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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과 노정석은 왜 태터앤미디어를 버렸을까.

Written by leejeonghwan

February 21, 2009

태터앤컴퍼니 노정석 사장과 인터뷰에서 인상 깊었던 건 “블로거들을 이용해서 돈을 벌지 않고 블로거들과 함께 돈을 벌겠다”고 말한 대목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어떻게 돈을 벌 거냐고 물었지만 노 사장은 구체적인 답변 대신 “우선은 더 많은 사람들이 태터툴즈를 쓰고 여기서 새로운 가치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만 말했다. 태터툴즈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돈 벌 기회도 생겨날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테터앤컴퍼니는 2006년 3월 태터툴즈 1.0을 내놓으면서 소스코드를 공개하고 GPL(일반 공증사용 허가 General Public Licens)를 채택했다. 누구나 공짜로 가져다 쓰고 마음대로 고쳐 쓰라는 혁신적인 발상이었다. 태터툴즈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게 된 것도 이런 열린 사고와 사용자들의 자발적인 참여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노 사장은 인터뷰에서 “크게 얻으려면 크게 버려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때 나는 그가 생각보다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우리는 콘텐츠의 유통 채널이 되려고 합니다. 콘텐츠를 끌어 모으고 쌓아두는 게 아니라 콘텐츠가 우리를 통해서 흘러가도록 만드는 겁니다. 개인 사용자들과 그들의 콘텐츠를 붙잡으려는 헤게모니 싸움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결국 누가 그 플랫폼을 먼저 선점하느냐가 관건이 되겠죠.” 태터앤컴퍼니의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태터툴즈는 가장 보편적인 블로그 툴로 확고한 입지를 구축했다.

그래서 지난해 9월 태터앤컴퍼니가 구글에 인수됐을 때는 실망했다기 보다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노정석의 꿈이 구글에 인수되는 것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태터툴즈는 텍스트큐브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여전히 공개 소프트웨어로 남아있고 개발은 비영리 법인인 태터네트워크재단에서 맡고 있다. 태터앤미디어는 태터앤컴퍼니에서 분사해 텍스트큐브를 쓰는 블로그들을 중심으로 광고 대행과 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다.

다시 정리하면 구글이 인수한 것은 태터앤컴퍼니의 경영진과 개발자 그룹, 그리고 텍스트큐브닷컴이라는 텍스트큐브 기반의 블로그 서비스 뿐이다. 콘텐츠 유통 플랫폼을 만들겠다던 노정석의 꿈은 여전히 유효하겠지만 그 꿈은 이제 구글에 예속될 수밖에 없다. 구글은 광범위한 텍스트큐브 사용자들, 그리고 같은 기반의 티스토리 사용자들에 욕심을 냈을 것이고 아마도 노정석은 구글을 위해 이들을 끌어들일 새로운 서비스를 구상하게 될 것이다.

구글과 노정석은 태터앤미디어를 버리고 떠났다. 태터앤미디어는 그나마 이 일련의 태터 패밀리들 가운데 유일하게 돈을 만지는 사업모델이었는데 구글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봐야 푼돈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애초에 구글의 철학과 맞지 않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구글의 관심은 텍스트큐브라는 광범위한 네트워크 인프라, 그리고 그 인프라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태터앤컴퍼니의 핵심 인력이었을 것이다.

태터앤미디어의 태생적 한계도 바로 여기에 있다. 소수 정예의 이른바 파워 블로거들을 확보하고 있지만 이들의 네트워크는 동일한 광고를 게재하고 공동으로 마케팅에 참여하는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충분히 매력적인 사업모델이지만 나는 이들이 태터앤컴퍼니를 처음 창업하고 텍스트큐브를 공개 소프트웨어로 전환했을 때 가졌던 꿈은 훨씬 더 컸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텍스트큐브 기반의 여러 블로그들, 설치형 텍스트큐브 블로그는 물론이고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만든 서비스형 티스토리, 구글에 넘어간 텍스트큐브닷컴을 모두 포괄하는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단순히 또 하나의 메타블로그가 될 수도 있고 태터앤미디어처럼 수익 쉐어 시스템이 될 수도 있고 애초의 목표처럼 좀 더 강력한 미디어, 더 나가서 콘텐츠 유통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태터앤미디어는 구글 텍스트큐브팀과 충돌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뿌리는 같았지만 한쪽은 이제 세계 최대의 인터넷 기업에 흡수됐고 다른 한쪽은 파워 블로거들의 네트워크를 물려 받아 홀로서기를 모색하고 있다. 이들은 결국 같은 네트워크를 두고 헤게모니 경쟁을 벌이게 될 텐데 태터앤미디어가 지금처럼 스스로를 광고 대행과 마케팅 전문 기업으로 한정한다면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사실 이 광범위한 텍스트큐브 네트워크는 주인이 없다. 누구도 소유하거나 독점할 수는 없지만 이 네트워크에 뛰어들어 더 나은 유인을 제시하고 사용자들을 끌어모으고 헤게모니를 구축해 진입장벽을 쌓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를 이용해 돈을 벌 수도 있고 권력을 가질 수도 있다. 앞으로 텍스트큐브 사용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늘어날 것이고 파워 블로거들도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대안 미디어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텍스트큐브라서 가능한 일이다. 플러그인 하나만 달면 수많은 블로거들을 하나로 엮을 수도 있고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도 있다. 단순히 배너광고를 게재하는 것을 넘어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이 콘텐츠 비용을 분담하는 전혀 다른 새로운 수익모델을 고민해 볼 수도 있다. 텍스트큐브 기반이 아닌 블로그들을 배제하는 결과가 되겠지만 텍스트큐브 사용자들이 충분히 많아진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굳이 응원을 하자면 나는 구글 텍스트큐브팀보다는 태터앤미디어의 편에 서고 싶다. 그래서 이들이 눈앞의 단기 수익에 골몰하기 보다는 좀 더 멀리 내다보고 훨씬 큰 꿈을 꾸기를 바란다. 파워 블로거들에 집착하기 보다는 네트워크 생태계 전반으로 시야를 넓히고 좀 더 큰 가치들을 꿈꾸기를 바란다. 네트워크를 매개하는 힘은 배너광고가 아니라 의식의 공유, 사고의 확장과 확대 재생산에서 비롯한다고 나는 믿는다.

참고 : 100만원 물품 받고 리뷰 써 준 블로거들 도덕성 논란. (이정환닷컴)
참고 : 구글코리아, 태터앤컴퍼니 인수 의미는. (이정환닷컴)
참고 : 티스토리에 거는 기대. (이정환닷컴)
참고 : 태터툴즈 이야기. (이정환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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