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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은 왜 작동하지 않았을까.

Written by leejeonghwan

January 5, 2009

요즘 신문에 경제 기사가 재미없는 이유가 있다. 조선일보나 매일경제나 한겨레나 신문마다 모두 똑같은 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다들 심각한 위기라고 비명을 질러대면서 정부에 대책을 주문한다. 대책이라고 내놓는 것도 다 똑같다. 신속한 구조조정과 과감한 경기부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경질하라는 요구도 모든 언론의 공통된 요구다.


최근 출간된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 경제를 말하다’라는 책은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인터뷰를 엮은 책이다. 이 책에서 김 교수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관련해 흥미로운 주장을 내놓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말이 흔히 시장의 가격 결정 원리를 말하는 것처럼 잘못 이해되고 있지만 사실은 다르다는 이야기다.

‘보이지 않는 손’은 ‘국부론’에 딱 한번 나온다. 누구나 자기 자신의 안전과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사회 전체의 이익이 늘어난다는 게 애덤 스미스의 주장이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애덤 스미스는 이를 보이지 않는 손으로 얼버무린다. “‘보이지 않는 손’의 인도를 받아서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가 원래 문장이다.

김 교수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시장만능 또는 자유방임의 이론으로 해석하는 것은 그를 모독하는 행위라고 지적한다. 독점과 시장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걸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애덤 스미스가 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다. 김 교수는 “주류 경제학자들이 입맛에 맞게 애덤스미스를 왜곡했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국부론’에서 애덤 스미스는 왜 14~15세기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엄청난 금은보화를 식민지에서 약탈해 왔으면서도 가난한 나라가 됐는지 설명하고 있다. 금이 곧 화폐였던 시절, 금이 넘쳐나다 보니 물건 값이 치솟았고 다른 나라에서 수입이 크게 늘어났고 그러다 보니 국내 산업이 다 죽어버렸던 것이다.

애덤스미스는 금은보화가 국부가 아니라 국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노동 생산물이 국부라고 지적했다. 국부의 원천이 곧 노동이라는 이야기다. 애덤 스미스는 개인이 자신의 상태를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지만 사회 전체의 안정을 위협하는 몇몇 개인의 자연적 자유의 행사는 제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덤 스미스는 또 중상주의 정책들, 이를테면 수출증진정책이나 수입억제정책, 식민지정책, 독점무역회사의 설립 등이 일부 상인과 제조업자의 이익을 증진시킬 뿐이고 사회 전체에는 오히려 해롭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이익을 증진시키는 한도 안에서 개인에게 사적 이익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다.

김 교수의 분석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경제 위기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류 경제학은 과잉 생산의 필연적인 결과인 경제위기나 경제공황을 설명하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다면 왜 이처럼 경제위기가 반복되는 것일까. 생산이 늘어나면 가격이 낮아질 것이고 가격이 낮아지면 수요가 늘어날 텐데. 김 교수는 말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과잉 생산이 되면 물건을 전부 못 쓰게 만들고 창고에서 썩게 만들고 공장 문을 닫게 만들고 노동자를 해고하는 식으로 몰아간단 말입니다. 인적 물적 자원이 엄청나게 낭비된단 말입니다.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정도 물건을 만들 생산시설과 생산력이 있는데도 자본가들이 이윤만 추구하기 때문에 모두가 즐겁게 못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국부’에 대한 관점도 다르다. 김 교수는 “자본가가 이윤을 보기 위해 기계를 자꾸 돌리고 생산력을 증진시키면 국부는 증대되지만 한쪽에서는 실업자가 생기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자본에 종속되고 도구화돼 간다”고 지적한다. 국부를 증대시키기 위해 국민 대다수를 빈곤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다.

애초에 공정한 시장이 아니라면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허구다. 그 결과가 바로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 위기다. ‘보이지 않는 손’과 완전 경쟁시장을 맹신한다면 위기는 계속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엄청난 규모의 금덩어리를 쌓아두고도 가난할 수밖에 없었던 포르투갈의 교훈을 다시 되새겨 볼 때다.

최근 위기 관련 언론보도를 살펴보자. 모든 언론이 위기를 말하는데 그 위기는 자본에게는 이윤 창출의 기회가 줄어들거나 손실을 보게 됐다는 것을 의미하고 노동자들에게는 임금이 줄어들거나 일자리를 잃을 위험, 더 나아가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됐다는 걸 의미한다. 위기의 체감 정도는 노동자들에게 훨씬 절박할 수밖에 없다.

언론은 손쉽게 구조조정을 말하지만 구조조정의 목표는 대부분 중소기업에 한정돼 있고 또 그 최종 희생은 언제나 노동자들의 몫이다. 위기의 근본 원인은 과잉 생산에 있는데 노동자들을 잘라내는 것으로 그 위기를 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너무나도 쉽게 나중에 과잉 생산이 해소되고 수요가 늘어나면 다시 뽑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경기부양을 이야기하지만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고 금융회사들을 지원하고 세금을 깎아주면서 그 과정에서 실질 소득이 낮아지게 된 저소득 계층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경제가 먼저 살고 기업이 살고 금융시장이 살아야 일자리도 다시 늘어나고 다들 잘 살게 된다는 논리다. 어떻게든 살려볼 테니까 그때까지 믿고 참고 견디라는 이야기다.

졸지에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을 맞게 된 고졸자와 대졸자들, 날벼락 같은 공장 가동 중단으로 구조조정 위협에 내몰린 노동자들, 그리고 대기업 하청 업체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최저 임금마저 깎이게 생긴 고연령 노동자들, 정부가 돈을 뿌려대고 물가가 치솟으면서 상대적으로 더욱 가난하게 된 저소득 계층, 이들은 분노하는 법 조차 잊고 있다.

국민들은 정부에 항의하고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 왜냐, 이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권력이 정부이기 때문이다. 과잉 생산과 독점 이윤을 방치한 것도 정부고 그 결과 대다수 국민들을 도탄에 빠뜨린 것도 정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0년 전처럼 대다수 국민들의 희생으로 독점적 이윤 구조를 더욱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 위기를 넘어서려 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말하는 국부와 우리 사회 모두의 행복과의 간극은 어느 정도일까. 언론이 말하는 위기 극복은 왜 노동자와 저소득 계층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가. 경기 부양을 한다는데 왜 이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되는가. 설령 이 위기를 넘어선들 지난 10년처럼 빈부 격차와 양극화,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가 더욱 심화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과연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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