리면서 비행기를 조립한다는 것.

오늘 아침 주주총회를 끝으로 미디어오늘에서 제 역할은 끝났습니다. 오후에는 자유언론실천재단에서 “ChatGPT와 저널리즘의 책임”을 주제로 특강이 있는데 이게 제가 미디어오늘 대표로 나서는 마지막 대외 행사가 되겠네요. 끝나고 선배들 저녁 식사 대접을 하기로 했습니다. 다음 주부터 몇 가지 계획이 있는데요. 1. 4월부터 슬로우뉴스 대표를 맡기로 했습니다. 유한회사 슬로우뉴스를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제가 100% 지분을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기자들도 뽑고 콘텐츠도...

라즈베리 파이 오디오 만들기.

라즈베리 파이 오디오 만들기.

시간 날 때마다 만들었던 라즈베리파이 오디오. 드디어 완성. 사실 별 거 없는데 여기저기서 부품 조달하고 거기에 맞춰 도면 만드는 게 힘들었습니다. build log는 영어로. This is my new network audio system. All in one Integrated Amplifier. 1. Raspberry Pi 4B. 2. Hifiberry DAC+DSP. 3. 7 inch touch screen for raspberry pi. 4. Chromecast...

미디어오늘을 떠납니다.

미디어오늘을 떠납니다.

미디어오늘에 경력 기자로 입사해 편집국장으로 3년, 사장으로 6년을 지냈습니다. 다행히 월급날을 한 번도 밀리지 않았고요. 열심히 벌어서 금융 부채를 모두 정리했고 만성적인 자본잠식에서 벗어났습니다. 언론사 경영이라는 게 날마다 전쟁 같았지만 한 번도 원칙과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속가능한 미디어오늘을 위한 성장 엔진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면 지난 15년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디어오늘 지면에 대해서는 자부심과 아쉬움이...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Join

Subscribe For Updates.

이정환닷컴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

www.leejeonghw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