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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는 로또” 부추기는 정부와 거드는 언론.

Written by leejeonghwan

March 23, 2009

판교 아파트가 로또라고 불렸던 건 시세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분양됐기 때문이다. 2006년 5월의 일이다. 대한주택공사 아파트의 경우 3.3평방미터에 1099만원, 민간 건설업체 아파트의 경우는 1176만원씩, 모두 9428명의 로또 당첨자가 탄생했다. 108.9평방미터의 경우 3억6267만원과 3억8808만원. 주변 아파트가 5억원에서 많게는 7억원까지 나갔으니 시세보다는 최소 2억원 이상 쌌다.


일단 당첨만 되면 2억원을 버는 셈이고 가뜩이나 아파트 가격이 걷잡을 수 없이 치솟던 무렵이라 판교의 가치는 더욱 돋보였다. 주목할 부분은 전국의 아파트 가격을 끌어올린 주범이 바로 판교였다는 사실이다. 당첨만 되면 대박이라는 믿음이 확산되면서 그 기대 수준에 걸맞게 주변 아파트 가격이 뛰어올랐고 분양 가격도 자연스럽게 그런 기대를 충족하는 수준으로 형성됐다.

5년에서 10년까지 전매 제한을 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주변 시세에 맞춰서 비싸게 팔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사자 마자 차익을 남기고 팔도록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들어가 살 사람들 위주로 공급을 하기 위해 한번 들어가면 10년 이상 살도록 하고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팔 수 없도록 제한을 뒀다. 재산권 침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투기 과열을 막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조치였다.

그리고 4년 뒤, 정권이 바뀌었고 이명박 정부는 모든 원칙을 허물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18일 수도권 공공주택의 전매제한을 최장 7년에서 5년으로, 민간주택의 경우 5년에서 3년으로 줄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입주 직후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하면 전매제한 3년이 지난 것으로 인정해주기 때문에 이르면 오는 5월부터 판교 매물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판교=로또”라는 등식이 실현되는 셈이다.

게다가 22일 국토부는 “판교의 10년 공공임대 주택의 분양 전환 시기를 5년으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토부는 이를 위해 임대주택법 시행령을 개정해 오는 6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지난달 16일 127대 1의 치열한 경쟁률을 보였던 판교 공공임대 아파트에 당첨된 사람들은 5년만 지나도 분양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 경우도 역시 로또 수준의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말이 공공임대 주택이지 이번에 공급된 판교 공공임대 아파트는 사실상 후분양 아파트 성격의 특혜나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공공임대 아파트들은 공공임대라는 명분으로 정부가 개발한 택지를 원가 이하로 싸게 공급받고 국민주택기금을 낮은 이자로 빌리고 각종 세제혜택을 받는다. 그런데 5년, 짧게는 2년 반 만에 분양을 받고 나면 일반 분양 아파트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

건설회사들 폭리 구조를 돕고 수많은 로또 당첨자들을 양산할 뿐 애초에 저렴한 가격의 주택 공급과 주거 안정에 기여한다는 공공임대 아파트의 취지와는 무관하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이런 무늬만 공공임대 아파트가 아닌 국민임대와 영구임대 아파트 등 10년 이상 장기임대 아파트의 비율은 전체 주택의 3% 수준에도 못 미친다. 그나마도 김대중 정부 이후에는 거의 건설이 끊긴 상태다.

전매제한 완화는 재산권 침해를 최소화하고 내 집 마련을 돕는다는 그럴 듯한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부동산 대박 신화를 더욱 공고하게 하고 내 집 마련의 꿈을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 정부가 앞장서서 부동산 정책의 기본 원칙을 허물어뜨리고 있지만 이를 비판하는 언론은 거의 없다. 집은 주거의 대상이지 투자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기본 철학조차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대부분 집 없는 사람들에게는 싼값에 들어갈 수 있는 저렴한 장기임대 아파트가 절실한 상황인데 정부는 여기에 관심이 없고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건설사와 부동산 투기세력, 그리고 이에 편승하려는 대다수 국민들의 투기적 욕망, 그리고 정부와 언론이 이를 조장하고 부치기도 있다.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주춤하던 부동산 시장에 다시 거품이 덕지덕지 끼기 시작할 분위기다.

참고 : 언론은 왜 판교에 침묵하는가. (이정환닷컴)
참고 : 도대체 아파트 값은 왜 이렇게 비싼가. (이정환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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